문화강대국을 위한 문화정책

스크린쿼터 축소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거웠다. 한쪽에서는 영화도 엄연한 문화상품이기에 FTA(자유무역협상)의 예외가 될 수 없고 한국영화는 이제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고 있으므로 자생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쿼터 축소는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한다.다른 한쪽은 문화는 예외적인 상품으로 인정해야 하며 할리우드 영화와의 경쟁력 등을 고려할 때 여전히 정책적 보호막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어느 입장이 옳은가? 입장이란 당파성의 문제이지 진리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자유무역만이 능사도 아니고 보호만이 능사도 아니다. 문화는 보호해야 하는가 아니면 문화도 경제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가? 둘 다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어느 것이 옳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예컨대 어느 것이 옳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관점을 취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문화를 바라보면 문화상품도 엄연한 상품이며, 문화적인 관점에서 경제를 바라보면 문화는 분명 경제논리와는 독립적인 영역이다.

정부부처를 보더라도 FTA 주무부처인 재정경제부의 관점과 문화정책을 담당하는 문화관광부의 관점이 달라 질수 있다. 예전에 유네스코에서도 문화와 경제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문화를 경제성장 및 발전의 도구로 바라보는 관점과 문화는 경제외적인 본질적인 가치를 가진다는 관점이 대립해 논쟁을 벌였었다.

과거에는 문화가 경제학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문화의 중요성이 점점 커짐에 따라 문화와 경제의 관계에 대한 입장정리는 어떤 형태로든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마르크스의 정식에 의하면 문화는 상부구조이고 경제는 하부구조에 해당한다. 본질적인 것은 경제라고 마르크스는 주장했다. 마르크스의 관점은 원론적으로는 옳다. 하지만 마르크스적인 관점은 시대적인 변화를 담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상부구조의 상징인 문화가 하부구조인 경제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문화는 한편으로는 발전과 성장의 동력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근본적인 삶의 질의 척도가 되고 있다.

1991년에 발족한 유네스코 ‘문화와 발전 위원회’는 <인류의 창조적 다양성>(1995년)이라는 제목의 보고서 전문(前文)에서 “발전이란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접근뿐만 아니라 충분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상태를 위미하는 것” 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서비스에 대한 접근이나 충분하고 만족스러운 삶이란 바로 문화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998년 스톡홀롬에서 열린 국제세미나에서는 “발전이 지속되는 데는 문화가 중요하며, 문화정책을 발전전략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삼아야 한다”는 권고가 제기됐다.

정책이란 공공성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적인 행동이다. 한 나라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부흥시키는 최후의 수단은 바로 문화정책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문화관광부가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문화산업을 진흥시켜 문화강국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오늘날의 문화정책은 두 가지의 큰 축으로 이루어진다. 한 나라의 문화정책은 문화복지와 문화산업진흥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예술진흥은 문화복지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문화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모습이며 인간이 자아와 자유를 실현하는 본질적인 모습이기 때문에 국가는 문화예술 부흥을 통해 국민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지원정책은 국민의 문화향유권과 문화적 접근성이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보면 문화는 가치창출의 새로운 원천이며 성장의 동력이다. 국가경쟁력 제고와 산업 발전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산업을 선택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문화산업진흥은 그래서 필요하다.

전자는 문화복지와 형평성의 이념에 입각해 있으므로 경제외적인 논리를 가질 수 있지만 후자의 관점은 문화야말로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시장논리나 경제법칙 속에서 이루어진다. 문화산업진흥은 문화투자의 효율성 추구라는 경제적 관점에 입각해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축은 서로 다른 관점과 서로 다른 논리를 갖는다. 문화정책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관점과 논리에서 취해지는 정책이라도 궁극적으로는 문화발전이라는 동일한 지향점을 갖는다. 문화복지를 통해 이루어지는 문화적 인프라는 문화산업진흥의 기반이 될 수 있으며 문화적 자산이 취약한 나라에서 문화산업이 부흥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결국 문화적 인프라도 튼튼하고 문화산업도 발달해야 진정한 문화강대국이 될 수 있다.

<최연구 박사 / 한국과학문화재단 경영혁신실장>

(헤럴드경제 2006-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