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 한국판 ‘동북공정’ 시작하자

연이은 대형 이슈에 밀려 벌써 기억의 저편에 자리 잡게 된 ‘동북공정’이 올해로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우리 고유의 역사라고 생각해 온 고구려사에 대한 ‘역사 침탈’로 규정하고 한때 국민적 분노와 항의를 표시하였지만,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학술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2004년 발족한 ‘고구려연구재단’ 설립 후 일단 그쪽으로 대응의 책임을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한중 간 고구려사 역사 분쟁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는가? 필자는 최근 1년간 중국 베이징대에서 연구하면서 중국의 실정을 짐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중국에서 만난 동북공정 주임은 의외로 동북아시아 역사 전문가가 아니라 중앙아시아, 러시아 관계 전문가였다. 오랫동안 신장(新疆)대 역사학과에 재직하면서 이른바 ‘서북항목(공정)’에 관여해 오다 ‘동북공정’에 차출된 것이다. 중국의 최대 골칫거리인 서북 변강 문제 처리의 경험을 활용하고자 한 중국 측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동북공정 관계자들은 필자에게 공식적인 발언 이외에 주목할 만한 언급을 했다. 1000년 이상 된 고대사를 200년도 안 된 근대국가적 관점에서 배타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학문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필자의 지적에 동의하면서 중국에서도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는 학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의 처지에서 동북공정을 일단 국내적으로 ‘동일한 중국 국민 만들기’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동북공정이 국내적인 목적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우리의 더 깊은 우려가 있다. 고구려사가 중국사라는 주장은 곧 장래 한반도의 통일 과정에 중국이 연고권을 가지고 개입하는 중요한 근거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만난 대부분의 중국학자는 “그럴 의지도 없고 여유도 없다”고 말하지만, 최근 중국과 북한 간의 관계를 보면 그런 우려는 더 깊어진다.

북한은 정권 안보와 경제 개발을 위해 중국에 점점 더 의탁하는 모습이다. 북한은 핵 문제와 관련한 국제적 보장에 중국을 앞세우고 있다. 중국은 또한 경제 지원이라는 명분으로 북한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그 대신 각종 개발권을 장기 계약으로 선점하고 있다. 1월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 기간 중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개별적으로 응대한 것은 김일성 주석 시대에도 없었던 예우다. 북한을 ‘동북 4성’으로 편입하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염려될 정도다.

그러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우선 북한에 대한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 필요하다. 북한과 민족적, 역사적 연고를 강화함으로써 양측이 특수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확신시키는 한편 북한에 대한 경제적 담보를 늘려 나가는 정책이 요구된다. 북한에 대한 원조와 투자는 인도주의 외에도 다양한 측면이 있다. 동북공정에 대한 감시와 견제에는 학계의 노력과 함께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연대가 필요하다.

최근 필자는 중국 내에서 아주 우호적인 조짐을 발견했다. 베이징대의 고위직을 지냈고 지금도 학계의 실력자라 할 수 있는 어떤 교수는 고구려사가 한반도의 고대 삼국사라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이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시도는 잘못된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중국에서는 아직도 관제이론이 압도하고 있지만 학문 연구에서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들과의 공동 연구와 연대를 모색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중국 내 조선족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는 조선족의 인구 감소를 이유로 축소될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단순한 인구 감소 이외에 당국의 치밀한 정책의 결과라는 의구심도 든다. 더 나은 교육과 취업 환경을 찾아 외지로 나가는 조선족들을 붙들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동북 3성의 조선족은 고구려사에 대한 ‘인적 담보’일 뿐만 아니라 미래 한민족문화권 네트워크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간도는 우리 땅’이라는 말로 중국을 자극할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한민족의 생활권, 문화권으로 엮어 가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한국의 동북공정이 시작되어야 한다.

<정용화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정치학>

(동아일보 2006-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