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울린 '아름다운 거짓말'

국가가 울려 퍼지는 것을 듣고 신웨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22일 오후 1시30분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시의 공공관계대학 운동장. 의장대의 씩씩한 군화 소리에 이어 중국 국가가 장중하게 울려퍼졌다. 8세 소녀 신웨(欣月)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빠, 우리가 정말 천안문(天安門)에 왔구나!"

소녀는 오른손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한 번, 두 번, 마침내 손을 이마에 대고 국기에 경례를 하는 데 성공했다. 옆에 서 있던 아버지 주더춘(朱德春.43)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2000여 명의 창춘 시민이 연출한 '천안문 드라마'는 이렇게 성공적으로 끝났다.

지난해 10월 23일 오전 11시, 창춘 부근 주타이(九臺)시 루자(盧家) 초등학교 운동장. 달리기를 하던 신웨가 갑자기 쓰러졌다. 진단은 골수암. 주씨는 딸을 치료하기 위해 대도시인 창춘으로 집을 옮겼다. 하지만 딸의 병은 날로 깊어만 갔다. 올 1월에는 시력을 잃었다.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가족에게 일렀다.

평소 소녀는 국기가 하늘 높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다. 병석에서도 늘 "베이징(北京) 천안문 광장에 가서 국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의사는 "베이징까진 너무 멀다. 도중에 일이 생길 수 있다"며 원거리 여행을 반대했다.

그러나 아빠는 생각이 달랐다. 딸의 마지막 소원 아닌가. 가난한 주씨는 여비 마련을 위해 세간을 팔기 시작했다. 오직 TV만 남겼다. 딸이 TV 소리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소식은 순식간에 창춘시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시민과 학생들이 나섰다. 이들은 소녀의 건강을 감안해 창춘시에 천안문 광장을 꾸미기로 결정했다.

공산당 청년단 간부가 총연출을 맡았다. 원래 9~10시간 걸리는 창춘과 베이징 사이 958여㎞ 여정을 네 시간 정도로 축약해 연출하기로 하고, 구역별 출연진과 각본.소품을 하나하나 준비했다. 천안문 광장은 창춘시 공공관계대학 운동장에 꾸미기로 했다.

마침내 22일 오전 9시, 버스 한 대가 소녀를 태우고 '베이징'으로 출발했다. 승객 모두에겐 안내원.여행객 등 역할과 대사가 주어졌다. 버스 뒤에는 구급차가 뒤따랐다. 가는 도중 '안내원'은 "선양(瀋陽)에 도착했습니다. 내리실 분은 잊으신 물건 없이 안녕히 가십시오" 등 안내문을 읊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장면에선 외지 사투리를 쓰는 주민을 배치했다.

오후 1시 신웨를 태운 버스는 '베이징'에 진입했다. 그때 '경찰'이 차를 세운다. 그는 유창한 베이징 어투로 "배기량 확인서가 없는 외지 차는 상경할 수 없다"고 말한다. 승객들은 뒤에 대기 중인 다른 버스로 갈아탔다. 그 버스는 왕푸징(王府井.베이징의 번화가) 가는 길을 묻는 외국인, 서투른 남방 사투리를 쓰는 '외지인'들로 가득 차 있다. 수도에 도착한 느낌을 주려는 연출이다.

마침내 오후 1시30분. 소녀가 탄 차는 창춘시 공공관계대학 운동장에 마련된 '천안문 광장'에 도착했다. 1000여 명의 학생이 나서 사진을 찍거나 서로 부르는 관광객, 영어를 쓰는 외국인의 역할을 일사불란하게 수행했다.

마지막으로 학생 의장대가 나섰다. 구령에 맞춰 씩씩한 군화 소리를 내며 운동장 국기 게양대로 향했다. 곧이어 울려퍼지는 의용군 행진곡(국가). 중국의 오성홍기(五星紅旗)는 삐거덕거리는 도르래 줄에 매달려 우쭐우쭐 하늘 위로 올라갔다. 소녀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져갔다.

(중앙일보 / 진세근 특파원 2006-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