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붉은모자 쓴 조폭’과의 전쟁 선포

중국이 당과 정부에 침투한 조직폭력 세력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국 당·정 조직 내 조폭세력 침투 문제는 지난 12일 주언타오 전 공안부장조리(차관보급)의 발언으로 불거졌다. 그는 “오늘날 중국 국내외의 조폭 세력은 이미 중국 사회 각계에 광범위하게 침투하고 있다”며 “심지어는 정치계에도 침투해 ‘붉은 모자’를 쓴 경우(공산당 입당을 의미)까지 등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사회 각계에 뿌리가 깊어, 이들의 퇴치에 일정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이들은 이미 일반 범죄에 만족하지 않고 정치계와 사회 각 분야로 손을 뻗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법위원회 보고를 보면, 지난해 중국에서 조폭 세력이 저지른 범죄는 모두 24만건으로, 32만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 가운데 적지 않은 경우가 조폭과 경찰·공안·지방정부의 간부들이 서로 연루된 것으로 밝혀져 중국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뤼더빈 전 허난성 부성장의 아내 청부 살인 사건이 꼽힌다. 뤼의 아내를 살해한 청부 살인업자를 현지 공안국 부국장이 소개해준 것으로 드러나 서민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난해 푸젠성의 조폭 천카이 사건에는 76명의 당·정 간부가 연루됐다. 이 가운데 국장급이 7명, 처장급이 34명이었다. 경찰·공안·사법부 관리도 34명이나 끼어있었다. 천카이는 이 ‘비호세력’들을 이용해 푸젠의 도박장을 독점했다. 호텔·사우나·오락기·카바레·부동산 등 분야에 손을 뻗쳐 모두 1억6000만위안(약 208억원)의 자금을 굴린 것으로 드러났다.

또 산시성을 ‘평정’한 ‘옌즈방’이란 조폭은, 경찰과 조폭의 밀정 이야기를 다룬 영화 <무간도>의 줄거리를 그대로 본따 경찰학교에 조직원 15명을 심어놓고 정보를 캐내거나 체포된 조직원을 빼낸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당국은 최근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특히 당·정 조직 내 침투한 ‘붉은 모자를 쓴 조폭’의 박멸을 다짐했다. 지난달 22일 뤄간 중국공산당 정법위원장은 베이징에서 열린 정법위원회의 조직폭력배 대책회의에서 “각급 당·정 사법 부문은 폭력조직과 이들에 대한 ‘비호세력’을 뿌리 뽑고, 조폭세력의 당·정 조직 내 침투를 철저히 차단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언론 등 독립적인 감독 세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공안·사법 조직의 ‘타락’을 막을 적절한 방법이 없다는 게 중국 당국의 고민이다.

(한겨레신문 / 이상수 특파원 2006-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