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후진타오의 사상 '胡이즘'이 뜬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이달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인민정치협상회의를 계기로 주창한 ‘사회주의 영욕관(榮辱觀)’이 중국 정계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국가주석 취임 이전부터 여러 차례 사상운동을 주도해온 후 주석의 이력으로 미뤄 이번 바람은 정풍운동과 인사혁신, 후 체제 강화로 이어지는 태풍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인민일보는 연일 사회주의 영욕관에 대한 당과 국무원의 학습열풍을 보도하고 있고, 이미 후 주석 발언은 초ㆍ중ㆍ고교 학습교재로 채택됐다.

후 주석은 지난 4일 “사회주의에서는 시비, 선악, 미추의 경계가 절대 뒤섞여서는 안 된다”며 여덟 가지 영예와 여덟 가지 치욕(八榮八恥)을 제시했다. 요지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라는 것이다. 이후 이 발언은 대대적인 캠페인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사상 학습 운동 전문가인 후 주석의 전력을 되짚어보면 분명 심상치 않다. 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라 후계자 수업을 받기 시작한 1993년 그는 공산당 중앙 당학교 교장을 맡아 첫 사업으로 ‘덩샤오핑문선’을 제작, 덩의 사상을 다졌다.

이후 국가부주석으로 2인자로 올라섰던 장쩌민(江澤民) 체제에서는 ‘3강(講) 운동’, ‘3개(個) 대표론’을 국가지도이념으로 끌어올렸다. 덩의 개혁개방론과 장의 리더십을 확고히 다지는 조타수 역할을 줄곧 맡아왔던 후 주석이 이제 자신의 색깔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후 주석은 사상운동이 당ㆍ정의 정풍운동 및 인사혁신과 뗄 수 없는 함수관계를 갖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터득하고 있다. 3강운동 등을 통해 장쩌민이 정적을 차례로 제거해나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후 주석은 내년 하반기 17차 당대회의 인사개혁을 염두에 두고 영욕관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영욕관의 내용은 매우 소박하다. 양중메이(楊中美)가 쓴 후진타오의 전기를 보면 후 주석은 평소 ‘청동으로 거울을 삼으면 의관을 바로 할 수 있고, 옛 것을 거울로 삼으면 흥함과 망함을 볼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득과 실을 알 수 있다’라는 옛말을 즐겨 인용한다. 소박한 생활도덕을 내용으로 한 영욕관은 이런 신조를 표현한 것이다.

이런 도덕률은 부패정치와 생활부패를 척결해야 하는 중국 정치현실에서는 메가톤급 위력을 지닌다. 부패를 문제 삼아 언제든 반대편을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상하이방’의 핵심으로 후 주석의 견제를 받아온 천량위(陳良宇) 상하이 당서기가 최근 후 주석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22일 나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당정 인사 교체의 강도가 심상치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회주의 영욕관 운동은 제1장에 불과할 수 있다. 전임자 장쩌민도 권력을 다지기 위해 두 차례 사상 학습 운동을 벌였듯 후 주석도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역사책을 즐겨 읽는 후 주석은 체스와 마작, 노래를 좋아했던 덩샤오핑(鄧小平)이나 장쩌민 보다 역사책을 끼고 살았던 마오쩌둥(毛澤東)의 기질을 닮았다. 그래서 이번 열풍을 지켜보는 외부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한국일보 / 이영섭 특파원 2006-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