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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왜 과거로 돌아가려 하나?"
"미국, 영국처럼 FTA를 옹호하는 나라들은 오랫동안 보호무역주의를 시행해온 나라다.
영국이 미국에 FTA를 강요했을 때 미국은 '우리가 충분히 강해졌을 때만 FTA 협상에 착수할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한국은 국제법적으로
정당성이 없는 이 협상에 저항하고 미국의 압력을 국제사회에 고발하라."
프랑스의 국제문제 전문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사장이자 주필이며 대표적 대안세계주의 운동가 이냐시오 라모네의 말이다.
한미 FTA는 미국의 압력에 의해
강요됐다는 것. 그는 "미국의 패권주의는 문화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라며 "전 세계 모든 국가는 국제법상 그들의 문화다양성을 지킬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글의 법칙과 정의의 법칙은 다르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한국의 스크린쿼터에 강력한
지지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의 스크린쿼터 축소는 한발 한발 현실화되고 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의 일환으로 스크린쿼터 축소를 발표한 지 40여 일 만인 지난 7일, 영화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이 결국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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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7일 오전 이해찬 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스크린쿼터를 146일 이상에서 73일 이상으로 축소하는 내용의 영화진흥법 시행령개정안이
의결되자 '스크린쿼터 사수와 한미FTA저지를 위한 범국민대책위'는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무회의 결정을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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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오마이뉴스 권우성 |
| 지난해 10월 파리에서 열린 제33차 유네스코(UNESCO) 총회
본회의에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이하 문화다양성 협약)'이 통과된 지 100여 일 만의 일이다. 문화다양성 협약 초안
작성국이자 스크린쿼터제로 문화다양성 협약의 견인차 구실을 했던 한국의 현재 모습이다.
<오마이뉴스>는 이와 관련해 지난달
21일 프랑스의 불어권 공영 위성TV채널 <테베5몽드(TV5 Monde)> 사장인 장 자크 아야공 전 문화장관을 시작으로 영화운동가
피에르 리시앙, 프랑스 사회당(PS) 대선주자 중 한 사람인 자크 랑 전 문화장관, 프랑스 중견 영화감독 베르트랑 따베르니에까지 네 명을 연속
인터뷰했다. 프랑스 문화계 인사 릴레이 인터뷰의 마지막 주자는 이냐시오 라모네다.
1943년 스페인에서 태어난 라모네는
1972년부터 프랑스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해왔다. 문화평론가이자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를 스승으로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기호학
박사학위를 받은 라모네는 <커뮤니케이션의 횡포> <소리없는 프로파간다>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1997년 12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그가 쓴 '시장을 무장해제 하라'라는 제목의 사설은 이듬해 6월
'아탁(시민지원을 위한 금융거래과세연합, ATTAC)' 결성의 시초가 됐다. 그는 국제 NGO(비정부기구)인 '세계 미디어 감시기구'의
창설자이기도 하다.
이냐시오 라모네를 직접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각국의 창작자들이 시장의 안전지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하지 않으면 분명히 최강자가 승리하고 만다"며 "이것은 정글의 법칙이지 정의의 법칙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UN이
정한 '세계문화다양성의 날'(5월 21일)을 맞아 22일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 라모네는 칸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5월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도 한국의 스크린쿼터 사수투쟁사를 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라모네와 나눈
일문일답.
"노 대통령 존경하지만, 한미 FTA는 미국 압력에 굴복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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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주필 이냐시오 라모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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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박영신 | - 한국은
스크린쿼터 축소까지 감수하면서 한미 FTA협상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달 15일 전국 113개 단체가 모여 스크린쿼터 사수와 FTA 저지
대책위를 구성하는 등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시위도 한미 FTA 반대로 번지고 있는데.
"FTA를 보는 시각은 어떤
분야를 다루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문화 분야로 말하면, 지난해 유네스코에서 문화다양성 협약이 채택된 후 자국의 문화는 국제법으로 보호받게 됐다.
문화다양성 협약이 통과되기 전에는 세계화의 틀에서 자국 문화 보호의 적법성 여부에 관한 논쟁이 많았지만 문화다양성 협약이라는 토대가 마련된
지금은 이 논쟁을 넘어섰다. 각 국가는 문화다양성의 권리가 있다. 생물다양성 보존을 주장하듯 문화다양성을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한미 FTA 협상 개시에 대한 사회적 반발이 거세지자 노무현 대통령은 "FTA 협상 과정에
어떠한 압력도 없었다"고 해명하기도 했는데.
"미국의 패권주의는 문화 분야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늘
'정복해야 할 시장'이 있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중요한 시장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제작물들은 미국 제작물의 경쟁
상대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에 대해 내가 가진 모든 존경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는 미국의 압력에 의해 강요됐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한국은 첫째 국제법적으로 정당성이 없는 이 협상에 저항해야 하고 둘째 미국의 이 같은 압력을 국제사회에 고발해야 한다. 미국의 압력은
이미 다른 많은 나라에서 익히 겪어왔다. 미국은 많은 유럽 국가들이 자국의 문화를 포기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 FTA 협상으로 이득이나 폐해를 경험한 실례가 있다면?
"개발도상국의 경우, 어떤 보호대책도 없이
문화산업을 내버려둔 사례가 많다. 멕시코나 브라질, 쿠바 등 스크린쿼터를 유지하다가 포기한 국가의 영화산업은 사장됐다. 반면 한국의 경험을
모방해 쿼터 적용을 시작한 나라도 있다. 이전에 자국의 영화가 존재하지 않았던 베네수엘라는 약 1년 반 전부터 쿼터제를 시행하고 있다. 오늘날
상대적으로 발전한 자국 영화를 갖고 있는 아르헨티나도 이제 막 쿼터제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자국 영화 보호정책이 부재한 상황에서 미국에 저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와 같이 탄탄한 영화의 역사를 가졌던 유럽 국가들은 미국에
저항하지 못해 영화산업이 붕괴했다. 내가 며칠 전 방문한 로마를 보자. 수백 개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지만 이탈리아 영화는 5편에
불과했다. 영국과 독일도 몇몇 두드러진 영화인을 제외하면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 거론할만한 작품 또한 없다. TV나 만화 분야에서도 이
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한국이 해온 현명한 방식을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프랑스의
경우는 어떤가.
"프랑스를 비판할 부분은 많이 있겠으나 영화 정책에 관한 한 일관성이 있다. 프랑스는 특히 '문화다양성
협약'을 통과시키기 위해 유네스코 한복판에서 싸웠다. 문화를 대하는 프랑스의 입장은 정당하다. 프랑스는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를 이용해
유네스코가 인정한 '문화다양성 협약'을 무산시키려 할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는 문화가 경제 교역의 대상이 아니며 철저히
보호돼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자유무역은 물론 보호무역의 반대 개념이지만 문화는 자유무역에서도 보호주의가 원칙이다."
"어린 아이들은 큰아이들과 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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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시오 라모네가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와 <경제학에서 국가의 역할> 스페인어 판을 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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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박영신 |
| - 한미 FTA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FTA가 체결되면 양국 간 투자 불균형이 초래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FTA를 비롯한 자유무역 원칙이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데.
"FTA는 일반적으로 몇몇 나라에 혜택을 안겨주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허다하다. 중요 생산물을 갖지
못한 나라에서 FTA는 국경의 전면적인 개방을 의미한다. 자국 시장이 외국산 상품으로 채워지고 말 것이다.
한국인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는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를 통해 미국, 영국과 같이 FTA를 옹호하는 모든 나라들이 실상은 오랫동안 보호무역주의를 시행해온
나라라는 것을 매우 뛰어난 방법으로 증명해낸다. 영국이 미국에 FTA를 강요했을 때 미국이 어떻게 영국에 저항했는지 등 10여 가지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여기서 '우리가 충분히 강해졌을 때만 FTA 협상에 착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이를
'오락시간'의 은유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아이들이 매우 어릴 때는 또래의 아이들과 놀지 큰아이들과 놀지 않는다. 만약 큰아이들이랑 놀게 되면
큰아이들이 어린 아이들을 때릴 테니까. 어린 아이들이 성장하면 큰아이들의 무리에 섞이게 되는 것이다.
자유무역 시행 국가들이
실상은 보호무역주의 상태에서 어느 정도 경쟁력을 획득하고 난 뒤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방식'을 써왔다는 설명이다. 즉, 그들이 일정 단계에
오르도록 도와준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순간 자유무역을 주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대세로 인식되고 있는 현재, 문화적 예외를 주장해야 할 근거는 어디에 있나.
"각 나라가 문화 속에서 정체성을
발견하도록 하는 문화적 예외는 중요하다. 물론 모두에게 해당사항은 아니나 각각의 국가에는 매우 중요하다. 교류가 존재하는 것은 좋지만 이를테면
한 국가가 다른 문화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 상품만을 소비하는 것은 비정상이다. 우리는 문화 교류에 적극 찬성한다. 한국, 독일, 브라질인들이
가진 것을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각국의 창작자들이 시장의 안전지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히 최강자가 승리하고 만다. 최강자가 승리하는 것을 우리는 '정글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정의의 법칙이 아니다. 강자가 아닌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문화를 보호한다는 것은 한 국가의 정체성을 보호하는 것이다."
- 영화를 제외한
다른 영역은 개방하면서 굳이 영화는 보호해야 한다는 영화인들의 주장을 두고 '밥그릇 싸움'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나는
한국이 모든 영역을 개방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자동차의 경우 현재는 뛰어난 품질을 자랑하지만 오랫동안 질적으로 우수하지 못했던 까닭에
보호돼왔었다. 때문에 영국. 미국의 자동차는 한국 시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영화를 비롯한 다른 종류의 문화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됐다. 예방책이
그것이다. 오늘날 예방책을 포기하는 것이 신중한 대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화 분야는 보존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영화는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의 수많은 영화인이 위대한 예술가로 칭송받고 거의 모든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다. 이제 현실적인 영화 환경이
만들어지려는 상황인데 왜 과거로 돌아가려 하나? 이것은 영화산업을 부정하는 것이다."
"미국과 단둘의 만남을 피하라"
- 지난해 10월 유네스코에서 문화다양성 협약이 통과되긴 했지만 이것이 강력한 제재 능력은 없는 것
같다.
"미국과 같이 문화다양성 협약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들이 있는 것이지 문화다양성 협약의 본문을 읽어보면 이 협약이
강제성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WTO에서는 십중팔구 이 협약을 약화시키려 할 것이 분명하다. 지난해 12월 홍콩에서 열린 제6차
WTO 각료회의에서도 문화다양성 협약 무력화의 우려가 있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때문에 지금 미국이 한미 FTA와 같이 양국협상을 통해
문화분야를 포함한 시장개방을 종용하는 것이다. 현재 많은 나라가 미국과 양국협정을 모색하고 있는데 여기에 위험이 있다. 양국협정에 서명하면 안
된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원칙하에 움직여야 한다. 예술가들이 유네스코 협약을 지키는데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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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패권주의는 문화 분야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미국은 늘 '정복해야 할 시장'이 있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중요한 시장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제작물들은 미국 제작물의 경쟁 상대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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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박영신 | - 종종 미국
문화의 위협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미국문화가 야기하는 단 한 가지의 문제는 독점이다. 우수한 소설, 영화, 대중음악,
만화 등 양질의 미국문화가 있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미국 대중문화의 질이 아니라 미국 문화가 행사하는 독점력이다. 즉 전 세계의 문화를
판단하는 기준이 미국문화가 되고 있는 것이다.
실례로 프랑스에서 '법의 작용'에 대한 연구를 한 바 있다. 프랑스에서 법이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설문조사를 한 것인데 80%의 응답자가 미국식 법을 묘사했다. 미국영화에서 봐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식 법은 프랑스에
적합하지 않다. 프랑스의 배심원은 미국과 같은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프랑스인들은 TV를 통해 끊임없이 봐온 것들이 현실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또 미국의 대중문화는 오로지 시장에 의해 강제된 것이라 경박하다는 점도 부정하지 말자. 지배적인 문화가 타문화를 눌러 부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덧붙일 말이 있다면.
"한국은 프랑스와 함께 영화를 가장 잘
보호한 나라다. 특히 한국의 경우를 논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한국 영화인들은 농민과 연대해 투쟁의 장을 확대했다. 이것은 문화 그 자체의
의미를 넘어서는 투쟁이다. 독특한 경우다.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를 위한 투쟁은 필연적이다. 이것은 종종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투쟁으로 인식되지만 오늘날, 이 투쟁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자국의 문화가 사멸하는 것을 보는 순간 가장 먼저 후회할 사람들이다.
스크린쿼터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 보호정책을 포기한 나라는 자국의 영화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했다. 출판, 음반, 공연 등 문화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영화산업의 붕괴는 문화계의 파산으로 이어진다. TV가 영화를 대신할 수는 없다.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는 불가피하다. 이것은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것은 다른 문화와 동시에 존재하는 정당한 국가의 정체성을 보호하는 것이다."
기자소개 : 박영신 기자는 <오마이뉴스> 해외 통신원이며, 파리에 살고 있다.
(오마이뉴스 / 박영신 기자 200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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