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적대국 선제공격 변함없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16일 취임 후 두번째로 공표한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를 통해 테러집단 또는 적대국가에 대한 ‘선제공격(Pre-emption)’ 방침을 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또 북한의 핵확산 위험과 미 달러화 위조, 마약거래, 식량난 등을 거론하면서 “북한 정권은 이러한 정책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미 평화연구소에서 행한 연설 형식을 빌려 공개한 49쪽 분량의 보고서에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에서 선제공격이 차지하는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선제공격 방침은 9·11테러 1년 뒤인 2002년 9월 발표된 NSS에서 처음 명시돼 유럽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반발을 야기했던 전략으로 이라크 침공 등의 변수에도 불구하고 4년 만에 반복, 천명됐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거센 논란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선제공격 방침에 따라 단행된 이듬해 3월 이라크 침공에서 전쟁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WMD)를 찾지 못함에 따라 부정확한 정보에 근거해 전쟁을 벌였다는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 부시 대통령이 이를 거듭 강조함에 따라 적지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예방전쟁’으로도 불리는 선제공격론은 적의 능력과 의도에 대한 첩보만으로 전쟁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논리다.

부시 대통령은 “WMD를 동원한 공격의 결과가 잠재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미국은 팔짱만을 끼고 있을 수 없다”면서 “필요하다면 적의 공격 시점 및 장소가 불확실하더라도 먼저 군사력을 동원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또 북한을 이란, 시리아, 쿠바, 벨로루시, 미얀마, 짐바브웨 등과 함께 ‘7개 전제 체제(Despotic systems)’의 하나로 규정했다.

특히 유엔 안보리에 회부된 이란 핵위기와 관련, “우리는 이란으로부터 단일 국가로서는 가장 큰 도전을 받고 있다”고 적시해 눈길을 끌었다.

북한에 대한 언급은 4년 전 NSS와 비슷한 내용으로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심각한 핵확산 도전과 달러화 위조, 마약밀매, 주변국 위협, 식량부족 등을 거론하면서 “북한 정권은 정치체제를 개방하고 국민들에게 자유를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북한의 이중적인 태도와 불성실한 협상태도를 환기시키기도 했다.

그는 북한과 이란이 제기하는 위협과 관련해 “잠정적으로 그들의 나쁜 행동의 결과로부터 미국의 국가안보 및 경제안보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계속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인권남용사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전제국가의 개혁운동가들을 상대로 한 백악관 고위급 회담 ▲대외원조를 잣대로 선거와 시민사회 지원 ▲ 압제국가에 대한 제재 등의 조치를 취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번 보고서는 4년 전 NSS가 지나치게 미국 일방주의적이었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동맹국들과의 협조를 강조하고 WMD 위협에 대처하는 데 있어 외교적인 방식에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를 부여했다.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선거지원을 강조하면서도 무장단체 하마스가 압승한 지난 1월 팔레스타인 총선 결과를 거론하며 “선거 자체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현실론을 반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 공개에 앞서 15일 NSS 요약본을 받아본 많은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부정적인 논평을 내놓았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할란 울만 수석연구원은 “선제 공격이 잠재적으로 유용한 수단일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레 떠벌리거나 안보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우는 것은 엄청난 실수”라고 꼬집었다.

또 이란 핵문제에 대한 안보리 논의를 앞둔 상황에서 지나치게 이란을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 국가안보전략(NSS)이란

‘국가안보전략(NSS)’은 미국 행정부가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것으로 미국의 주요 국가안보 관심사가 무엇이고 미 정부가 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담고 있는 문건이다.

NSS는 한때 기밀문서로 분류돼 작성된 지 몇 년이 지나 기밀 해제가 된 후에야 일반에 공개됐으나 최근에는 미 정부의 정책 변화로 완성되는 즉시 공개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NSS는 1950년에 마련된 것으로 소련의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한 정책들을 담고 있다. 여기 명시된 ‘전쟁 억지(deterrence)’와 ‘봉쇄(containment)’라는 큰 틀은 냉전 시대 미국 외교·군사·경제 정책의 기반이 됐다.

최근에 나온 NSS는 9·11사태 1주년을 맞아 조지 부시 대통령이 2002년 9월17일 발표한 이른바 ‘부시 독트린’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를 통해 ‘선제공격’ 내지 ‘예방공격’ 원칙을 처음으로 천명했다. 이는 미국 외교가 지난 수십년간 유지해온 ‘전쟁 억제’와 ‘봉쇄’라는 틀을 폐기하고 공격적인 스탠스로 전환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NSS는 법률적인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미 국방부와 국무부의 정책결정 과정에 일종의 지침으로 활용된다.

(경향신문 / 김진호·손제민기자 2006-3-17)

<해설> 美, 선제공격전략 재확인 배경과 의미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가 16일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서 '선제공격 독트린(doctrine of preemptive war)'을 핵심전략으로 재확인했다.

대량살상무기(WMD)로 무장한 테러집단과 적성국가들이 미국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기 이전에 자기방위 원칙에 따라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게 요체다.

그 배경에는 지난 2001년 9.11 테러참사의 충격을 감안, 미 본토에 대한 어떠한 테러 시도도 뿌리부터 철저히 차단해 나가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깔려 있다.

즉 9.11 당시엔 피랍 항공기를 이용한 뉴욕 무역센터 등 산발적인 테러공격으로 끝났지만 불량국가들의 WMD 개발과 테러집단으로의 이전가능성이 매우 커진 상황에서 자국 안보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자위수단으로 선제공격 개념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따라서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 이전인 지난 2002년 9월에 이어 약 4년만인 이날 그간의 환경변화를 반영한 새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를 통해 선제공격전략 고수 방침을 밝힌 것은 정치,군사적으로 의미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국가안보전략(NSS)'은 미국인 보호와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를 정의한 것으로, 미 국방부가 4년마다 발표하는 국방전략보고서(QDR) 보다 상위개념의 미 정부의 글로벌 국가안보 전략이다.

특히 이번 선제공격 개념은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내세운 이라크 WMD 개발 증거를 발견하는데 실패, 더이상 이 독트린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돼 왔다는 점에서 더 큰 함의를 갖는다는게 중론이다.

즉 이란과 북한, 특히 이란의 핵개발 문제를 놓고 무력 행사가 거론되고 있는 시점이라는 게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고서는 이란에 대한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테러리스트들을 지지하는 정권이고, 이스라엘을 위협하며 이라크의 민주 개혁을 저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 뿐만 아니라 "이란과의 대결을 피하려면 핵문제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외교적 노력이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는 입장도 표명됐다.

이는 역설적으로 이란의 핵개발이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를 심대하게 위협한다는 결론이 내려질 경우 무력공격을 시도할 수도 있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실제 이번 선제공격론은 과거 냉전시대 미 외교의 주축이었던 '억지와 봉쇄'의 개념에서 벗어나 적들이 미국을 공격하기 전에 미리 공격을 가한다는 매우 적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을 이란, 시리아, 쿠바, 벨로루시, 미얀마, 짐바브웨와 함께 '폭정 국가' 반열에 올린 것은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부시가 폭정의 종식을 거듭 확인하면서 북한의 위폐, 마약 불법 거래, 미사일을 통한 한국과 주변국들에 대한 위협 등의 문제를 제기한 것은 선제공격의 대상에서 결코 북한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강력히 시사했다는 해석도 없지 않다.

미 언론들도 부시 대통령의 대북한 용어 사용 수위가 거의 이란과 유사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이란에 대해 사용한 '대결'(confrontation)이라는 용어는 자제했다.

대북 무력행사나 북한 김정일(金正日) 정권의 인위적 교체를 원치 않는다는 참여정부의 분명한 입장 표명과 북한의 핵포기를 유도하기 위한 6자회담이 진행중이라는 점이 감안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보고서가 총 49페이지 분량 중 중국과 러시아, 시리아에 대해 상당한 분량을 할애,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러시아에 대해선 민주적 자유 가치관 훼손을, 중국에는 미중 무역마찰을 감안,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설 것을 거듭 주문했다.

그 이면에는 9.11 이후 전세계를 상대로 한 테러와의 전쟁, 석유자원 고갈에 따른 에너지 확보경쟁, 군사력 강화 등 열강들간 21세기 신(新)패권 각축전 속에서 미국의 세계지배 전략의 변화를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특히 이란 핵개발 의혹에 대해 유엔 안보리의 결의안 채택과 경제제재에 소극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불만, 세계 에너지자원을 둘러싼 중러간 밀착으로 '신(新)냉전 체제' 회귀 움직임 등을 겨냥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미국이 최근 인도와 폴란드 등 동구 국가들에 대한 구애를 노골화하고 있는 것은 미국-인도-일본-동유럽과 중국-러시아-이란을 축으로 하는 블록간 대결구도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

이번 보고서에서 백악관이 동맹과 '변환외교'(transformational diplomacy)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집권 1기의 일방주의식 외교에 대한 우방들의 불만을 감안한 것으로 미 언론들은 해석했다.

앞서 미국은 냉전체제 붕괴로 전략적 가치가 떨어진 러시아와 유럽지역 외교관을 줄이는 대신, 경제적 가치가 급부상한 동부및 중부아시아, 테러세력 근거지인 이슬람 국가, 반미감정이 거세게 불고 있는 중미지역에 외교력을 집중하겠다는 '변환외교'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동시에 미국은 유사시 유엔과 나토 등 공식조직들의 결정만 무작정 기다리진 않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2004년의 쓰나미 같은 특정상황이 발생했을 때 즉각 대응이 가능한 비공식 조직이나 그룹에 의존할 수 있다고 명시함으로써 유엔 등의 협조를 구하지 못할 경우 미국과 동맹국 중심으로 '맞춤형 대응전략'에 나설 수도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연합뉴스 / 조복래 특파원 2006-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