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예술과 경제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이제는 잊혀져 가고 있지만, 올해는 모차르트의 탄생 250주년이다. 모차르트가 살던 시기, 즉 18세기 말이 봉건주의의 중세에서 자본주의 경제로 넘어가던 시대였듯이, 모차르트의 음악도 과도기적 음악이었다. 그보다 앞서 살았던 바흐는 영주와 교회에 매여 있던 음악가였다. 지금은 우리가 음악의 아버지라고 추앙하지만, 당시에 바흐는 자기의 고용주인 귀족에게 "고귀하고 관대하고 지극한 위엄을 갖추신 각하의 충실한 하인이자 노예 올림"이라고 인사를 올려야 할 정도로 예속되어 있던 존재였다. (상업문화예찬, 248쪽) 그 당시에는 영주들과 교회 말고는 돈 내고 음악을 즐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산업혁명과 더불어 부르주아 계급이 생겨난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60년대 이후 신흥 부자들이 생겨난 것과 같은 현상이다. 경제적 여유를 가지게 된 그들은 과거에 귀족만이 즐길 수 있었던 음악을 즐기게 되었다. 음악도 그들을 상대로 하는 대중음악이 생겨나게 되었고, 모차르트도 그 덕을 톡톡히 본다. 지금은 고전음악으로 분류되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요즈음으로 따지면 저속한 코미디 공연쯤에 해당할 것이다. 물론 모차르트도 잘츠부르그의 궁정음악가 노릇을 하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새로 생겨나기 시작하던 일반 소비자 상대의 대중적 상업음악에도 몸을 담그기 시작했다.

그보다 뒤 세대인 베토벤은 귀족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서 일반 청중들을 대상으로 한 철저한 상업음악가로 자리 잡는다. 이제 베토벤에게 귀족들은 조금 더 부유한 하나의 소비자에 불과해졌다. 베토벤이 리히노프스키 공에게 "영주는 수천이나 계십니다. 그러나 베토벤은 한 명뿐입니다"라고 배짱을 부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자신의 생존 기반이 영주가 아니라 익명의 소비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정은 미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봉건시대나 왕정시대에 화가란 주문을 받아 왕이나 귀족의 초상화를 그려주던 사람이었다.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아는 렘브란트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자본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익명의 다수 소비자를 위한 미술 시장이 생겨났고, 그러면서 미술품들이 초상화 또는 주문생산이라는 좁은 영역을 벗어나서 지금과 같은 창작의 자유와 다양한 미술품 시장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것을 배경으로 밀레는 ‘이삭줍기’와 ‘만종’ 같은 풍경화에 천착할 수 있었고, 그가 속한 바르비종파의 새로운 화풍은 마네, 고흐, 고갱 등으로 대표되는 인상주의로의 길을 열어 주었다.

예술가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 모르지만, 예술의 수준은 경제의 발전 상태를 반영한다. 즉 돈이 있는 곳에 예술이 있고, 또 돈을 대는 사람의 뜻에 따라서 예술의 성격도 형성된다. 이런 면에서 현대의 예술가들은 자본주의 발전의 가장 큰 수혜자들이다. 자본주의가 성숙되어 익명의 그리고 다수의 소비자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팔 수 있었기 때문에 프리랜서로서의 그들의 위치가 유지될 수 있었고, 그들의 재능과 창작욕구를 자유롭게 펼쳐 보일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그렇다. 예술이라면 천민이던 사당패나 기생이 하던 일이었지만, 이제 가수와 영화배우, 뮤지컬 배우들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예술가들이 딴따라와 환쟁이 처지에서 벗어나서 아티스트와 화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의 정책이나 배려 때문이 아니라 그 동안 우리가 이루어낸 경제성장과 풍요 덕분이다. 왕성한 경제력만큼 예술과 문화의 발전을 촉진하는 것은 없다.

이런 사정에 비추어 본다면 최근 스크린쿼터의 축소에 대한 반대는 예술인들 스스로를 위해서도 안타깝다. 자유무역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우리의 경제성장 속도가 빨라지리라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한다. 스크린쿼터를 유지하기 위해 FTA를 포기하면 소득 증가의 속도는 느려지고, 그만큼 예술품 전체에 대한 시장도 줄어든다. 스크린쿼터를 통해 한국 영화의 국내 시장은 더 넓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전반적 소득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면 음악과 미술과 문학 등 대부분 다른 예술 분야의 발전은 지장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술의 발전은 경제발전과 같이 간다.

(헤럴드경제 2006-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