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쓰면 난 죽어… 머리맡에 종이·펜 두고 자”

[조선인터뷰] 최근 임명장 받은 한국예술종합학교 황지우 총장

“예술이라는 형극의 길에 제발로 들어온 여러분을 축하합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예종) 총장이 된 황지우(54·黃芝雨) 시인은 2일 서울 서초동 예종 캠퍼스에서 열린 신입생 입학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괴로운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황홀한 것이다. 왜냐하면 불멸이기 때문이다.” 황 총장은 이어 “나는 쓰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독일 시인 릴케의 말을 이어갔다.

그는 작년 12월 21일 교수 투표를 거쳐 총장으로 선출됐다. 최근 정부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황 총장의 첫 공식 일정은 신입생 입학식. 예종은 음악원 연극원 영상원 무용원 미술원 전통예술원 6개 장르가 모여 있는 국립예술학교다. 황 총장은 신입생들에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공예(工藝)의 신 헤파이스토스도 거론했다. “바람둥이 제우스가 앙앙대는 부인 헤라와 부부 싸움을 하다가, 패기 시작했는데, 요즘 말로 하면 가정 폭력의 원조였다. 아들 헤파이스토스가 대드니까, 제우스는 아들을 발로 차버렸다. 하늘 끝에서 지상으로 추락한 헤파이스토스는 절름발이가 됐지만, 그는 최고의 대장장이가 됐다. 무릇 예술가란 어딘가 눈에 띄는 결함이나 결핍이 있다. 예술가는 견딜 수 없는 결핍 속에서 위대한 무엇을 해낸다. 여러분도 자신의 결함을 자신의 특징으로 ‘잇빠이’ 키워라.”

― 당신은 지난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조직위 예술총감독의 소임을 마친 뒤 안식년 휴가를 얻어 몽골 초원으로 갈 계획이었는데….

“인생 ×됐다. 몽골 초원에서 양떼를 키우며 살고 싶었는데, 또 덫에 걸려 시간을 차압당했다. 지금 몽골의 내 양떼들이 눈을 맞으며 흩어져 있을 텐데….”

― 많은 사람들은 황 총장을 80년대 엄혹했던 체제를 풍자적 언어로 비판한 시인으로 기억하지만, 이제 당신은 국립 예술 학교의 총장이 됐다.

“재야에서 제도 안으로 들어온 셈인데, 들판의 말(馬)이 모이 먹으러 외양간으로 들어왔다가 족쇄가 채워져 버린 것이다. 그런 한탄이 왜 내게 없겠는가. 내 연구실에는 도연명 초상화가 있다(※시인 도연명은 13년 동안 공직에 있다가 전원으로 돌아가 그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었다.) 50대라는 나이는 자기만의 삶을 주장하기에 힘들다. 이 나이가 주는 옵션이다. 세상의 중간 허리로서 받쳐줘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관리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

― 총장으로서 추진할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나는 시인으로서 ‘문학의 은둔’을 주장했었다. 막강한 시장의 흡반으로부터 스스로 단절돼 문학이 더 고독해졌지만 독자를 구걸하지 말자고 했다. 그러나 내 삶 자체가 이미 시장에 편제되어 결정되고 있는데, 관념적으로 부정한다고 하는 것은 위선이다. 오늘날 시장자체가 불가항력적이다. 그 어느 예술도 시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에서 순수 기초 예술가들이 적극적으로 시장과 함께 선기능(善機能)을 할 방법은 없는가. 총장을 맡은 내 요즘 고민이다. ”

― 대권주자인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당신은 오랜 친구 사이다. 그래서 당신의 예종 총장 임명을 정치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70년대 가파른 시대를 벗으로서 고난을 함께 통과했던 우정을 부정할 수 없다. 그는 정치인이고, 나는 시와 문화라는 영역에서 따로 길을 걷는 사람이다.”

― 요즘 문화계 현안은 스크린 쿼터 축소를 둘러싼 논란이다.

“내 개인적 생각을 말할 수밖에 없다. 스크린쿼터 축소는 반대다. 자유무역협정(FTA)은 의료와 교육 그리고 영화를 비롯한 문화를 포함하고 있다. 이 넓은 세상에 ‘제국’이 정복해야 할 외부가 더 이상 없는 세계가 되더라도, 스크린쿼터는 문화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방어벽이자, 우리 내부의 숨통과 같은 진공이다.”

― 예종 총장으로서 당신은 ‘융합 교육 시스템’ 구축을 주안점으로 둔다고 하던데.

“백남준과 같은 예술가가 우리 학교에서 많이 나와야 한다. 어릴 때부터 재능이 결정되는 음악과 무용은 별도로 치더라도, 미술 영화 연극은 명백히 ‘융합 장르’다. 인문학과 예술, 예술과 과학이 왕성한 교류를 통해 다학제(多學際)적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학생이 스스로 자기 전공을 설계하면서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 우리 학교의 나아갈 방향이다.”

― 그동안 예종이 한국 문화에 기여한 것은 무엇인가.

“한류(韓流)라는 문화 폭풍의 지속가능성이 앞으로 중요 화두다. ‘겨울 연가’는 우리 학교 영상원 졸업생 두 명이 쓴 것이다.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이 된 연극 ‘이(爾)’를 쓴 김태웅은 내 제자이고, 그 작품은 우리 학교 극작과 대학원 졸업작품이었다. 우리 학교가 한류 콘텐츠의 진앙 역할을 했다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

― 총장으로서 할 일 중 하나가 학교 발전 기금을 모으는 것인데… 시인이 잘 할 수 있겠나.

“고민이다. 지난 13년 동안 모아놓은 학교 발전 기금이 13억원에 불과하니… 이런 거 말고 뭐 감각적인 질문은 없나.”

―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소리는?

“클라리넷 소리다. 어린 시절 집 부근에 있던 사범 학교의 브라스 밴드가 연습할 때 들려오던 클라리넷 소리에 ‘뿅가서’ 논둑을 건너 뛰어갔다. 내가 막막할 때 들었던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은 그 어떤 섹스나 음식보다 황홀했다.”

― 총장 임기가 4년이다. 앞으로 시를 쓸 것인가.

“앞으로 4년 동안 시를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난 1월 백담사 만해 마을 창작집필실에 들어갔다가 메모만 들고 나왔다. 내 속에서 부글거리는 시의 거품이 언제 숙성될까. 하지만 머리맡에 빈 종이와 볼펜을 놓고 잠을 자겠다.”

황지우 총장은.....

시인의 특권은 자학을 해도 아름답다는 것이다.황지우 시인은 80년대 이후 한국 문단에서 시인에게 주는 온갖 문학상을 다 받았고, 시집도 잘 팔리는 ‘통속’ 시인이다. 그의 어법에 따르면 ‘통속’이란 세상과 통하는 것이므로 좋은 의미에서 동시대를 사는 독자와 소통이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는 “아, 내 시집이 왜 이렇게 잘 팔리지, 나는 아마 삼류 시인인가봐…”라고 종종 자책한다.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시인은 이 땅에 그리 많지 않다. 그는 ‘오만’을 떨면서 ‘겸손’을 지향하는 언어의 마술사다.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황 시인의 본명은 황재우다. 미학이론서 번역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젊은 시절 인쇄소에서 오자가 난 것을 갖고서 ‘黃芝雨’라는 근사한 필명을 지어냈다. 언어를 갖고 노는 시인에 그치지 않고 그림도 잘 그리고, 조각 전시회도 열었을 정도로 손재주가 많다. 한때 사진에도 심취했다. 그래도 그는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그의 휴대전화 소리는 노래 ‘Over the rainbow’(무지개 너머)다.

(조선일보 / 박해현 기자 200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