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뷰] '왕의 남자' & 스크린 쿼터

영화 '왕의 남자'가 이번 주말 '태극기 휘날리며'가 기록한 1174만 명 돌파는 물론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1200만 관객 시대를 열 것으로 보인다. 1200만 돌파를 눈앞에 둔 '왕의 남자'에 기자도 숫자 하나를 보탰다.

요즘 기자는 한국 영화를 보는 재미에 산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 영화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엉성한 시나리오, 밋밋한 화면, 단조로운 대사를 짜깁기한 그저 그런 볼거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다. 한국 영화만 본다. 요즘 한국 영화는 다양한 소재, 탄탄한 시나리오, 아기자기한 그림, 감칠맛 나는 대사가 잘 버무려진 훌륭한 예술이다.

기자 스스로 옛날에는 한국영화에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적용했지만 지금은 ‘코리아 프리미엄’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영화는 일단 재미있다. 무엇보다 기자를 기쁘게 하는 것은 대사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명색이 국제부장을 맡고 있지만 어쩌다 미국영화를 볼 때는 자막을 따라가기 바쁘다. 간혹 대사가 들릴 때도 있지만 음미하기보다는 아 저런 상황에서는 저런 표현을 쓰는 구나 정도 밖에 느끼질 못한다.

영화의 핵심은 물론 그림이다. 그러나 대사 또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상황에 맞는 적확한 표현은 저절로 기자의 무릎을 치게 만든다. 둔필이지만 그래도 글을 도구삼아 밥벌이를 하는 기자는 요즘 영화 또는 드라마 대사에서 ‘한국어의 재발견’을 하고 있다.

예컨대,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영화라 할 수 있는 ‘친구’에 나오는 그 유명한 “마이 뭇다 고마해라”를 영역한다면 “I had enough, Stop" 정도가 될 것이다.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 정도면 의미상으로는 거의 완벽한 번역이다. 그러나 ‘뉘앙스’까지 오롯이 전달할 수 있을까.

사실 “마니 뭇다. 고마해라”는 아무리 번역을 잘한다 할지라도 한국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뉘앙스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한국 영화는 ‘언어’라는 쿼터를 애초부터 갖고 있는 것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선결 조건이 한국의 스크린 쿼터 축소다. 이에 따라 스크린 쿼터 축소가 한국 영화산업은 물론 한국 경제 전체의 화두가 되고 있다. 스크린 쿼터라는 보호막 덕택에 실력을 키운 한국 영화가 이제 그 보호막을 걷어낼 때가 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럼에도 영화인들이 스크린 쿼터 축소를 반대하는 것은 그동안 이렇다할 보호막도 없이 일방적 희생만 강요당했던 농민을 생각할 때, 너무 이기적이다. 그들의 주장이 어리광처럼 들리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한국 대중문화의 대표적인 아이콘인 가수 신중현씨가 “음반에는 쿼터가 없었다”고 말했을까.

한국 영화에도 ‘코리아 프리미엄’이 적용되고 있다. 이제 한국 영화 산업은 ‘인큐베이터’가 필요한 미숙아가 아니다.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당당하고 늠름한 어른이다. 한국 영화가 인큐베이터를 박차고 나올 때다.

(머니투데이 / 박형기 국제부장 200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