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영화인들은 영화로 돌아가야

무조건 내 것만 지키려다 모든 것을 잃을지, 조금 양보하며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나은지의 판단은 선택의 문제다. 시위에 나선 영화인들은 스크린쿼터가 한국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지켜주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수준에서 하루도 양보할 수 없고, 한발도 물러설 수 없다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며 필요한 절차를 밟고 있다 . ‘미국과의 FTA에 관계없이 스크린쿼터는 없어져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의견을 내는 정부 고위 인사가 있는가 하면, 대통령 또한 “어린아이는 보호하되 어른이 되면 다 독립하는 것 아니냐 ”며 거들기도 했다. “국내 이해단체의 저항 때문에 못 가는 일 (FTA 체결을 못하는)은 절대 없도록 하자”는 말은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영화인들에게는 낙담스러운 대답처럼 들린다.

창과 방패처럼 마주치는 상황이지만,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변할 지를 몇 가지 방향으로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 대안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영화인들이 시위를 하건 말건 상관없이 정부의 발표대로 7 월부터 절반으로 줄어드는 경우다.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인다. 그럴 경우 영화인들의 입장은 군색해진다. 축소는 하루도 안된다고 무조건 버티기만 하다가 결국 주장도 의지도 실현하지 못한 채 밀려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영화인들의 요구에 밀려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현행대로 유지하겠다며 태도를 바꾸는 경우이다.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대외적인 신인도는 물론 특정 분야의 정책적 현안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는 책임을 떠안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시행령에 근거해서 적용 일수를 산정하고 있는 현행 스크린쿼터제를 아예 영화진흥법에 명시하는 입법 과정을 밟는 경우이다. 영화인들이 전략적 기대를 걸고 일부 국회의원들도 거론하고 있는 방안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깨 주우려다 참기름 쏟는 격이 될 가능성이 더 짙다.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지나치게 경직화시키는데다 보다 넓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국익의 문제를 특정한 분야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가서는 안 될 방향이다.

결국 어느 경우든 선택의 대안은 막혀 있는 상태다. 그렇다고 마냥 갈 데까지 가보자며 버티는 것은 무모하다. 1988년의 외국영 화직배 저지, 1999년의 일본 영화 수입 개방 논란 때도 영화인들은 필사적으로 반대했지만 개방을 막지도, 대안적 보상을 얻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한국영화가 기울거나 붕괴되지도 않았다.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발하는 영화인들이 보다 시야를 넓혀야 하는 대목은 ‘전면적인 폐지’가 아니라 ‘축소’라는 점 이다. 현행 수준에서 절반으로 줄였다고 하지만 실제로 연간 106 일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1개월 정도의 범위다. ‘무조건 안된다’고 하기에는 명분도, 한국영화 현황도, 여론도 따르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영화인들은 정부와 대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 축소의 폭이 문제라면 조정 가능한 날 수를 제시하거나 다른 지원 방안을 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관행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106일을 기준일수로 정하고, 여기에다 현재와 같은 경감 규정을 적용함 으로써 연간 최대 106일에서 최저 66일까지의 범위에서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는 대안처럼 보인다. 영화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열정은 지금까지의 과정으로 충분하다. 그동안 한국영화에 보내준 관객과 국민의 관심 및 지지가 실망으로 돌아서게 해서는 안된다. 영화인들은 영화인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조희문 / 상명대 교수·영화평론가>

(문화일보 2006-2-21) 

"쌀과 영화의 부적절한 만남…상처는 농민들의 몫"

중앙대 문예창작과 이대영 겸임교수가 최근 스크린쿼터 영화인대책위가 전국농민회총연맹과 함께 주최한 ‘쌀과 영화’ 촛불문화제와 관련, “부적절한 만남은 불행한 이별을 낳는 법”이라며 “영화계 전체가 ‘타이타닉’을 타고 ‘이념의 바다’속으로 침몰해 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21일 웹진 뉴라이트(www.new-right.com)에 올린 글에서 “영화인 집행부가 ‘촛불문화제를 기점으로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운동을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대국민 운동으로 확대하고, 각계 시민단체, 지역 활동가, 각 대학 학생회와 연대해 대정부 투쟁을 벌일 계획’이라고 선포하는 순간 순수하게 스크린쿼터를 지키자던 영화인의 시위가 하루아침에 이념투쟁과 정치투쟁으로 돌변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당신들이 그토록 농민을 걱정하고 사랑했다면, 왜 한-칠레 FTA때는 침묵하고 있었던 것인가”라며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 점에서 당신들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고, 가엾은 농민들이 당신들의 기득권 수호를 위해 벌이는 정부와의 게임에 이용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처음에는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시위를 하다가, 갑자기 농민 어르신들을 초대하여 큰 절을 올리는 것은 무슨 속셈인가”라며 “어차피 평생 동고동락할 수 없을 것이고, 곧 이별의 수순을 밟을 터인데, 그렇다면 누가 더 상처를 받을 것 같은가. 왜 그런 무모한 연합투쟁을 시작한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스크린쿼터를 지키기 위한 영화인대책위의 전략은 처음부터 여론을 무시한 채로 패착을 거듭했다”며 “영화배우 최민식 씨는 문화훈장을 반납해 국가와 국민에게 모욕감을 안겨줬고, 일인 시위에 나선 영화인들은 피켓 문구에서 문화 기득권을 주장해 팬들을 제외한 많은 국민들을 실망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모두가 안타깝게도 다 패착이었고, 막다른 골목 끝에서 FTA의 최대 피해자인 농민들과 만나게 되면서, 결국 어처구니없는 행사를 계획하고 집행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불필요한 이념 논쟁에 휘말려 영화계가 사분오열 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전략을 서둘러 바꾸는 것이 좋겠다”라며 “잠시 악몽을 꾸었다고 생각하고 오천년 문화민족의 세계인을 향한 우정과 사랑과 꿈, 그리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눈물까지도 냉정하게 카메라에 담아주기 바란다. 그럼 우리 국민들도 영화인들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주고 다시 힘차게 응원해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 김재은 기자 2006-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