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유 훔친 기막힌 母情..."아이 굶길 수 없어"

유아용품 절도 20대女 덜미

"돈이 없어서 분유와 유아용품을 훔치게 됐어요. 한 번만 용서해주면 다시는 안 그럴게요."

지난 17일 오후 9시경, 20대 초반의 여성이 갓 돌을 넘긴 애기를 품에 안고 흐느끼며 경찰들과 함께 대전 동부경찰서 강력범죄수사팀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 여성은 대전시 대덕구에 사는 A씨(22)로 이날 오후 5시 20분경 대전시 동구 용전동 모할인점에서 분유와 각종 유아용품 등을 훔치다 종업원에게 발각, 경찰로 인계된 것.

A씨가 이날 훔친 물건 값은 모두 11만 7000 원에 불과하지만, 경찰조사결과 지난해 11월부터 이날까지 이 할인점에서만 6차례에 걸쳐 총 40여 만 원 상당의 유아용품을 훔친 것으로 밝혀졌다.

A씨는 분유와 유아용품의 재고물량이 자주 줄어드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할인점에서 곳곳에 CCTV를 설치한 사실을 모르고 이날 훔친 물건을 가슴에 품고 계산대를 빠져나가다 덜미를 잡혔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남편은 서울에서 배달 일을 하고 있지만, 남편이 보내주는 돈은 생활비로 쓰기도 빠듯해 분유와 유아용품을 훔치게 됐다"며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다.

경찰은 워낙 늦은 시간인데다 A씨가 "아이에게 먹일 분유도 없다"며 계속 눈물만 흘리고 있어 인적사항만 확인하고 3일 후 경찰에 출두해 재조사를 받으라고 한 뒤 집으로 돌려보냈다.

경찰 관계자는 "얼마나 돈이 없었으면 유아용품과 분유를 훔쳤겠느냐"고 동정하면서도 "죄는 죄이기 때문에 재조사를 한 후 절도 혐의로 입건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노컷뉴스 2006-2-21) 

장애 때문에 고아 신세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겪는 문제들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텐데요.

장애인으로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워낙 힘들다 보니, 장애아를 낳은 부모들이 양육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버려지는' 건데요. 장애아를 키우는게 두려워서, 또 현실적으로도 너무 어려워서 이런 결정을 내리시는 거겠죠?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도 그렇고, 부모입장에서도 평생을 지고가야할 마음의 짐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최영철 기자! 취재해보니까, 장애아 부모들의 어려움이 이해가갈만도 하셨다구요?

<리포트>

네, 장애가정들이 말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우선 경제적인 부담이라고 합니다.

또한 믿고 맡길만한 시설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 24시간 돌보야하는 스트레스도 막중한데요.

미흡한 장애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보다도 가정을 잃고 버려지는 장애아들입니다.

이들을 통해서 우리나라 장애 정책의 현주소를 짚어봤습니다.

경기도의 한 장애인 복지 시설.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70명 가량의 장애 아들중 약 70%가 보호자 없는 이른바 무연고 장애아입니다.

언니 오빠들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곳의 막내둥이 설아.

눈 오는 날 이곳 문 앞에 놓여져 있었다고 해서 설아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요.

누굴 보든지 방긋 웃고, 음악만 나오면 춤을 추는 설아.

한창 부모님앞에서 재롱을 부릴 나이인 세 살배기 설아는 다운증후군이라는 장애 때문에 이곳에 맡겨지게 되었습니다.

<인터뷰> 정희성( 재활교사) : "저희 막내둥이 설아 같은 경우에는 부모님이 너무 일찍 겁을 먹으셨던거 같아요. 의료쪽 판정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부모님 나름대로의 생각을 하셨기 때문에 아동이 이쪽으로 오게 되었는데 일반 아동하고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이곳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교사들은 부모들이 자식을 포기하는 데에는 무엇보다 장애아 가정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이 미흡하다는 것이 큰 원인이라고 지적하는데요.

현행법상 기초생활수급대상자 가정이 아니면 장애아가 있다고 해도 직접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인터뷰> 이순란(재활교사) : "어차피 못 기를 바에는 남은 가족이라도 제대로 길러서 가정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에서 자녀들을 시설 근처에 놓고 가는 경우가 있는것 같아요."

장애아들이 치료 받고 있는 시립 아동 병원.

이곳에도 보호자 없는 장애아들이 80%를 차지합니다.

힘겨워 보일정도로 큰 머리를 가진 경수.

경수의 병명은 선천성 무뇌수두증인데요.

미혼모였던 엄마는 태어날때부터 뇌가 없던 경수를 입양기관에 맡겼지만, 입양이 되지 않았고, 결국 이 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경수의 머리 속에는 물이 가득차 있는데요.

빨리 물을 빼주어야했지만 경수는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했고,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이 병원의 무연고 장애아들은 대부분 미혼모가 낳은 아이이거나 저소득층 가정에서 양육을 포기한 경우입니다.

병원측에서는 막중한 경제적인 부담이 부모가 자식을 포기하게 되는 중대한 요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터뷰> 정경은(서울 시립 아동병원장) : "장애아가 있으면 그 가정에 부모뿐만 아니라 형제 자매가 전부 사회생활하는데 지장이 있고 아이들을 키우는데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많은 비용이 듭니다. 그런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버리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식을 포기하겠다는 선택. 결코 쉽지는 않았을텐데요.

발달 장애가 있는 범석이 부모님들은 무엇보다도 마음놓고 맡길 곳이 없기 때문에 24시간 내내 아이와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점이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라고 말합니 다.

<인터뷰> 권유상(발달 장애아 부모) : "집사람이 얘 때문에 스트레스가 누적되서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을 해야 되는데...범석이를 맡길데가 없어서 통원 치료밖에 못했던 적이 한번 있었거든요."

한 시라도 엄마의 손길이 없어서는 안되는 범석이 때문에 어머니의 건강은 뒷전인데요.

이제 스무살을 넘긴 성인이지만 아직도 범석이 어머니의 어깨는 무겁기만 합니다.

<인터뷰> 권유상(발달 장애아 부모) : "부모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 주변에 우리 아이들을 쉽게 맡기고 엄마들이 사생활도 할 수 있고 직장도 가질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장애아 부모들의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는 대안으로서 가족형 그룹홈이 최근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데요.

장애아들이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지역 사회에 적응하며 생활할 수 있다는 점이 그룸홈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이곳은 무연고 장애아들로 이루어진 그룹홈인데요.

<인터뷰> 신해준(그룹홈 거주) : "형도 있고 동생도 있어서 참 좋아요."

무연고 장애아든, 부모가 있는 장애아든 그룹 홈은 독립된 성인으로 자라나 기에 도움이 되는 점이 많은데요.

그룹홈이 좀 더 활성화되기를 원하는 이들은 많지만 현재로서는 인력이나 재정면에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이 곳에서도 한명의 사회 복지사가 24시간 내내 5명의 장애 아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인터뷰> 염해정(사회복지사, 그룹홈 거주) : "일반 아동이 아니라 무연고 장애 아동들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순간적으로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무슨 급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다른 분한테 부탁을 해야하는데 그런게 쉽지 않을 때가 있어요."

가정을 잃고 버림받는 장애아들.

한 가정이 해체될 정도로 기본적인 생존권 조차 보장 받지 못하는 장애 가정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은데요.

좀 더 현실적인 지원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는 것, 장애 가정들의 한결같은 바람이었습니다.

<앵커 멘트>

먼저 저런 현상, 상황을 개탄하기 전에 대책이 있어야 된다,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 돼야 된다.

이런 촉구가 공허하게 되지 않도록 빨리 상황이 나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겠죠?

(KBS 2006-2-21) 

"제대로 된 장애인 재활병원, 함께 지어봅시다"

한국에는 470만 명의 장애인이 있다. 전체 인구의 10분의 1에 달하는 수다. 또 매년 30만 명이 교통사고나 뇌졸중 등으로 새로 장애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국내 장애인들 가운데 140만 명은 계속 치료받아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전국에 재활병원은 신촌 세브란스 재활병원과 국립재활병원, 삼육재활원, 서울재활병원 등 4개뿐이며, 전국의 155개 의원들을 합쳐도 병상이 4000여 개에 불과하다. 결국 140만 명이 4000개의 병상에 입원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셈이며, 입원하기 위해서는 보통 두세 달은 기다려야 한다.
  
입원한 뒤에도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다수의 재활병원은 5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병실에 10명 이상을 입원시킬 정도로 서비스 수준이 열악하다. 이렇게 밀집된 공간에서는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을 뿐더러 정서적인 치유는 물론 제대로 된 재활 치료도 불가능하다. 물리치료와 작업치료 등 치료시간은 1시간 반 정도밖에 안 되는데, 이를 위해 환자가 하루종일 좁은 침상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밖의 필요한 것들은 가족이나 간병인 등을 통해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안락한 재활병원이 우리나라에는 단 한 곳도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재활병원에서 진정한 재활치료가 가능한가"

비영리 재단인 푸르메재단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재활전문 병원 설립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푸르메재단의 백경학 상임이사는 8년 전 아내가 영국에서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고 험난한 치료기간을 거치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 재활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절감했다. 특히 영국이나 독일 등의 재활병원과 우리나라의 재활병원을 비교하면서 '우리나라에도 환자 중심의 쾌적한 재활전문 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는 총 4억 원 상당의 사재를 털어 푸르메 재단을 창립할 종잣돈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의 취지에 공감한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이 이사장으로,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와 강지원 어린이청소년포럼 대표 등이 이사로 참여하면서 명실상부한 재단의 모습이 갖춰졌다. 현재 푸르메 재단은 재활전문 병원을 설립한다는 꿈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여러가지 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실제로 병원을 짓기까지는 여러가지 난관을 더 건너야 한다.
  
"이러한 일에 지자체가 땅도 제공하지 않겠다는 것은 책임방기"
  
일단은 병원 부지가 문제다. 기존의 다른 재활병원과 같이 콘크리트 건물에 주차장만 있는 병원이 아니라 독일 도르트문트 재활병원이나 일본 고베의 행복촌과 같이 전원마을과 같은 병원을 짓기 위해서는 최소한 5000평 이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서울이나 경기도에서 이 정도의 땅을 사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푸르메재단에서는 정부와 지자체에 재활병원 건립부지를 무상으로 임대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실제로 60만 평 수준인 고베의 행복촌은 고베 시에서 땅을 제공했고, 의사회 등 사회단체와 정부, 지자체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고베 행복촌의 안내도. 고베 행복촌(약 60만평의 부지)에는 재활병원, 가족호텔, 양로원, 공원, 온천장 등 종합복지시설이 갖춰져 있다. ⓒ일본 고베 행복촌
이명박 서울시장은 작년 5월 푸르메재단과의 면담에서 "선진국형 민간 재활전문 병원 설립을 서울시가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뒤에 서울시는 "시내에 땅이 없다"느니 "다른 민간단체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는 등의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푸르메재단은 "다른 민간단체와의 형평성 문제가 우려된다면, 우리가 지어서 건물과 땅을 지자체에 기부채납하고 운영만 우리가 맡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자체는 여전히 "땅이 없다"며 냉담한 반응이다.
  
백경학 상임이사는 "최근 인천시는 존스홉킨스대학 병원이나 하버드대학병원과 같은 외국의 유명대학 병원을 유치하기 위해 수만 평의 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적도 있다"며 "이는 푸르메재단의 재활전문 병원에 대한 태도와 대비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경기도는 서울시보다 더 호의적인 입장이 아닐까 기대한다"면서 "학교나 병원과 같은 특수 공공목적을 위해서는 그린벨트를 풀 수 있다는 규정도 있는 만큼 서울시나 인천시, 경기도 등 지자체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업들의 적극적인 기부 필요해…스스로에게도 큰 도움 될 것"
  
운영기금의 문제도 있다. 다른 병원과 마찬가지로 재활병원도 적자가 나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게다가 현재 한국에서 재활치료도 받지 못한 채 장애로 힘겹게 살고 있는 이들의 상당수는 경제적 극빈층에 속하기 때문에 이들까지 치료하기 위해서는 기업이나 민간단체의 재정후원이 필수적이다.
  
백경학 상임이사는 "운영자금의 10~20%만 기부로 들어와도 무리없는 운영이 가능하다"면서, 특히 기업들에 대해 "현재 대학 캠퍼스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건물을 하나씩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병원 한 동씩을 지어주는 형태의 기부"를 제안하고 있다.
  
또 그는 "지난해 교통사고로 딸을 잃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딸에 대한 사랑을 장애인 환자들에게 재활의 희망을 줄 수 있는 재활전문 병원 건립을 지원하는 쪽으로 승화시켰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독일의 뮌헨버트 호수가의 재활병원은 자동차회사 BMW에서 직접 돈을 기부하고 맡아 지은 형태의 병원이다. 물론 자동차회사가 직접 장애인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엄청난 수의 장애인이 교통사고로 인해 생겨나는만큼, 자신이 생산한 제품으로 인해 생겨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을 진다는 태도인 것이다.
  
백 이사는 "우리나라의 자동차회사에 대해서도 이런 방식의 기부를 제안하고 있으며, 이것은 기업의 이미지 고양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민간 재활병원인 <메디안 클리닉>의 전경 모습. 이 건물의 내부에는 유명 화가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로비에는 미용실과 옷 가게가 들어서 있다. ⓒ경민대 조승래 교수

환경이 장애를 만든다
  
현재 우리나라는 10명 중 1명이 장애인인데도 이들의 재활치료를 거의 방치하고 있다. 그나마 돈이 있는 이들은 외국으로 떠나고 경제적으로 감당이 되지 않는 이들은 집안에만 갇혀 지내거나, 사실상 감금시설이자 폭행과 비리 문제가 종종 불거지는 재활원에서 지내고 있다.
  
유럽이나 일본의 재활시설에서도 볼 수 있듯이 환경만 제대로 갖춰지면 장애인도 정상인과 다름없는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결국 장애는 병과 사고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만드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재활 시스템의 문제는 장애인도 보다 수준 높은 생활을 하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를 우리 사회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데 연유한다. 그 책임은 정부와 기업, 민간단체 모두에게 있다. 푸르메재단의 재활전문 병원 설립 사업은 이처럼 열악한 국내 장애인 생활환경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의미 있는 실험으로 보인다.

<인터뷰 : 강지원 푸르메재단 이사>
  
"푸르메병원은 온 국민에게 '인성교육의 장'이 될 것"

프레시안 : 현재 어린이청소년포럼 대표이시기도 하고 그간 청소년 사업 분야에서 적극 활동해 오셨는데, 푸르메재단의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강지원 : 나의 외조카 둘이 청각장애를 갖고 있다. 그러나 청각장애자라 해서 의사소통 기능이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스물다섯, 스물여섯이 되도록 언어치료 등 끊임없이 재활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있는데, 매일매일이 다를 만큼 상당한 효과가 있다. 귀로는 안 들리지만 입모양을 보고 상대방이 하는 말을 알아 듣는다. 이렇게 재활치료를 받으면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난다. 그 기능을 개발해줘야 하는데,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는 여러 기능을 방치하고 그냥 살라고 하는 것은 죄악이 아닌가.
  
나도 처음에는 선진국형 재활병원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이 없었지만, 백경학 상임이사를 만나고 여러 사람들과 구체적으로 의논을 하면서 지금은 치료를 하는 병원 하나가 아니라 삶의 현장이며 재활의 훈련장인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프레시안 : 지금 푸르메재단에서 그리고 있는 재활전문 병원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강지원 : 중환자실을 연상케 하는 병실이 아니라 직업훈련과 작품활동이 가능하고 수많은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건물도 높은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 자연에 둘러싸인 2층 정도의 목조건물이 어떨까 싶다. 장애인들에게는 단순한 치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운동치료와 정서치료 등 많은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원봉사자와 함께 식사하고 운동하며 지낼 수 있는 공간이자 주말에는 가족들을 만나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해야 한다.
  
나의 부모님은 두 분 다 치매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 나는 늘 그분들의 방에서 자고 밥수발과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을 도맡아 했다. 그럼에도 아침에 출근할 때는 노인이 혼자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 있을 것을 생각하니 늘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장애인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분들이 친인간적이고 친자연적인 시설에 가서 지낼 수 있다면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도 할 수 있고, 낮 시간을 무미건조하지 않게 지낼 수 있지 않겠는가.
  
프레시안 : 현재 지자체에 땅을 무상대여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데, 반응은 어떠한가?
  
강지원 :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현행법상 공익 목적의 사업에는 대지를 무상으로 대여하거나 제공할 수 있으며, 건축비의 상당부분도 지원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누구도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시와 경기도 등에서 오히려 먼저 나서서 어서 지으라고 해도 모자랄 판인데, 민간에서 이렇게 나서서 하겠다는데 오리발만 내밀고 있다. 이는 엄연한 책임방기다.
  
특히 재정적으로 지원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현재 놀고 있는 땅에 병원을 지어 기부채납하겠다는데도 거절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번에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부속 고등학교를 용인에 만들었는데, 경기도는 학교건립 자금으로 40억 원을 지원하고 땅도 대주었다. 물론 그 운영은 외국어대학교에 맡겼다. 이런 지원은 나서서 하면서도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사업에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기업들에도 기부 요청 등 많은 제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강지원 : 요즘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많은 기업들로부터 사회공헌 자문 요청을 많이 받는다. 나는 그들에게 주로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각각 특색 있는 공헌을 하라고 충고한다. 그냥 나눠주는 형식으로 하다 보면 기부하는 쪽도 보람이 적고, 여러 군데를 지원하다 보면 돈은 언제나 부족하기 마련이다. 각 기업이 자신이 연관된 분야를 찾아내 공헌을 하면 사회공헌 활동의 질이 상당히 높아지게 된다.
  
나는 사회적으로 신망이 높은 기업들에 푸르메재단의 이 사업에 기부해줄 것을 제안하고 싶다. 기업이 한 동을 맡아 짓고 운영을 한다면 그 기업의 이미지와 도덕적인 가치도 상당히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신입사원 등 자기 회사의 종업원 등이 찾아와 자원봉사까지 한다면 그들에게 인성교육의 장이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것들이 피드백이 되면 그 기업의 생산성도 브랜드 가치도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푸르메재단에서 생각하고 있는 병원의 병상 수는 150개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수요에 비해 너무 작은 규모 아닌가?
  
강지원 : 재활치료가 필요한 140만 명을 다 수용하는 병원을 짓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되고 불가능하다. 일단 이 정도의 수준에서 시작한 뒤 이것이 모든 이의 생활과 관련된 것이며 얼마나 좋은 삶을 구현할 수 있는지를 모두에게 보여주게 되면, 머지않아 많은 이들이 제2, 제3의 병원을 나서서 짓게 될 것이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고 늙으면 장애가 생긴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면 지자체나 기업 등에서 스스로 땅을 대주기도 할 것이다.
  
프레시안 : 현재 한국의 재활시설은 비리나 폭력 등 문제가 많다. 푸르메재단에서 운영하게 될 병원은 다른 장애인 재활시설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가?
  
강지원 : 재활전문 병원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지어지면 그것은 투명할 수밖에 없다. 사회에서 들어온 기부금도 모두 인터넷에 공개할 것이며, 초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다녀가면서 병원의 운영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또 이렇게 되면 그야말로 국민교육의 현장, 자원봉사의 현장이 되는 것이다. 나는 1987년에 서울보호관찰소 소장을 맡았는데, 그때 처음으로 비행 청소년들에게 자원봉사를 하도록 했다. 특히 비행 청소년 20명이 종로에 있는 라파엘의 집에 있는 장애인을 만나 수영장에서 같이 물놀이를 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그때 자원봉사를 한 비행 청소년들이 소감문을 썼다. 그 중에 "이렇게 몸이 불편한 아이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에게 매달리고 열심히 사는데, 나는 사지가 멀쩡하면서도 생각이 삐뚤어져 보호관찰이나 받고 있구나. 어머니 죄송합니다"라고 쓴 글이 있었다.
  
해외에는 이런 대인 봉사를 '커뮤니티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 넣어놓은 나라도 있다. 봉사에서 얻게 되는 감동은 인성교육에 매우 좋다. 이제까지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봉사하고 싶어도 적당한 시설이 없었는데, 우리가 추진하는 재활마을이 만들어지면 자원봉사자들이 줄을 설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장애인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온 국민을 위한 교육장의 역할을 하게 될 시설을 만들자는 것이다. 

(프레시안 / 채은하 기자 2006-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