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언론에 다시 ‘재갈’ 지식인들 분노

베이징대 허웨이팡(賀偉方) 법대교수, 추이웨이핑(崔偉平) 베이징 영화학원 교수, 장샤오양(江曉陽) 변호사, 친후이(秦暉) 칭화대 사회학과 교수, 작가 장이허(章誼和), 역사학자인 주쉐친(朱學勤) 상하이대 교수. 모두 중국에서 존경받는 대표적인 지성인이다. 이들이 지난 19일 일부 외국 언론사에 e메일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앞으로 되어 있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언론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학자들뿐 아니다. 전직 당간부들도 중국의 언론탄압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지금 중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중국은 최근 최악의 언론 검열에 나섰고, 그에 대한 저항도 거세게 일고 있다. 2003년 사스 발생 이후 잠깐 반짝했던 언론 자유의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중국 당국은 체제 안정을 이유로 고발 기사나 문제 기고문을 싣는 언론 매체에 정간 조치를 하는가 하면, 해당 언론사 간부들을 잇따라 해임하는 ‘강수’를 두고 있다.

최근 당국과 언론간 언론 자유 공방은 중국 공산주의청년단 기관지 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의 주말판인 ‘빙점(氷點)’ 정간 사태가 대표적이다. 빙점은 지난달 24일 무기한 정간당했다. 그러나 전직 고위 간부들과 지식인들의 탄원이 잇따르자 다음달 1일 복간됐다. 광둥성 중산대학의 위안웨이스(袁偉時) 교수가 중국 역사 교과서가 1900년 의화단 사건 등 역사적 사건에 대해 민족주의를 앞세워 왜곡했다는 글을 실은 것이 정간의 빌미가 됐다. 지난 8일에는 중국 국무원 민정부 기관지 공익시보(公益時報)의 천제런(陳杰仁) 편집장이 해임됐다.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공식 웹사이트 영어판에 오역이 있다는 고발 기사를 잡지에 게재한 직후였다. “정부 이미지를 훼손했다”는 게 해임이유였다.

앞서 베이징(北京) 제2의 일간지인 신경보(新京報)도 지난해 12월28일 양빈(楊斌) 총편집(편집국장)을 비롯, 쑨쉐둥(孫雪東) 부총편집(편집부국장)과 리둬위(李多鈺) 부총편집 등 3명을 전격 경질했다. 허베이(河北)성 딩저우(定州)시가 청부 폭력배를 동원해 시위 농민들을 유혈 진압한 사태를 보도한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이 사태는 지난해 12월29일 1,000여명의 신문사 기자와 직원들의 파업을 불러왔고 결국 부총편집 2명의 사퇴 반려로 마무리되었다.

중국에서 언론자유에 대한 욕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온 계기는 2003년 사스 발생이었다. 공교롭게도 그해말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100달러를 기록했다. 언론자유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가 분출한다는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선을 넘어선 시점이었다. 2003년 4월 중국 당국은 사스 발생을 숨겼다. 그러나 남부지방인 광저우(廣州)에 있는 진보적인 성향의 남방도시보(南方都市報)는 이를 폭로했고, 곧 인터넷을 통해 사스 발생 사실이 중국 전역에 순식간에 퍼졌다. 언론 자유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당시 새롭게 출범했던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대표로 하는 제4세대 지도부가 언론과의 밀월 관계를 시사하듯 예상외로 사스 발생을 선뜻 인정하고 진상을 숨겼던 책임자를 문책했다. 중국 언론은 물론 중국인민들도 희망에 들뜨기 시작했다.

이후 관료들의 부패와 탄광사고 등 고질적인 병폐를 고발하는 기사들은 물론 공산당을 비판하는 기사도 자주 언론에 등장했다. 새 지도부 대표주자인 후진타오 주석이 산뜻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제3세대 지도부와 달리 언론의 자유를 더 보장해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관영 언론에는 나지 않는 신선한 뉴스도 인터넷을 통하면 누구든 알 수 있었으니 그럴 만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 등 당핵심부는 더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이로써 2003년 반짝했던 언론 자유 분위기는 2004년 1월 남방도시보 수사를 시작으로 언론통제의 방향으로 급선회했다.

중국의 신문과 잡지는 대부분 당과 정부 기관지다. 1월말 현재 중국의 일간지는 총 2,000여종이며 잡지는 8,000여종에 이른다. 일부는 주식회사 형태로 민영화되기는 했지만 ‘무늬’만 민간일 뿐 당과 정부의 직접 통제를 받는다. 언론 검열은 당중앙선전부와 국무원 신문출판총서가 담당한다. 어떤 기준에 따라 통제하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공산당 일당 독재의 기초 훼손이나 국가 이미지 실추를 가장 큰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향후 중국의 언론통제는 이 기준에 따라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후진타오 주석이 장쩌민 주석 당시와 버금가거나 더 강력한 통제를 할 것으로 예상한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정치발전은 물론 무엇이든 포기하겠다는 것이 당지도부의 방침이기 때문이다. 이는 필연코 경제발전, 인터넷 인구 증가 현상과 충돌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지 주목된다.

▶ 胡주석에 보내는 서한 내용

다음은 중국의 대표적인 지식인 13명이 19일 언론 및 학문의 자유를 촉구하며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에게 보낸 공개서한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의견의 자유로운 표현을 가로막는 공산당 중앙선전부를 조사해줄 것을 호소한다. 언론의 자유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말도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기본권이다. 많은 중국 관리들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얘기를 할 경우에는 사회 불안, 경제 퇴조, 이데올로기의 혼란, 정부의 권위 추락과 같은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우려할 필요가 없다. 사회 질서를 ‘무엇을 하지 말라’는 금지의 기초 위에 세울 수는 없다. 현 지도부는 격변기에 있는 중국 사회에서 국민들이 의견을 자유롭게 밝힐 수 있는 통로가 시급하게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관리들이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2003년 사스 발생 이후 나타났던 느슨한 언론통제와 투명성을 위한 동력은 이미 사라졌다. 지난 3년 동안 중국의 언론 환경이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중국의 언론 정책이 3년 전에 보여주었던 조화로운 방향으로 다시 나아가 언론환경 개선이 하루빨리 이뤄지기를 촉구하는 바이다.’

(경향신문 / 홍인표 특파원 2006-2-20) 

"中인터넷 검열에 구멍 뚫린다"

중국은 온라인 인구 1억1,100만 명의 ‘인터넷 대국’이지만 인터넷 이용자들의 자유로운 소통을 막는 검열 장치로도 악명을 떨쳐왔다. 그러나 인터넷은 중국 정부의 사회통제를 느슨하게 하는 저력을 지녔다고 워싱턴포스트가 19일 분석했다.

이 신문은 인터넷이 중국 정부가 억지로 틀어막은 중국인들의 귀와 입을 열어주는 통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권력을 잡은 이후 지난 2년 동안 신문과 잡지, 방송 등 관영 언론에 대한 검열과 통제는 강화된 반면 인터넷은 저널리스트들을 중심으로 중국인들이 정부의 억압 체제에 도전하는 분출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도시 거주자와 고학력자 등 오피니언 리더 계층에 인터넷이 보급돼 있기 때문에 사이버 공간에서 성장한 풀뿌리 파워는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력하다.

중국 당국은 물론 인터넷에도 높은 방화벽을 쌓고 있다. 베이징(北京)의 뉴스 웹사이트 운영자들은 매주 금요일 정기적으로 회의에 소집돼 당국의 보도지침을 전달받는다. ‘민주주의’같은 민감한 단어들이 들어있는 이메일 발송을 중단하거나 웹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는 검열 시스템도 갖춰져 있고, 사이버 범죄를 감시하는 공안(경찰) 요원 5만명이 활동한다.

미국 인터넷 기업들도 중국 검열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구글은 지난달 25일 금지 단어의 검색을 차단한 채 중국어판 서비스를 개시했다. 미 하원이 15일 구글, 야후 등의 중국 인터넷 검열 협력에 대한 청문회를 개최할 정도로 중국정부에 국제적 비난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검열 장벽에도 구멍이 뚫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중국 공산당이 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의 주간지 ‘빙점(氷點)’에 대한 정간 조치를 거두고 다음달 1일부터 재발간을 허용키로 한 결정에 주목했다. ‘빙점’ 사건을 인터넷 사용자들이 이슈화해 결국 당국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셈이다.

이 사건은 표면상으로는 중국 역사교과서를 비판한 기고문이 문제가 됐으나, 뿌리는 언론과 당국의 갈등에 있다.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의 기관지 성격인 ‘빙점’이 언론 통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지난해 8월 ‘빙점’의 리다퉁(李大同) 편집장은 공청단이 당 지도부 평가를 주요 기준으로 기사를 심사하는 고과제도를 도입키로 하자 “기자를 노예로 만든다”고 비난하는 ‘만언서(萬言書)’를 발표했다.

‘만언서’가 편집국 서버에 뜨기 무섭게 동료들이 이메일과 메신저로 퍼날랐고 24시간 만에 중국 인터넷을 도배했다. 검열 당국이 해당 글의 삭제를 결정했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당국은 1월 ‘빙점’을 정간시킬 때도 주요 웹사이트에 정간 조치가 유포되지 않도록 하라고 지침을 내렸으나 이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국일보 / 문향란 기자 2006-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