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 보면서도 독도 집회 참가

쿠바재즈 들으며, 터키고기 먹고, 베트남국수 후룩
세계적 추세 소비문화 노출…‘국익’ 관련되면 으쌰

대학생 김태희(23)씨는 제대로 꾸밀 일이 있으면 이마에 인도의 전통 액세서리 ‘빈디’를 붙인다. 인도 전통옷 ‘사리’도 가끔 차려입는다. 이아무개(24)씨는 미국 인터넷사이트 ‘베네핏’에서 미국 화장품을 직접 산다. 미국에서 유행하는 제품들 가운데 아직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것들을 주로 고른다. 운동화 마니아 구아무개(20·ㅅ대 2년)씨. 나이키의 ‘맥스’ 시리즈를 특히 좋아해 국내에는 없는 미국 내수용 맥스 제품을 인터넷으로 산다.

이아무개(24·ㅎ대 4년)씨의 취미는 ‘일본 드라마 보기’다. “일본 드라마에는 한국 드라마가 항상 우려먹는 불륜이니 삼각관계니 재벌 2세 같은 코드가 없거든요. 그래서 즐겨봅니다.” 일본 드라마가 방영과 동시에 바로 인터넷 파일공유 사이트에 뜨기 때문에 시차마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생들의 취향이 점점 ‘글로벌’화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를 한국에 앉아서도 원산지와 동시에 소비하는 경향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케이블 패션 프로에서 미국의 ‘패션리더’ 올슨 자매의 옷차림을 참고하고, 쿠바 재즈를 들으며 베트남 국수와 터키 고기 요리를 먹는 것은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 특별한 것이 못된다.

엘지애드 브랜드전략연구소는 지난해 한 보고서에서 대학생들이 예전에는 미국, 일본 일변도에서 최근에는 아프리카, 러시아, 그리스, 인도 등 제3세계 문화도 적극적으로 소비한다고 분석하고 이를 ‘제3의 취향’이라 이름붙였다. 고려대생 김아무개(25)씨는 “이런 다양한 취향을 ‘사대주의적’으로 보는 시각은 자제해달라”고 강조한다. “요즘 대학생들은 그렇게 맹목적이지 않습니다. 개성과 취향의 차이이지요.”

대학생들의 일상생활이 점점 더 세계적 추세의 소비문화에 노출되는 반면, 대학생들의 이념적 성향은 상대적으로 ‘한국적’인 쪽으로 향하는 경향도 함께 나오고 있다. 독도 문제 등 ‘국익’과 관련된 사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집회 현장에서 구호를 외치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동시에 대학생들의 이념 성향도 90년대에 견줘보면 보수화하는 추세다.

인터넷 모임 ‘보수주의 학생연합’ 운영자 이아무개(28·ㅎ대 법학 4)씨는 “독도 문제와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 문제처럼 민족주의적인 이슈가 우리들이 관심을 갖는 주요 이슈들”이라며 “공산주의가 사라진 지금 반공이라는 구호는 무의미하기 때문에 우리는 예전 보수주의자들처럼 ‘반공’을 기치로 내걸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뉴라이트’를 표방하는 일부 대학생들이 만드는 ‘뉴라이트 대학생연합’(가칭)도 4월 초 정식 출범할 예정이다.

사회학자인 홍두승 서울대 교수와 설동훈 전북대 교수 등이 전국 5개 대학생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2002년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진보라고 한 학생은 56.7%였으나 2004년에는 41.3%로 13.4%포인트나 줄었다. 반면, 보수와 중도라고 답한 학생은 2002년 11.2%와 25.5%에서 14.1%와 40.3%로 늘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주은우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외환위기 이후 상처받았던 국민적 자존심이 월드컵과 경제성장 등을 배경삼아 다시 살아나며 대학생들한테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민족주의보다는 애국주의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며 “취업난으로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 상황도 민족적 코드를 통한 대리만족을 추구하게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겨레신문 / 조기원 최은주 박현철 기자 2006-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