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비 낼 건가, 차라리 세금을 낼 건가

'출산파업'이 새로운 유행어가 될 정도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저출산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연구보고서는 결혼과 자녀에 대한 여성의 가치관 변화를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들었다. 즉, 여성들의 자기성취 욕구가 높아지면서 결혼이나 자녀가 인생에 있어서 선택사항으로 그 지위가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맞는 지적이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여성들의 자기성취 욕구는 선진국이 오히려 더 높을 텐데, 왜 우리나라만 유독 저출산 문제가 이토록 심각한 것일까?

노동연구원의 정기간행물인 <노동리뷰>(2005년 4월)가 '여성 고용률이 높은 국가가 출산율도 높다'는 흥미로운 통계(2002년 기준)를 발표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의 여성고용률은 대부분 80%가 넘는데도 출산율이 1.8명에 가까워 OECD 국가 중에서 매우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반면,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는 여성고용률이 53~54%로 최저수준이고 출산율은 1.2명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여성고용률은 57.7% 정도이고 출산율은 1.17명이다.

이 통계는 여성이 사회생활을 열심히 할수록 애를 안 낳으려 할 것이라는 통념을 뒤집는 것이다. 여기서, 여성들의 자기성취 욕구가 저출산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고, 오히려 자기성취 욕구를 방해하는 사회구조가 원인임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의 보육과 교육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으면 가정이 책임져야 하므로, 이는 여성에게 가정과 자아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한다. 아이들의 보육과 교육을 국가가 책임진다면, 여성의 입장에서는 자아성취와 가정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여성 고용률 높으면 출산율도 높다

우선, 보육에 대하여 보자.

최근에 들어 만 5세아 및 저소득층에 대한 보육료 지원 규모가 늘어나고 있는 점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영리목적의 민간보육시설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보육정책은 그 방향이 잘못되었다. 어린이집 등에서 꿀꿀이죽 사건이나 아동학대사건이 종종 발생하는 것은 민간보육시설 의존적인 보육정책 때문이다. 돈 벌자고 보육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현금 지원을 하고 제대로 감독조차 하지 않으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영리목적의 보육시설이 시설수에서는 전체의 85%, 수용아동수에서는 70%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스웨덴의 경우 유아학교의 87%를 정부가 직접 운영하고 나머지도 부모가 협동 운영하는 등 비영리시설이다. 미국의 경우도 영리목적의 보육시설은 35%에 불과하다.

또한, 우리나라의 보육률은 30%에 불과하다. 이는 전체 영유아의 70%는 그 알량한 보육시설마저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육료 지원 규모를 늘려보았자 30%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다. 정작 보육시설조차 이용하지 못하는 70%의 가정은 어떻게 돌볼 것인가?

공공 보육시설을 늘려 보육률을 높이는데 보육정책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2004년에 필자가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 며칠 머무는 동안 20~30명 규모의 소규모 보육시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여성들이 출근하는 길에 동네 구멍가게 들르듯이 보육시설에 들러 아이를 맡겨놓고 출근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러니, 80%를 넘는 여성고용률에도 1.8명의 출산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추계한 결과, 0~5세 영유아 보육율을 70%로 하고 정부의 보육비용 부담률을 80%로 할 경우 약 5조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이 돈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

영유아 보육률 70% 위해선 5조원 소요... 재원은?

다음으로 교육에 대하여 보자.

최근 들어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자주 나가면서 저절로 교육과 학력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즈음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필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모든 졸업생은 대학이란 한가지 잣대로 ① 일류대학에 들어간 사람, ② 그저 그런 대학에 들어간 사람, ③ 대학도 못간 사람 등 세부류로 나뉘었다. 그리고, ①은 인생이 탄탄대로일 것이고, ③은 밑바닥 인생을 살 것이라고 단정을 했다.

40대 중반이 되어 친구들을 만나보니 당시의 그 기준이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①에 속한 친구들의 대부분은 그럴듯한 회사의 간부가 되었다. 그런데, 사오정이 되어 하루하루가 눈치 보인다고 한다. '지금 그만두면 특별한 기술도 없는데 앞으로 뭐해 먹고 사나?' 반면, ③에 속한 친구들 중 상당수는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특정 분야에서 자기 영역을 확고히 하여 인정받고 있었다.

동창회 1차 모임이 끝나고 2차를 가자고 하는 경우에도 ①은 뻔한 지갑 사정에 망설이지만, ③은 자기가 산다며 앞장서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지 돈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능력과 경험을 무기로 험한 세상을 헤쳐 자기만의 영역을 확보한 사람의 당당함과 대학 간판 하나로 큰 회사에 들어가 남다른 재능 없이 그럭저럭 살아온 사람의 소심함이 그대로 비교되는 순간이다. 앞으로 누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필자와 같은 기성세대조차 학교에서 요구하는 학력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능력에 괴리가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러니, 지식기반경제가 뿌리가 내릴 미래에는 더욱 더 그러할텐데, 공교육은 여전히 전통적 학문중심적 학교모델을 고집하고 있다.

기존의 교육개혁에 관한 논의들이 서로 난맥상을 보이면서 제대로 진전되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은 학교붕괴와 사교육비 문제를 학교의 전통적인 교과교육력을 회복함으로써 해결하려고 한 한계 때문이다. 전통적인 학문중심교육은 엘리트교육이며, 엘리트교육은 필연적으로 서열화를 수반한다.

서열화를 본질로 하는 학문중심의 엘리트교육을 공교육의 내용으로 하면서도 평등주의적 관점에서 평준화시스템을 고수하고 있으니, 하향평준화 및 특목고 설립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자기만의 개성과 독특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사회에서는 써먹지도 않을 미적분 풀이 능력을 기준으로 서열화하면서 어떻게 평등주의적 가치를 공교육에 넣겠다는 것인가?

획일적이고 학문 중심적인 학력을 목표로 한 엘리트교육은 돈 많은 사람이 유리하도록 되어 있다. 어려운 문제를 쉽게 이해시켜줄 선생을 많은 돈을 주고 고용하면 이기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서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학교를 학원화하는 것뿐이다.

공교육 서열화시키고 싶거든 모든 교사 비정규직으로 만들라

학교 교사를 모두 비정규직 강사로 만들어라. 그리고, 한 달에 두세 번 시험을 봐서 학생들 성적이 안 오르면 2주 전에 통보하여 해고하라. 그러면, 선생들이 죽기 살기로 학생들을 공부시킬 것이고, 학생들은 학원에 다닐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 해결책인가?

공교육을 평생학습 시스템에 맞게 전환해야 한다. 평생학습은 배우는 나이와 배우는 장소, 배우는 내용에 대하여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을 말한다. 지식기반 경제에서는 학문 중심적 학력보다는 실제 능력을 더 필요로 한다. 그 능력이 학교에서 취득되었는지, 언제 취득되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평생학습 시스템에서 학교는 어떻게 변화하나?

우선, 개별 학습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교육경로가 다양해진다. 우리나라의 교육체계는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식의 단선형 학교제도의 계단을 따르도록 되었는데, 학습자의 요구에 따라 다른 교육경로를 선택할 수가 있다. 즉 폐쇄형 교육시스템에서 개방형 교육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개방형 교육시스템을 위하여는 ① 학교 밖의 다양한 학습자원들과 연계된 수업 체제 도입, ② 단계별 학년별로 표준화된 학력인증제 도입, ③ 교육계좌제 도입 방안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게 학습자들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사례를 통하여 보자.

홍길동은 중3 학생이다. 그는 요리에 남다른 관심과 소질을 지니고 있으며 앞으로 요리사가 되는게 꿈이다. 학교에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의 과목이 각 수준별로 개설이 되어 있다. 수준별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한 교실에 여러 학년이 섞여 있기도 한다.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기 위하여 얻어야 하는 최소한의 성적이 각 과목별로 정해져 있다(표준화된 학력인증제).
홍길동은 이미 모든 과목에서 다음 학년으로 진급할 성적은 확보하였다. 그래서, 담임선생님께 이야기해 학교와 연계된 요리학원에 다니기로 하였다. 다만, 미래를 위하여 영어와 국어는 좀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 심화학습반 수업을 듣기로 하였다. 그리고, 체육으로 테니스를 배우기로 하였다. 홍길동은 영어, 국어, 테니스를 배우는 시간 외에는 요리학원에서 실습과 이론 공부를 한다.

교육예산 GDP 6%면 고교 무상, 대학등록금 77% 지원 가능

홍길동의 담임은 요리학원과 연락을 하여 홍길동의 요리공부 진척도를 체크하고 홍길동의 교육계좌에 기입한다. 이 교육계좌는 홍길동을 계속 따라 다닐 것이다.

지난 대선 때 여야 모두 GDP 6% 교육 예산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런데, 2004년의 교육 예산은 4.2% 수준이었다. 금액으로는 공약보다 13조원 부족한 금액이다. 공약대로 13조원을 추가로 확보할 경우,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 대학등록금의 77%를 지원할 수 있다고 한다(민노당 분석자료). 그러나, 이와 같은 예산을 투입하여 학부모의 공교육비 부담을 줄여준다고 해도 지금의 학문중심적 엘리트 교육체계에서는 사교육비 부담이 여전히 남는다.

향후 교육개혁은 현재와 같은 폐쇄적인 단선형 학교제도를 평생교육시스템으로 전환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는 기존의 학교에 추가적인 예산을 배정하여 양적인 개선을 이루기보다 새로운 대안 학교의 모델을 세우는데 집중 투자해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 아이를 사교육비 부담 없이 지식기반 경제에 맞는 인재로 키우는 방향으로 교육개혁 방향이 제시된다면, 아이 낳기를 꺼릴 이유가 없으며 세금을 좀 더 내는데 저항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학원비로 내나 세금으로 내나 그게 그거니까!

기자소개 : 윤종훈 기자는 공인회계사입니다.

(오마이뉴스 / 윤종훈 기자 2006-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