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원-장비 기준 갖춘 소방파출소 6대도시에 全無

“불이 나면 소방파출소 문을 닫고 출동합니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 도봉소방파출소의 송문섭(43) 소방교는 하루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화재 진화는 물론 순찰과 화재 예방 활동, 경리 서무 등 행정업무가 모두 그의 몫이다.

이 파출소의 소방관은 모두 15명. 24시간 2교대이기 때문에 소장을 제외하고 7명씩 돌아가며 근무한다. 한 조는 진압요원 3명, 구급대원 2명, 소방펌프자동차 운전사 1명, 구급차 운전사 1명으로 구성돼 있다.

화재 신고가 들어오면 진압요원 한 명만을 남겨놓고 모두 출동하는데 휴가나 교육 등으로 진압요원이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많아 아예 파출소의 문을 걸어 잠그고 출동하는 날이 잦다. 동시에 여러 곳에서 화재가 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송 소방교는 “몇 년 전 인원이 일시에 6명이나 줄어든 뒤 파출소에서 여러 차례 충원을 요청했지만 소식이 없다”며 “지난해에는 신설된 파출소에서 장비가 부족하다며 우리 파출소에 있던 물탱크차까지 가져가 화재 진화가 더 힘들어졌다”고 털어놨다.

소방서의 인원과 장비가 턱없이 부족하다. 예산을 배정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당장 생색이 나지 않는 소방행정 지원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있는 장비도 낡은 것이 많아 화재 진압 능력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 적정 인원, 장비 갖춘 파출소 단 1곳도 없어 = 소방방재청은 1996년 화재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과 장비 기준을 만들었다. 일반 소방파출소는 최소 소방관 27명과 소방차량 4대, 직할 파출소는 65명에 12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본보 조사 결과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등 6대 도시 288개 소방파출소 가운데 인원과 장비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는 파출소는 단 1곳도 없었다. 인원만 놓고 보면 5곳(1.7%), 장비는 18곳(6.3%)만이 이 기준을 충족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지역 소방방재본부는 예산을 감안해 기준을 축소해 운영하고 있다. 서울소방본부 관계자는 “일반 소방파출소의 필요 인원 기준을 27명이 아닌 21명으로 낮춰 이 기준이라도 충족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의 한 파출소는 파출소 안에 차고지가 부족해 구급차를 본서에 보관해 두고 출동할 때마다 부른다. 인천의 한 파출소는 소방펌프차량이 단 한 대밖에 없어 화재 신고가 들어오면 항상 인근 파출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 있는 장비도 낡아 제 역할 못해 =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올해 노후 소방차량은 모두 2036대로 전체 소방차량 10대 가운데 3대가 내구연한이 지났다. 방재청은 물탱크차와 펌프차의 경우 10년, 구급차는 6년을 노후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이 기준조차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서울 중랑소방서 면목소방파출소 관계자는 “내구연한이 10년이 안 되더라도 출동 횟수가 많으면 기동성이 크게 떨어진다”며 “주행거리를 기준으로 교체 시기를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서대 소방학과 권영진(權寧瑨) 교수는 “화재 대응 능력을 높이려면 소방관과 장비를 확충하고 장비의 성능을 개선하는 한편 소방도로를 정비하고 건물 자재를 불연재로 교체하는 등 다양한 행정기관의 협조가 필요하다”며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서로 책임을 미뤄 현재 제대로 된 소방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 동정민, 윤완준 기자 2006-2-11) 

서울서 영월서… 어린이 4명 안타까운 화재 참사

아이들은 절규했다. 소방서에 두 번 전화하고 도움의 손길을 기다렸다. 하지만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신고가 들어갔을 때 인근 소방출장소에는 1명만 근무하고 있었다.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일분일초가 지나면서 영월의 아이들 3명은 의식을 잃어갔다.

10일 서울에서도 후천성 자폐증을 앓고 있는 11세 소년이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소방관이 오기 전 주민들이 직접 진화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 처절한 절규 = 9일 오후 6시 12분 강원 영월군 서면 쌍룡5리 조모(41) 씨 집에서 불이 났다. 조 씨의 딸(6)과 친구 유모(7) 양, 유 양의 여동생(4) 등 3명만 있었다.

학원을 운영하는 조 씨 부부는 집에 없었다. 유 양은 119로 전화해 다급하게 말했다.

“신발장에 불이 났어요!”

영월소방서 상황실은 어른이 있는지 물었다. 아이들밖에 없다고 하자 “집 밖으로 빨리 나와. 밖에다 대고 불이 났다고 소리쳐”라고 말했다.

출입구에서 불이 난 탓에 아이들은 빠져나올 수 없었다. 유 양은 “창문이 있는데 창문에 뭐 던져요?”라고 물었다. 그렇게 하라는 말을 듣고 유 양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창문이 깨지지 않자 유 양은 다시 119로 전화를 걸었다. “(불이) 커지고 있어요! 빨리 오세요!”

영월소방서는 조 씨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주천소방파출소 쌍룡출장소로 출동명령을 내렸다.

▽ 대응, 적절했나 = 영월소방서에는 화재 현장의 도착 시간이 오후 6시 19분으로 기록돼 있다. 조 씨의 집에서 600여 m 떨어진 쌍룡출장소에서 7분이 걸렸다는 얘기다.

본보는 서울 등 6대 도시의 화재를 분석해 소방차가 신고 뒤 5분 내에 현장에 도착하지 못하면 일반인이 끄기 힘들 정도로 불길이 확산되는 ‘플래시 오버(Flash Over)’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현장에 출동했던 쌍룡출장소의 김모 소방관은 실제 도착 시간은 신고를 받은 지 3분 정도 지난 뒤였다고 해명했다. 불길이 무섭게 번져 나가 인근 주민을 대피시킨 뒤 도착 시간을 뒤늦게 소방서에 알렸다는 것.

불은 집을 모두 태운 뒤 50여 분 만에 꺼졌다. 조 양 등 3명은 불길과 연기를 피해 거실로 안방으로 도망쳤다. 아이들은 안방의 침대와 화장대 사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 11세 소년의 죽음 = 10일 오후 8시 15분 서울 서초소방서 상황실에는 화재 신고 전화가 잇따랐다. 서초구 반포1동 한 연립주택 2층에서 불이 났다는 이웃 주민들의 신고였다.

연립주택에서 2km 떨어져 있는 서초소방서 잠원소방파출소에서 화재 현장까지 걸린 시간은 7분. 차가 많이 막혀 현장 진입이 쉽지 않았다고 당시 소방관들은 전했다. 그 사이 이웃 주민들이 소화전을 이용해 진화에 나섰지만 김모(11) 군은 안방 옷장 옆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김 군과 함께 집에 있던 누나(20)는 “작은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안방에서 파닥파닥 소리가 나더니 연기가 새어 나왔다”며 “순간 놀라 집을 뛰쳐나왔는데 안방에 있던 동생은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울먹였다. 김 군은 아버지와 누나 2명과 함께 살았다.

(동아일보 / 최창순, 이재명, 윤완준 기자 2006-2-11) 

2년전 순직 소방관 통해 본 ‘119 현실’

“옆에 동료만 있었어도….”

경기 안산소방서 119구조대 김근태(34) 소방교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1년 10개월 전 자욱한 연기 속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동료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2004년 4월 12일 오전 1시 23분. 안산시 상록구 사동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신고가 들어왔다. 사동소방파출소와 인근 상록수소방파출소에서 각각 5명씩 현장으로 출동했다.

소방관 10명 가운데 6명은 운전요원, 2명은 구급요원이었다. 진압요원은 어수봉(당시 40세) 소방교와 김 소방교 단 2명뿐이었다. 20여 분간 사투를 벌여 불길을 잡는 데 성공했다.

어 소방교는 곧바로 매캐한 연기가 자욱한 이웃집으로 뛰어들었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주민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김 소방교는 잔불 정리를 위해 현장에 남았다.

진압요원은 2인 1조로 행동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인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장에선 이 원칙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1시간 뒤 어 소방교는 뒤늦게 출동한 다른 소방관들에 의해 불이 난 집의 맞은편 집 주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소방교는 “유독가스가 꽉 찬 상태에선 한 번만 연기를 들이마셔도 정신을 잃는다”며 “어 소방교가 식탁에 걸려 넘어지면서 산소마스크가 벗겨졌다. 옆에서 누가 보조마스크만 바로 씌워줬어도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어 소방교처럼 산화한 소방관은 2000년 이후 18명이다.

(동아일보 / 장원재 기자 2006-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