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만 뜨면 학원···학원···“엄마가 미워요”

서울 ㄱ초등학교 5학년 임모양(12)의 방학 중 일과는 학교 다닐 때보다 더 빠듯하다. 오전 9시에 눈을 뜨는 임양은 아침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10시부터 시작하는 글짓기 학원으로 달려간다. 2시간 동안 계속되는 글짓기 수업이 끝나면 서둘러 점심을 먹고 낮 1시에 시작하는 영어학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하지만 영어학원이 마지막 행선지가 아니다. 이번에는 미술학원으로 이동해 오후 4시30분까지 붓, 도화지와 씨름한다. 임양은 방학 중 매주 5일 동안 이같은 일과를 소화해낸다.

여기에다 1주일에 2번은 집으로 찾아오는 대학생 과외 교사로부터 오후 5시부터 2시간 동안 전과목에 대한 보충수업을 받아야 한다. 방학 숙제를 하거나 학습지를 풀고 나면 밤 10시. 그제서야 임양은 손발을 씻고 잠자리에 들 채비를 한다. 임양은 “엄마가 그냥 공부만 열심히 하라니까 시키는 대로 하지만 힘들고 지겹다”고 하소연했다.

ㄷ초등학교 6학년 박모양(13)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박양은 “공부 스트레스가 심해 중학교 올라가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학기 중에는 오후 3시에 하교하면, 오후 4시부터 2시간동안 수학, 논술 과외에 시달린다. 매일 오후 6시부터 8시30분까지는 전과목 보습학원에 다닌다. 밤 9시에 귀가하면 과학 과외와 바이올린 레슨이 박양을 기다리고 있다. 박양은 “방과후에는 좀 쉬고 싶은데 학원과외가 줄 서 있어 너무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학습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또래가 맞지 않는 상급생과 수업을 듣는 초등학생도 있다. 서초동 ㅅ초등학교 김모양(13)은 “고등학생들과 영어와 수학, 과학 수업을 밤 12시까지 듣는다”며 “오빠들이랑 수업을 들으니 재미가 없고 이해하기도 힘들다”고 투덜댔다.

학년이나 연령의 높고 낮음을 떠나 방과후에는 어김없이 학원으로 직행하는 처지인 셈이다. 특히 시험기간에는 밤 11시까지 학원에 머무는 초등학생도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의 경우 오후 2시30분쯤 수업이 끝나지만 학생들이 3시까지 학원에 가야 하기 때문에 교실 청소를 시킬 시간조차 없을 정도다.

이같은 현상은 교육열이 높지 않은 지역이라도 다르지 않다. 은평구 ㅅ초등학교 교사 김모씨(25·여)는 “은평구는 교육열이 과열되지 않은 지역임에도 학원에 안다니는 학생을 찾기 힘들다”며 “현장 학습을 하러 외부에 나가면 아이들이 학원에 안가려고 수업을 늦게 끝내달라고 부탁할 정도”라고 씁쓸해했다.

개포동의 한 초등학교 교사 이모씨(27)는 “우리 반에는 6학년인데도 중3 과정까지 끝낸 아이들이 10명 이상 된다”면서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그게 스트레스인 줄도 모르고 마냥 힘들어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남경희 서울교대 교수(사회교육학)는 “학습 부담이 높아지면 정신적, 신체적 기능 발달에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며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백승찬·이윤주·이영경·장은교기자〉

(경향신문 20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