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판단은 이성 아닌 감정뇌가 한다"

美 에머리대 연구팀 ‘2004 대선 연구’
당원들, 후보 발언때 감정회로만 활발
지지후보에 불리한 정보는 애써 외면

◆ 감정에 맞는 정보만 선택

지난달 28일 미국 성격 및 사회심리학회 연례학술대회에서 에머리대 드루 웨스턴 교수 연구팀은 “정치적 판단을 할 때 인간의 뇌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영역이 작동한다”는 요지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지난 2004년 대통령 선거 전 공화·민주 양당의 열성 당원들에게 당시 양당의 후보였던 조지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상원의원의 연설문 가운데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을 제시했다. 그러자 당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모순점은 무시하고 경쟁후보의 발언에서는 모순점을 정확히 집어냈다.

연구팀은 이들의 두뇌 활동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관찰했다. 자기공명영상이란 두뇌의 특정 부위가 작동하면서 피가 몰리면 그 부위를 밝게 표현해주는 장치이다. 실험 과정에서 소속 정당에 상관없이 감정을 관장하는 회로는 갑자기 활발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성을 관장하는 부위인 등쪽 이마앞 피질의 활동이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

감정적 판단은 원하는 정보만 추구하는 일종의 중독 현상도 나타냈다. 웨스턴 교수는 “실험대상자들은 원하는 결론을 얻을 때까지 인식의 만화경(萬華鏡)을 마구 돌리는 것처럼 보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실험 대상자들은 지지 후보에 불리한 정보는 무시하면서 계속 원하는 정보만 찾았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결론에 도달한 상태에서는 부정적 정서를 관장하는 부위의 뇌 활동이 멈추고 중독자가 원하는 물질을 얻었을 때처럼 보상 회로의 활동이 갑자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생존 위해 감정판단이 우세해져

정치가 감정에 좌우된다는 것은 두뇌 반응속도에서도 입증됐다. 미 스토니브룩대 밀턴 로지 교수팀은 대학생들에게 정치인의 이름을 먼저 보여준 뒤 이어 전혀 상관없는 단어를 제시하면서 이 단어가 주는 느낌을 말하게 했다. 로지 교수는 작년 5월 ‘정치심리학’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학생들은 감정적 판단처럼 수천 분의 1초 단위로 부정적 또는 긍정적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성균관대 이정모 교수(심리학)는 “감정적 판단이 이성적 판단보다 발달한 것은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감정적 판단은 사전에 가진 신념이나 감정 중심으로 이뤄지므로 여러 정보를 분석해야 하는 이성적 판단보다 속도가 빠르다. 이 때문에 호랑이 울음소리가 났을 때 진짜 호랑이인지를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틀릴 수 있더라도 즉각적인 감정 판단에 의존하는 것이 상책이 된다.

생존을 위한 진화지만 오늘날엔 부담이 될 수 있다. 이 교수는 “감정이 개입하면 정보처리를 위해 뇌에서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최근 증가하고 있는 이념 논쟁은 뇌에서 끊임없이 정서적, 감정적 회로를 가동시킴으로써 피로를 누적시켜 국민들의 뇌 건강을 계속 해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치인들이 가능한 한 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을 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조삼모사(朝三暮四) 원칙을 반영한 신 경제학

인간이 이성보다는 감정에 좌우된다는 연구결과는 경제에도 적용되고 있다.

미 프린스턴대의 심리학자인 카네만 교수는 주식투자 등 경제행위에서 인간의 판단이 논리적 합리성보다는 감정에 좌우된다는 주장을 펴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케네만 교수의 주장은 미국 대학의 경제학과에 인간의 인지과정과 경제행위를 연결시키는 행동경제학 과목을 신설하게 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김대수 교수(생명과학)는 감정 때문에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인지부조화 현상을 동물의 소유욕 실험에서 밝히고 있다. 김 교수는 쥐에게 매번 먹이 10개씩을 주다가 한 번에 300개를 주면 너무 좋아하면서 먹이로 향하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반면 줄곧 300개씩 주다가 200개로 줄이면 앞서 경우보다 먹이 총량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빈곤감 때문에 이동속도가 느려졌다는 것.

김 교수는 “대학원생들에게 월급을 조금 주면 ‘돈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 공부니 만족한다’고 했다가 월급을 올려주면 오히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불평이 많아지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나 경제나 감정부터 잡아야 할 일이다.

(조선일보 / 이영완 기자 20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