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는 우리 역사 中에 뺏길순 없죠”

국내의 대표적 고구려사 연구 민간 학술단체인 고구려연구회의 신임 회장에 발해사 연구의 권위자인 한규철(51) 경성대 교수가 취임했다. 한 교수는 발해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첫 학자로 송기호 서울대 교수와 함께 국내 발해사 연구의 양대 견인차로 꼽힌다.

올해로 창립 12년을 맞는 고구려연구회는 활발한 현장 활동을 펼쳐온 초대 회장 서길수(62) 서경대 교수가 재작년 물러난 뒤 동아시아 교섭사를 전공한 서영수(57) 단국대 교수가 2대 회장을 맡아 이론작업을 강화해 왔다.

그런 고구려연구회에서 한 교수에게 3대 회장직을 넘긴 것은 세대교체의 필요성과 함께 발해사를 중국사로 재편하려는 중국의 시도에 맞서기 위해서다. 중국은 헤이룽장(黑龍江) 성 닝안(寧安) 시의 상경성 등 발해유적을 200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하고 있다. 1일 회장에 취임한 한 교수를 만났다.

“우리학계에서조차 고구려는 몰라도 발해까지 우리 역사로 주장할 수는 없다는 인식이 일부에 있습니다. 이는 고구려와 발해의 관계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고구려와 발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닌 나라입니다.”

흔히 국명만 떠올려 고려만이 고구려의 후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고구려 멸망 뒤 정확히 30년 만에 건국된 발해야말로 고구려의 정통 계승국임을 자부했었다. 고려는 고구려 멸망 후 250년 뒤에 건국됐다. 고려 건국 전에 편찬된 ‘속일본후기’에 발해국왕을 고려(고구려) 국왕으로 칭한 기록이나, ‘발해말갈 대조영은 고려(고구려)의 별종’이라는 ‘구당서’(중국의 역사서)의 기록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 교수는 “발해의 건축 유적에 한민족 특유의 온돌과 돌무덤, 돌성이 등장하는 문화적 계승성과 발해 멸망 후 발해 왕손들이 고려 태조 때 귀화해 협계 태(太)씨, 영순 태씨의 시조가 됐다는 족보의 기록도 발해가 우리민족사의 하나임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해사를 한국사로 바라보지 않는 것은 ‘지배층 고구려인, 피지배층 말갈인’이라는 고정된 인식 때문이라고 한 교수는 분석한다.

“발해의 영토는 대부분 고구려의 영토인데 거기 살던 주민 대다수가 고구려인에서 불과 30년 만에 말갈인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옛 사서들에 나오는 ‘말갈’이란 표현은 중국의 동북방 이민족에 대한 중국인들의 통칭이었을 뿐입니다. 오늘날의 만주족으로 이어진 종족명으로서의 ‘말갈족’과는 다릅니다. 그 말갈족은 헤이룽 강 일대의 흑수말갈에만 해당됩니다.”

따라서 교과서 기술부터 지배층과 피지배층 모두를 고구려인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한 교수의 지론이다.

“올해는 발해의 해가 될 것입니다. 8월에는 KBS에서 대조영을 주인공으로 하는 주말드라마를 방영합니다. 10월에는 고구려연구회에서 발해사를 주제로 대규모 학술대회를 개최할 것입니다. 민족주의나 국수주의에 사로잡혀 흥분하기보다는 고구려와 발해의 관계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알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동아일보 / 권재현 기자 2006-2-7) 

"中, 발해 연구 열심인데 우린 남의 일 처럼 여겨"

“올해나 내년에 중국이 발해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발해 역사를 되살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정치적 이념이나 관광 등 상업적 계산 때문에 진행되는 것이라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고구려사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학술단체인 ‘고구려연구회’의 새 회장에 한규철(55) 경성대 교수가 선출됐다.

10년 가까이 연구회를 이끈 서길수 서경대 교수와 서영수 단국대 교수에 이어 3대 회장이 된 한 회장은 발해사 전공자다. 그는 자신의 회장 피선에 대해 “한국사의 부록처럼 취급된 발해사를 온전한 우리 역사의 한 부분으로 알릴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크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의미를 푼다.

고대사까지 포함해 중국 동북 지역의 역사를 모두 중국사로 만들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일환으로 중국이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발해사 복원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발해의 도읍 상경용천부 자리인 헤이룽장(黑龍江)성 닝안(寧安)시 보하이전(渤海鎭)을 비롯, 지린(吉林)성 허룽(和龍)현 서고성(중경현덕부) 등 발해 5경(京)의 유적에 대한 발굴이 진행 중이거나 진행될 예정이다. 복원이 “당나라식”이라는 일부 우려에 대해 그는 “궁성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무조건 잘못이라고 몰아 부치기는 어렵다”면서도 “한국 학자나 언론의 접근을 차단하는 중국 정부의 태도는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한 회장이 1991년 ‘발해의 대외관계 연구-신라와의 관계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고려대에서 국내 발해사 1호 박사가 된 이후 지금까지 발해사 박사 학위자는 모두 10명 정도에 불과하다. 송기호(서울대) 박진숙(충남대) 교수, 고구려연구재단의 임상선 김은국 윤재운 연구위원 등이 역사학 전공이고, 건축학에서 이병건 동원대 교수, 그리고 미술사와 복식사 분야에 박사 학위자 몇몇이 있다.

연구층이 탄탄치 못한 것도 문제지만, 발해사 연구자들을 더 맥빠지게 만드는 것은 비전공 학자들이 “발해사는 한국사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일 때다. 발해사 논란의 중심에는 항상 발해의 민족 구성이 고구려와 말갈로 이분돼 있었다거나,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이 말갈계였다는 주장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한 회장은 “이분법 자체에 무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말갈’은 특정 종족을 지칭한다기보다는 당시 중국인들이 동북 지역민 일반을 낮춰 쓴 말로 봐야 한다”며 “발해를 고구려인과 말갈인들로 딱 나누어 구분하고 말갈계가 다수인 나라였다고 한다면 고구려 역시 그런 식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신당서(新唐書)가 대조영을 ‘속말말갈’이라고 한 것도 ‘속말’(쑹화강)이라는 변두리 지역의 사람이라는 의미로 풀이했다. “무작정 민족주의를 외쳐도 안되지만 민족주의의 혐의를 앞세워 연구결과를 부정하는 풍토도 잘못”이라고 그는 꼬집었다.

올해 10월 발해에 관한 국제학술회의를 준비 중인 그는 “고구려와 발해사를 중심으로 정보 교류 등 고대사 연구자들의 네트워크 강화에도 힘쓰겠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KBS가 올해 8월부터 100부작의 대하 사극 ‘대조영’을 방송하는 등 고구려와 발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며 “기업은행, KTF 등 민간기업의 지원도 우리 역사를 지키는데 큰 보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 김범수 기자 20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