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문화혁명] 편하다고 클릭클릭 … 藥이 毒됩니다

인터넷 지식, 진짜 믿어도 되나요?
史料부터 전문 지식까지 방대한 자료… 萬問萬答
책 한번 안보고 논문 써내는 ‘자투리 지식인’ 양성
‘잘못된 지식’계속 퍼지면 ‘진짜 지식’은 실종 위기

소장 역사학자인 A박사는 마지막으로 종이 위에 적힌 사료(史料) 원전을 본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대만 중앙연구원의 한적(漢籍) 전자문헌 사이트(www.sinica.edu.tw/ftms-bin/ftmsw3)에 들어가면 글자 수 3996만6344자에 이르는 방대한 이십오사(二十五史) 전문(全文)과 만날 수 있기 때문. 이곳에선 사서삼경이 모두 포함된 십삼경(十三經)도 서비스한다. “책을 일일이 구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걸 언제 찾아보고 있겠어요?” A박사는 언제라도 원문이 궁금해지면 이 사이트의 편리한 검색 기능을 이용한다. 이뿐일까. 1781년 청나라 건륭제의 명으로 편찬한 3458종 7만9582권의 사고전서(四庫全書), 지금 불법복제 CD로 떠돌고 있는 이 동양학의 보고(寶庫)도 언제 인터넷의 대해(大海)에 뜬 항공모함이 될지 알 수 없다.

◆ 광대한 원전 서비스로 지식 업그레이드

국내 원전 서비스도 만만치 않다. 민족문화추진회 홈페이지(minchu.or.kr)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원전의 종류는 입이 벌어질 정도다. 지난 11월 우리 문집 663종 350책을 집대성한 ‘한국문집 총간’을 완간한 민족문화추진회는 관련 원문을 계속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다. ‘경세유표’ ‘고려사절요’를 비롯한 고전국역총서 50여종은 번역문도 볼 수 있다. 최근 ‘e-실록’을 개설한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koreanhistory.or.kr)은 ‘한국 고대사료 집성’과 ‘중국 정사(正史) 조선전(朝鮮傳)’을 비롯한 수많은 자료들을 서비스한다. 문화재청의 ‘국가기록유산 포털 사이트’(memorykorea.go.kr)는 ‘삼국유사’ ‘훈민정음’ ‘난중일기’ 등 930권의 주요 전적 문화재들을 원문으로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에선 싸구려 지식밖에 얻을 수 없을 것”이란 예측은 이미 옛말이 돼 가고 있다. 지식의 영역이 무너지고 정의(定義)가 바뀌긴 했지만, 지식 수준의 업그레이드만큼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추세다. 분야를 망라한 논문과 책 본문이 무료 또는 염가에 다운로드되며, 미국 MIT의 강의 커리큘럼이 통째로 사이트(ocw.mit.edu)에 올라오기도 한다. 지난 2002년 시작돼 1년 만에 200만 건을 돌파, 모두를 경악케 했던 네이버 ‘지식in’의 경우 2006년 2월 현재 3900만 건을 넘어섰다. 이에 비해 2003년 개정판이 나온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수록 항목은 불과 8만1600개. 네티즌의 질문에 네티즌이 대답하는 만문만답(萬問萬答)의 힘은 놀랍다.

◆ 초·중딩들 같은 가짜 賢者가 창궐할 수도

이제 사람들은 뭔가 궁금한 게 생기면 인터넷에 접속한다. 그러나 인터넷은 가짜 현자(賢者)들에 의한 거짓 정보가 창궐하는 곳이기도 하다. ‘jm3226’이란 네티즌은 “내가 아는 분야의 질문들을 보면 말도 안 되거나 그럴듯한 거짓말이 답변으로 올라온다”며 ‘지식in’에 하소연했다. 이에 대한 ‘sexyhyory38’의 답변. “초·중딩(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추측성·장난성 답변을 마구 달아서 그렇습니다.”

영문 정보 86만 건에 달하고 네티즌 누구나 수정·보완이 가능하며, 그 정확도가 이미 브리태니커에 필적한다는 미국의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org). 최근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의 보좌관이었던 언론인 존 시전털러에 대해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에 가담했다’는 식의 잘못된 신상 정보가 올려져 있음이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관련 전문가들은 그보다 심각한 우려를 내놓기도 한다. A박사는 “ ‘동북공정’을 획책하는 중국인들이 전후 맥락 없이 아무 곳에서나 입맛에 맞는 기사를 검색해 역사 왜곡에 이용한다면?”이라는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또 “모두가 인터넷 검색으로 사료를 이용한다면, 나중에 가서는 과연 누가 그 정오(正誤)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도 곁들였다. 모두 가슴이 서늘해지는 이야기다.

◆ ‘자투리 지식인’들이 써 내는 박사논문들

임동석(林東錫) 건국대 중문과 교수는 더 큰 걱정이다. “요즘 박사학위 받은 사람들 중에선 자기가 연구하는 텍스트를 한 번 읽어보지도 않고 논문을 쓰는 경우가 허다해요. 그저 남이 쓴 논문에서 인용한 원전을 인터넷 검색 한 번으로 단장취의(斷章取義·전체 뜻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한 부분만을 끊어 쓰는 일)해서 자기가 인용한 것처럼 써 버리니….” 인터넷의 넘치는 지식은 필경 ‘자투리 지식인’을 양성할 수 있다는 것. 약(藥)인줄 알고 먹기 시작했던 편리한 지식이 어느새 누군가에게는 독(毒)이 돼 가고 있는 셈이다.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20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