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경제] 아이디어는 여유에서 나온다

요즘 기업들의 화두는 '혁신(Innovation)'이다. 혁신이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무언가 새롭고 좋은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뜻한다.

혁신이나 창조는 업무에 매달려 바쁠 때보다 한가하고 여유로울 때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요즘 앞서가는 선진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업무 외에 '창조적 시간(Creativity time)'을 따로 주거나 자유로운 기업 문화를 제공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3M과 구글, 지넨테크 등이다.

먼저 가장 최근에 알려진 지넨테크 사례를 보자.

지넨테크(Genentech)라는 생명공학 회사는 포천이 최근 발표한 '2006년 가장 일하고 싶은 100대 기업' 중 1위를 차지했다. 퀄컴(23위), 골드만삭스(26위), 스타벅스(29위), 마이크로소프트(42위), 인텔(97위) 등 기라성 같은 기업들을 모두 물리쳤다.

지넨테크는 어떤 회사일까. 이 회사의 직원수는 지난 1월 현재 9000명이고 지난해 연간 매출은 66억달러다. 기업 규모로는 미국에서 중소기업에 속한다. 그러나 이 회사 매출은 지난 4년간 3배나 급증했다. 주식가격은 주당 95달러로 지난 1년간 100% 이상 상승했다. 성장속도가 매우 빠르다.

무엇보다도 기업의 실질가치를 나타내는 이 회사 시가총액은 1020억달러를 호가한다. 미국의 대표적 제약업체인 머크나 릴리의 시가총액을 넘어선다. 미국 전체 기업을 포함해도 20위 안에 든다.

지넨테크 성공의 비밀은 무엇일까. 직원들에게 다른 기업보다 많은 돈을 주기 때문일까. 그러나 이 회사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7000만원에도 못 미친다. 평균 연봉 1위인 러셀인베스트먼트(57만4373달러)에 비하면 8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직원들의 만족도는 최고다.

포천은 지넨테크의 성공 비밀이 기업문화에 있다고 분석했다.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북쪽에 위치한 본사는 회사라기보다는 마치 대학캠퍼스 같다. 캠퍼스 처럼 넓고 자유분방한 분위기다.

회사 내에선 카푸치노 커피 등 음료수를 무료로 마실 수 있다. 점심 땐 취향에 따라 생선초밥이나 스파게티도 무료로 먹는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에는 맥주파티가 열린다. 이는 1970년대 창업 이래 내려오는 전통이다.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한 몇몇 젊은 과학자들이 입사해 즐기던 것이 이젠 전 회사 차원의 문화가 됐다.

또 이 회사 직원들은 오래 전부터 정장을 입지 않는다. 회사 주차장은 직급에 따라 할당되어 있지도 않고, 임원을 위한 특별 식당도 없다.

지넨테크의 이 같은 '노는 문화'는 그러나 그저 '놀고 먹기 위함'이 아니다. 핵심은 직원들의 창의성을 고양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넨테크가 채택한 가장 중요한 정책이 직원들에게 '창조적 시간(C-time)'을 부여 하는 것이다. 연중 근무시간의 20%는 평소 업무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프로젝트를 하도록 권장한다.

또 지넨테크는 최고의 인재를 뽑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러나 단지 인재를 뽑는 데만 그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인재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 일환이 바로 직원들에게 'C-타임'을 주는 것. 그래서 재충전이 필요한 직원들에게는 안식년도 충분히 제공한다.

이 회사 아트 레빈슨 최고경영자(CEO)는 "전혀 관료적이지 않은 자유스러운 지넨테크 기업 분위기가 높은 창의성과 생산성을 낳는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C-타임의 원조는 스카치테이프와 포스트잇(Post it)으로 유명한 3M이다. 스카치테이프, 포스트잇은 전 세계적으로 안쓰이는 곳이 없을 정도다. 이들 제품은 창의성을 적극 권장하는 3M의 기업문화에서 탄생했다.

3M은 세계적인 아이디어 기업이다. 이 회사가 아이디어 기업으로 불리는 이유는 기업 풍토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3M은 근무시간의 15%는 개인 아이디어에 쓰라는 '15% 룰'로 유명하다.

이 회사 기술연구원들이 연구 시간의 15%를 회사에서 주어진 업무와 관계없이 자신이 원하는 연구 프로젝트나 작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때 아이디어가 나오고 일의 효율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연구직 종사자들의 특성을 감안해 도입한 제도다.

'15% 룰'에 따라 연구원들은 근무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프로젝트를 연구할 수 있다. 또한 그 연구가 실패하더라도 회사측에서 아무런 책임이나 이유를 묻지 않는다.

따라서 연구개발자들이나 기술자들은 이 규칙을 활용해 자유롭게 흥미 있는 연구에 도전할 수 있다. 이러한 자유로운 휴식이나 여유 있는 제도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나는 것은 당연하다.

3M은 또 최근 3년 내 개발한 제품으로 매출의 30%를 올린다는 '30% 원칙', 상사가 모르는 비밀프로젝트를 권장하는 '밀주제조' 제도, 아이디어가 나오면 각 부서가 모여 그것만을 위해 조직을 따로 만드는 '제품챔피언' 제도 등 다른 기업보다 창의성 실현을 위한 조직문화가 잘 마련돼 있다.

이 같은 시스템 덕분에 3M은 오늘날 하루 평균 1.4개의 신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제품수로 치면 1만3000여 종에 달하는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고 있는 것. 기업 문화는 이처럼 구성원의 창의력을 개발해 생산력 향상과 기술혁신을 몰고 오는 엄청난 역할을 한다.

'C-타임'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또 다른 기업은 구글(Google)이다. 98년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설립한 이 회사는 2004년 8월 나스닥에 상장됐다. 그러나 구글은 상장 2년도 채 안되는 사이에 마이크로 소프트(MS)를 위협할 정도로 막강한 기업이 됐다.

구글은 지난해 후반 미국 기업 사상 최단 시일에 시가총액 1000억달러를 돌파 했다. 이 회사 시가총액은 약 1180억달러(1월 20일 기준)로 IT기업 중 MS, 인텔, IBM 다음이다.

구글은 IT회사지만 IT 전문가만 채용하지 않는다. 세상이 워낙 빨리 변해 '전문가'라는 게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새로운 업무를 빨리 배우고,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인재를 뽑는다.

신경외과 의사를 영입해 네트워크 운영을 맡기거나 자동차 경주 선수, 발레리나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인재를 채용한 다음에는 자유로운 발상과 창의력을 유지하도록 근무 시간의 20 %는 담당 업무가 아닌 개인 프로젝트를 할 것을 권유한다. 지넨테크와 같은 '20% C-타임제'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그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회사를 키우는 종합비타민, C타임'을 통해 당초의 창조적 벤처 정신을 계속 유지해 가겠다는 의도다.

(매일경제 / 오화석 기자 2006-2-6) 

“뒤처지는 미국과학” 진짜일까 엄살일까

타임誌 ‘美 과학기술 위기’ 논란
정부 투자는 줄고… 韓·中·印 맹추격
“세계 박사41% 배출 아직 건재” 반론도

미국의 과학·기술 경쟁력은 정말 위기인가. 중국과 인도 등 신흥 강국들의 맹추격을 받고 있지만, 창의성을 중시하는 교육방식과 열린 기업문화, 높은 생산성 등으로 당분간은 어떤 나라도 따라잡기 힘들 것이란 반론도 만만찮다.

◆ 과학·기술 위기론

시사주간지 타임은 6일 발행된 최신호 커버스토리로 ‘뒤처지는 미국의 과학’을 싣고, 이대로 가면 미국은 국가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란 위기론을 심층 소개했다. 타임은 “지난 50년과 달리 이제는 학문적 업적과 기업특허 수, 첨단기술 상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타임은 미국을 추격하는 주요 도전자들로 한국, 중국, 인도를 꼽았다.

타임은 세 가지에서 원인을 찾았다. 미국 연방정부의 연구개발 투자 감소정책, 단기적 이익 노린 기업의 상품개발 노력, 수학·과학교육의 질적 저하다.

타임은 “미국은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인공위성 발사에 놀라 이듬해 미항공우주국(NASA)을 세우는 등 순수·응용 과학분야에 대대적 투자를 한 것이 미국 경제를 세계최고로 만들어온 원동력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지금 다른 나라들이 이런 과학연구 모델들을 복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핀란드의 경우 인구대비 연구과학자를 가장 많이 가진 나라가 됐고,

한국은 황우석 교수 사건이 있었지만 복제와 줄기세포 연구에서 세계적 수준의 전문가를 확보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국은 중국과학원의 과학자 81%가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이들일 정도로 ‘친과학’ 환경을 갖고 있다.

◆ ‘가짜 과학 위협론’

미국의 과학·기술기반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반론도 있다. 타임은 위기론과 함께 2001년 전 세계 박사학위의 41%가 미국에서 나왔으며, 창의성 중시 교육, 개방성, 자율적 문화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생산성은 미국의 전성기였던 1947~73년까지의 수준인 3% 이상으로 다시 회복되었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주 국정연설에서 기초과학분야에 대한 대대적 투자를 약속한 ‘미국 경쟁력 구상’을 발표한 것도, 늦었지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했다.

워싱턴 포스트도 6일 ‘가짜 과학 위협론’이라는 칼럼을 통해, “중국 위협론은 대부분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칼럼은 그 이유로, 중국이 엄청난 과학·기술 투자를 하고 있지만 과학적 능력이 곧바로 경제력으로는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과학적 아이디어를 기업상품으로 흡수하는 데는 미국을 능가하는 국가가 없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 허용범 특파원 20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