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마르크스 살리기'는 장쩌민 죽이기?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설날인 지난 1월 30일 산시성의 옌안에서 새해를 맞았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후 주석은 농촌 마을을 찾아가 농민들에게 자세한 질문을 하며 위로했다. 옌안에 있는 마오쩌둥·저우언라이·주더·류사오치·린뱌오 등의 옛집 등 '혁명 유적'을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후 주석은 "이 옌안의 땅위에서 자라난 '옌안 정신'은 우리들의 가장 소중한 정신적 재산"이라며 "전면적인 소강사회(小康社會·먹고 사는데 문제없는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옌안정신은 사람들을 단결시키는 구심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옌안은 마오쩌둥이 이끈 중국 사회주의 혁명의 성지다. 홍군은 1934년 국민당의 공세에 밀려 2만5000리의 대장정을 떠났고, 갖은 고생끝에 옌안에 자리잡아 혁명 역량을 보존하면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중심은 동부 연안으로 이동했고 옌안은 가난하고 못사는 전형적인 농촌 도시로 잊혀졌었다. 이런 옌안을 후 주석이 갑자기 찾은 것이다.

법치를 강조하지만 아직도 최고 권력자 1인의 의사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중국에서 이번 후 주석의 행보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한 예로 지난 중국 개혁개방의 선도자 덩샤오핑은 1988년부터 7년간 계속 새해를 개혁·개방의 상징인 상하이에서 보냈다.

러시아는 레닌묘 이장 논란, 중국은 마르크스 공정 본격화

현재 중국은 집권 세력만 공산당일 뿐 사회는 완전히 자본주의적으로 움직인다. 지난해 이미 세계 5위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중국에 대해 "겉만 사회주의 국가이지 속은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는 평가가 늘 따라다닌다.

따라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뒤 30년간 중국을 지배했던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사실상 폐기된 상태였다.

그러나 올 설에 중국 사회주의 혁명의 상징인 옌안을 찾은 것이 보여주듯 후 주석은 최근 언뜻보면 시대와 맞지 않은 일을 벌이고 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기초와 건설 공정'을 벌이고 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동북공정'처럼 국가적 차원에서 벌이는 프로젝트다.

러시아에서는 레닌의 묘를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고향으로 옮기고 시신도 매장해야 한다는 논란이 한창이지만 중국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 2004년 1월 '마르크스 공정'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토론회 등 이런 저런 준비작업을 거쳐 지난해 12월 26일, 마오쩌둥 탄생일에 중국 사회과학원 안에 '마르크스주의 연구원'을 정식으로 만들었다.

이로써 마르크스 공정은 본격적인 가속도가 붙게됐다.

중국 공산당 정치국이 직접 지도

마르크스 공정은 중국 공산당 중앙이 직접 지도한다. 그 만큼 규모가 방대하다. 일상적인 책임은 중국공산당 중앙 선전부가 맡으며, 중국사회과학원·중국공산당 중앙당 학교·중국 사회과학원·국방대학 등이 참여한다.

지난해 11월 중국의 시사잡지 <료망동방주간>(瞭望東方週刊)에 따르면, 현재 연구자만 300여명이며 이미 20여차례의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해에만 초기 자금으로 2000만 위안(25억4000만원)이 투입됐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장기적으로 연인원 3000여명에 1억~2억위안(127억~254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마르크스 공정은 총 10년으로 계획되어 있으며 매 3년마다 성과를 총화하고 공개한다.

중국사회과학원 '마르크스-레닌주의·마오쩌둥 사상 연구소'의 이충푸 소장은 "이처럼 거대한 마르크스주의 연구는 중국 공산당 역사상 첫번째"라고 말했다.

목표는 크게 5가지다.

첫째 마오쩌둥 이론·덩샤오핑 이론·'3개대표론'등 중국화 된 마르크스 이론 연구의 강화다.

'3개 대표론'은 지난 2001년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이 들고 나온 이론이다. 중국 공산당은 중국 선진사회의 생산력 발전의 요구를 대표하고 중국 선진문화의 전진 방향을 대표하고, 중국 광대한 인민의 근본 이익을 대표해야한다는 논리다.

둘째는 마르크스와 레닌 저작의 새로운 번역이다. 현재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에 근거해 오는 2007년 전까지 10권짜리 <마르크스·엥겔스 문집>을 출판하고, 5권짜리 <레닌선집>을 펴낼 계획이다.

셋째는 시대적 특징을 잘 반영하는 마르크스주의 학술체계의 건설이다.

넷째는 공통교재 4권·기초이론 교재 3권·중점 교재 6권 등 모두 13권의 고등학생용 교재를 펴내는 것이다. 이 교재들은 먼저 자문단의 검토를 받은 뒤 최종적으로 중국을 이끄는 핵심 실세들이 포진해 있는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마르크스 공정에 중국 지도부가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교재는 일단 13권을 낸 뒤 이후 140~150권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다섯번째 마르크스주의 연구 인력과 조직을 강화하는 것이다. 특히 젊은 이론가·학술작업 집행자·기자·편집자 등을 집중 육성하는 것이 목표다.

마르크스 공정은 심각한 빈부격차 문제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처방'

번역 전담 기관인 중국편역국 양진하이 부비서장은 "이 공정의 목적은 한마디로 마르크스주의 기초이론의 연구, 고등학교 교재의 편찬 및 현실 속에서의 실현에 있다"고 밝혔다.

그는 "개혁·개방 이후에 출현했던 사건들은 모두 우리들이 마르크스주의를 서로 다르게 이해한데서 비롯됐다"며 "대학에는 서방의 원서들만 보고 아무런 지도가 없다, 그래서 큰 혼란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충푸 소장은 "전통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덩샤오핑 이론, 3개 대표론을 대립시킬 수 없다"며 "우리들은 덩샤오핑 이론의 기초는 전통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하이 재경대학 청인푸 교수는 "마르크스주의가 왜 과거의 것인가? 여러분들이 제기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나는 마르크스주의를 이용해 대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중국 정부가 마르크스주의를 들고 나온 것은 중국의 심각한 빈부격차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처방'이다.

덩샤오핑과 장쩌민은 '선부론(先富論)'을 내세웠다. 일부 계층·일부 지역이 먼저 부유해지면 나중에 다른 계층·지역까지 혜택을 입는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중국의 지역간·계층간 빈부 격차가 너무 심각해졌다. 지난 2004년 당·군·정을 장악한 후 주석은 '조화 사회'를 내세우고 빈부격차 문제의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3년 12억9227만명 인구 가운데 약 60%를 차지하는 7억6851만명의 농민들이 심각한 문제다. 중국 국가통계국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3년 현재 도시 주민들의 연 평균 수입은 8472위안이지만 농촌주민들은 2622위안이다. 중국 정부 공식통계보다 실질적 차이는 훨씬 크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마르크스 공정이 과연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의 신좌파들은 "중국 공산당은 가진자들의 정당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공산당이 주장하는 평등사회는 사회적 불만을 일시적으로 무마하려는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장쩌민과 상하이방의 영향력 제거위한 수단"

중화권 일부 언론들은 마르크스 공정은 장쩌민의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한 정치적 포석으로 해석한다.

장쩌민의 3개 대표론은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가장 선진분자로 구성된다'는 정통 마르크스 주의를 사실상 폐기한 것이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사실상 한국의 과거 공화당이나 민정당처럼 개발독재의 정당으로 변모하려는 시도로 해석됐다.
따라서 후진타오는 겉으로는 3개 대표론을 긍정적으로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마르크스 공정을 통해 아직도 남아있는 장쩌민과 상하이방의 영향력 제거를 시도하고 있다고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후 주석이 서방의 기대와는 달리 갈수록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후 주석이 2004년 명실상부한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됐을 때 서구 언론과 지식인들은 젊고 활력있는 그가 사회주의에서 더욱 벗어나 다당제 도입 등 자유주의적 개혁을 시도할 것이라고 성급하게 예상했다.

그러나 마르크스 공정은 서구 쪽의 그런 기대는 중국 정치의 현실을 살펴보지 않은 몽상에 불과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마이뉴스 / 김태경 기자 20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