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새 국새 손잡이는 ‘三足烏’로 하자”

나라를 상징하는 국새(國璽)에 관심을 가진 국민들이 새로 제작하는 국새 손잡이에 고구려의 문화 상징인 ‘삼족오(三足烏)’를 새기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행정자치부는 최근 밝혔다.

삼족오는 까마귀가 아니다

‘삼족오’는 일반적으로 ‘세 발 달린 까마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삼족오의 원래 의미는 ‘세 발 달린 검은 새’다. 날개가 한쌍이고 다리가 셋 달린 삼족오는 붉은 태양 속에 살고 있어서 우리 민족이 하늘의 피를 받은 선택된 집단임을 의미한다. 삼족오가 ‘세 발 달린 까마귀’가 아니라 ‘세 발 달린 검은 새’인 이유는 빛의 원리에 의해 태양을 배경으로 서 있으면 모든 물체가 검게 보이는데서 기인한다. 게다가 삼족오에는 ‘벼슬’이 있는데 이 벼슬은 까마귀나 까치에는 찾아볼 수 없다. 실제 ‘오(烏)’를 옥편에서 찾아보면 ‘까마귀 오’ 또는 ‘검을 오’로 나오는데 ‘오죽(烏竹)’이 ‘검은 대나무’의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국민들이 행자부에 새 국새 손잡이로 제안한 ‘삼족오’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자주 등장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삼족오가 중국의 상징인 용과 우리나라의 상징인 봉황을 당당하게 거느리고 있어 삼족오가 용과 봉황보다 상위의 문화 상징으로 사용됐음을 보여준다. 새 국새 손잡이로 고구려의 문화 상징인 삼족오가 채택된다면 고구려 전통을 되살린다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사를 왜곡해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시도에 맞서 대한민국이 지금도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삼족오는 고구려를 비롯한 중국이나 일본의 문헌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태고적부터 ‘동이조족(東夷鳥族)’이라 불릴 만큼 ‘새 문화(飛鳥文化)’와 깊은 관련을 맺어왔다. 문화의 뿌리가 되는 우리의 의식주에서부터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말에 이르기까지 새 문화를 상징하는 전통이 곳곳에 남아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유적·유물들을 보더라도 고구려가 일상생활에서 중국이나 일본보다 삼족오라는 상징을 훨씬 더 다양하게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쌍영총, 무용총, 각저총, 진파리 1·7호분 등 고구려의 대표적인 고분들에는 반드시 삼족오가 벽화의 한 부분으로 장식돼 있으며 금동 장식품이나 베갯모·목침의 장식에도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진파리 7호분에서 나온 금동 장식품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삼족오를 중심으로 용 두 마리와 봉황을 배치하고 있다.

인문은 광개토대왕비체로

또 국민들의 제안 가운데 국새의 인문(印文)에는 광개토대왕비체와 훈민정음체로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왕 새 국새 손잡이로 고구려의 문화 상징인 삼족오를 채택한다면 인문의 글씨도 광개토대왕비체로 하는 게 적절하다. 알다시피 광개토대왕은 우리 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차지해 한민족의 기상을 가장 드높인 조상이 아닌가.

일본이 역사를 왜곡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광개토대왕비문의 내용이다.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기 위해 ‘광개토대왕이 왜를 정복했다’는 비문을 날조, 전혀 엉뚱한 내용으로 둔갑시킨 것이 한두번이 아니지 않는가.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이나 일본이 호시탐탐 고구려 역사를 왜곡 또는 찬탈하려는 시도에 결연히 맞서기 위해서라도 새 국새 손잡이는 고구려의 문화 상징인 삼족오로, 인문의 글씨체는 광개토대왕비문에서 글씨를 집자(集字)해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학자들에 따르면 광개토대왕비문에 나오는 ‘大韓民國’ 네 글자를 집자했을 경우 국민이 편안하고 국운이 상승(太平之像)하는 글씨체를 이룬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광개토대왕비문의 경우 ‘대한민국’이 전통 옥새전각에서 가장 선호하는 획수인 총 35획을 이루어 가장 강력한 기운 상승을 의미한다기에 더욱 그렇다.

행자부는 새로 제작하는 국새도 ‘공모’를 통해 만들겠다고 밝혀 또다시 불완전한 국새를 만들까 크게 우려된다. 국새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동양학문(運氣學)에 정통하고 서예, 회화, 전각, 조각, 주조 등 그야말로 종합예술을 할 수 있는 옥새 전각장이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만든 국새가 금이 간 이유도 각 분야의 전문가를 참여시키면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지극히 안일한 발상에서 비롯됐다. 국내 최고의 주조 기술자를 비롯해 서예가, 조각가 등을 참여시켰지만 결과적으로 국가적 망신을 초래한 것 말고 무엇이 있는가.

우리에게는 조선시대부터 옥새 제작의 비법인 영새부를 비밀리에 전수받아온 옥새 전각장이 있다. 국새가 옥새의 전통을 이어받은 자랑스런 문화유산인만큼 얼마든지 제대로 된 국새를 만들 장인이 있는 것이다. 지난번의 실수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이번에는 제대로 된 국새를 만들자.

(파이낸셜뉴스 / 노정용 문화부장 2006-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