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호연지기 배웠으면…”

설날을 전후한 겨울에는 동물이나 사람이나 모두 행동반경이 좁아지게 마련이다. 게으름과 무료함으로 인해 삶의 의욕도 떨어지기 쉽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선조들은 삶의 지혜를 짜냈다. 연날리기, 널뛰기, 제기차기 등으로 아이들을 집 밖으로 몰아내 뛰놀게 한 것.

개중엔 어른들을 위한 놀이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매사냥. 품위를 유지하면서 자연과 혼연일체가 될 수 있어 왕은 물론 귀족들의 겨울철 심신단련 스포츠로 사랑을 받아왔다.

토종 자연스포츠인 매사냥은 사람과 야생동물이 어우러져 벌이는 전통 민속으로 겨울사냥의 백미로 꼽힌다.

오늘날 총기보급과 천연기념물보호법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는 매사냥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기능보유자(일명 ‘웅사’)가 전국에 두 명밖에 없다. 그 중의 한명인 박용순씨(대전시무형문화재 제8호)를 만났다.

참매와 송골매를 훈육하고 있는 그는 매사냥에 대해 “자연과 함께 사는 법을 중시한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선물이다. 매사냥은 자연을 관찰하고 즐기며 자연과 호흡하는 법을 알려준다. 사람이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사람을 보호한다는 깨달음을 준다”며 “오늘날까지 원형이 깨지지 않고 전해져오는 민속 중 유일하다. 이는 매와 우리네 풍속이 끈끈하게 밀착돼 있기 때문”이라고 정의했다.

그 예로 그는 매와 관련된 생활 속 어휘들을 꺼내보였다.

실속있고 힘든 일도 잘 해낸다는 뜻의 ‘옹골차다’, 알고도 모르는 체 한다는 의미의 ‘시치미’ 등 100여개 단어들이 모두 매에서 나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매사냥이 고구려벽화의 단골소재 중 하나였으며 백제 국호 중 하나가 매를 뜻하는 응준(鷹準)이었다. 또 고려 때엔 고종이 매사냥에 빠진 양반들을 엄벌에 처했으며 충렬왕은 매사냥담당부서인 응방(鷹坊)을 설치했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는 연산군에 이르러 응방인원이 400명에 달할 정도로 붐을 이뤘으니 매사냥이 우리전통과 얼마나 인연이 깊은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일본의 매사냥도 백제 귀족 주군이 일본 인덕천황에게 기술을 전해준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역사기록이 남아 있다. 심지어 옛 선조들은 겨울철 청소년의 주색잡기를 막기 위한 오락으로 매사냥을 권장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매는 굶어 죽어도 벼 이삭을 먹지 않을 정도로 자존심이 강하고 죽을 때까지 나무에 정자세로 있다가 떨어져 죽을 정도”라며 “여러 가지 일로 어수선한 요즈음 특히 정치인들이 매의 대쪽같은 품위와 곧은 기상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전일보 2006-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