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 / 스인훙] 떠오르는 중국, 도전받는 미국

멀리는 9·11테러, 가까이는 이라크전쟁 이후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큰 도전을 받고 있다. 미국의 위상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현재와 가까운 장래의 국제 정세를 판단하고 전망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9·11테러는 미국의 권위가 이슬람 세계에서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보여줬다. 9·11테러는 미국의 국가자원과 정력, 주의력을 장기간 붙들어 둠으로써 미국이 지역정치에 집중하거나 잠재 세력의 부상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반(反)테러를 내세운 이라크전쟁은 미 국력의 기본요소인 선진국 간의 정치 군사동맹 체계를 크게 약화시켰다. 또 종전 미국이 가졌던 국제 문제에 대한 도덕적 우위도 실추됐다. 미 국력의 다른 요소인 국내 여론의 응집력과 행정 당국에 대한 지지도 크게 약화됐다.

미국은 이미 이라크에서 대단히 심각한 정치 군사적 어려움에 빠져 있다. 필자는 2003년 4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 ‘합법성을 결여한 무력을 통해 한 국가를 정복하더라도 현지 무장세력의 가시적인 협조를 얻지 못하면 치안업무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대규모 군사력을 동원한 장기 점령은 미국이 다른 지역(한반도와 중동)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관리할 자원과 정력을 심각히 제약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실제로 미국은 세계적인 강국이 반드시 갖춰야 하는 군사적 ‘유연반응’ 능력을 크게 제약받고 있다.

특히 2004년 미 대통령선거 기간 미국 내 여론은 대외정책 분야에서 심각하게 분열됐다. 정부의 대외정책과 국가 안전전략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와해됨으로써 정책 추진력이 크게 떨어졌다. 그런 뜻에서 현재 미국의 대외정책은 취약한 상황에 몰려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다.

최근 2년간 미국에서는 대외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2004년 7·8월호 포린어페어스에 게재된 ‘현재 진행 중인 세계적인 세력 전이(轉移)’라는 논문이 대표적이다. 중국이 고도 경제성장으로 아시아에서 급속히 부상하고 있으며 커진 경제력을 정치 군사력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다소 일반적인 내용이다.

뉴욕타임스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집권 직후 ‘미국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는 새로운 아시아’라는 글을 실었다. 지난 4년간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대폭 축소됐으며 변화의 원동력은 중국의 경제성장이라는 지적이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중국의 부상은 미국의 국제 위상에 영향을 주는 가장 큰 요소가 될 것이다. 중국은 고도 경제성장으로 지난 10년간 경제총량이 2배 이상 커졌고 대외무역의 규모와 지리적 분포도 신속히 확대되고 있다. 또 강화된 경제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지역 외교를 펼치고 있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에서는 이미 중국과 미국 간에 점차적인 세력 전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이 앞으로도 계속 국내 정치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면서 경제 발전을 지속하고 군사력을 현대화할 수 있다면 동아시아에서 미국과의 역량 격차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특히 대만과 한반도 문제, 중-일 갈등 등 세 가지 문제를 잘 처리할 수 있다면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중국은 대만과 한반도 문제 처리 능력이 종전에 비해 현저히 강화됐다. 다만 중-일 문제 처리 능력은 시험받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이들 문제는 중국의 미래와 미국의 국제적 위상, 국제 정치구조를 결정짓는 중대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스인훙(時殷弘) 중국 런민(人民)대·국제관계학원 교수

(동아일보 2006-1-27)  

전략적 유연성 논란의 저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등 전문용어들이 언론매체에 다시 넘쳐난다. 특정 분야에 관심이 깊은 사람이 아니라면 개념조차 쉽게 들어오지 않는 이런 용어들이 주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여전히 불투명하고 미묘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9·11 동시다발 테러 이후 세계적으로 미군 재편 전략을 몰아붙이고 있는 미국의 압력을 직접 상대하는 정부 당국자들의 고충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유연성 원칙에 선뜻 합의해준 것은 아무래도 성급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주한미군을 기동타격대처럼 운용하는 유연성을 인정할 때 먼저 떠오르는 불길한 시나리오는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 충돌 가능성이다. 세월이 많이 흐르기는 했지만, 기본 구도는 한국전쟁 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 작가 황석영씨의 〈손님〉이나 권정생씨의 〈몽실언니〉 같은 작품에는 한국전쟁이 우리 겨레에 얼마나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는지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 전쟁을 이모저모 따져보기에는 남과 북 모두 제약 요인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데올로기적 족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외국인 학자들은 일반인에게 낯선 해석들을 내놓고 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같은 이는 한국전쟁을 미-중 전쟁의 연장 차원에서 설명한다. 중-일 전쟁 기간에 소강상태에 들어갔던 중국의 국-공 내전은 1945년 일본의 무조건 항복 이후 재개됐다. 마오쩌둥의 홍군은 47년 말 동북삼성 전역을 제압하고 남진을 시작했다. 마오는 미국의 간섭을 우려한 소련의 절대 권력자 스탈린으로부터 자제를 요구받지만 무시한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국민당군을 밀어내고 대륙 본토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항상 미국의 간섭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북한 지도부의 남침 결정은 중국혁명의 성공에 고무된 바 크다. 또한 한반도에서 정면으로 맞붙은 미국과 중국의 처지에서 보면 한국전쟁은 중국혁명의 성패에 끝장을 내기 위한 결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 53년의 휴전협정 조인으로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이 끝난 이후에도 대만을 비호하는 미국과 중국의 적대관계가 계속됐다. 70년대 들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과 미-중 관계 정상화가 이뤄졌지만, 상호 불신의 저류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 클린턴 행정부 때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됐던 미-중 관계는 부시 2세 행정부에서는 ‘전략적 경쟁자’로 대결 색채가 다시 짙어졌다.

동아시아에서 두 거인이 잠재적 적으로 보며 힘을 겨루는 틀에서 자유로운 역내 국가는 없다. 일본이 90년대 말부터 주변사태 관련법과 무력공격 사태법 등 잇따라 전시 대비법을 제정한 것은 한반도와 대만 사태를 상정한 미국의 압력에 따른 것이다. 우리의 처지는 더욱 곤혹스럽다. 최근 한-미 동맹이 갈림길에 섰다며 틈만 나면 정부의 노선을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에 고자질하는 듯한 무리들이 있지만, 우리의 최우선 순위를 분명히하면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가는 것이 그리 버거운 일은 아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참화가 재발하는 것을 막고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지상과제다.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이 미숙련자들 손에 좌우되고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닦이지 않은 길을 여는 일이다. 한국 외교가 절대적 대미 추종 노선에서 아주 조심스럽게나마 새로운 발상을 시도해본 것 자체가 얼마 되지 않은 일 아닌가? 대국들을 상대로 국력의 차이를 넘어서는 세련된 카드를 쓰는 것이 외교안보 전문가들에게 맡겨진 역사적 책무다.

(한겨레신문 / 김효순 편집인 2006-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