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저출산의 현장 “아이가 없어요”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지금 국가적 과제가 됐습니다만 저출산의 현장을 찾아보면 얼마나 상황이 심각한 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병원에는 신생아가 없고 분유 판매량도 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선재희 기자가 심층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저출산의 직격탄을 맞은 곳은 산부인과입니다.

텅 빈 신생아실엔 인큐베이터 등 고가 장비가 방치돼 있고 인적없는 분만실은 썰렁하기까지 합니다.

지난 97년 640여건이었던 이 병원의 분만 건수는 지난해엔 54건에 그쳤습니다.

올들어선 단 1겁니다.

다른 병원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인터뷰>이기철(산부인과 의사) : "저도 얼마만큼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1년 전부턴 분만에서 적자를 내고 있거든요."

30년 동안 이 지역의 대표 어린이집으로 자리를 잡아온 한 어린이집,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원자가 넘쳐 대기자만 수십명이었지만 올해 처음으로 정원을 10% 이상 채우지 못했습니다.

<인터뷰>이창영(어린이집 원장) : "원아를 절반도 못 채운 데가 허다하고 앞으로는 그런 경우가 점점 더 심해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초등학생 수는 1990년 4백 8십 6만 여 명이었지만 지난해엔 4백 만 명으로, 80만 명 이상 줄었습니다.

그래서 고령화에다 저출산까지 겹쳐 농어촌 지역에선 최근 폐교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농 물결에도 50년 동안 버텨온 이 학교도 저출산의 여파로 지난해 결국 폐교했습니다.

<인터뷰>김은영(강원도 횡성군 봉덕진료소 소장) : "출산율이 거의 0%라고 해야 할 정도로 젊은 사람들이 애를 안 낳고 젊은 사람들이 없어요"

여기에 국내 조제 분유 판매량이 최근 5년 동안 30% 이상 줄어들었고 백화점에선 아동 매장의 면적을 줄이는 등 저출산 여파가 각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선재희입니다.

(KBS 2006-1-26)  

"고령화 대비? 대책 없는데요"

-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는?
"경제적 이유 때문에", "가정에 머물기보다 사회에 나가서 일하고 싶어서", "직장 생활도 해야 하는데, 육아까지 병행하기 힘들어서"…

-
고령사회는 어떻게 대비하는가?
"아이들에게 기댈 수밖에", "아무 대책 없다", "성인 때부터 각자 준비해야"…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20대부터 60대까지 시민들의 자조 섞인 답변들이 쏟아졌다.

26일 정부를 비롯한 정계·재계·노동계·종교계 등 대표들이 참석한 '저출산·고령화 대책 연석회의'(의장 이해찬 국무총리) 발족식에서 주최측이 공개한 '시민인터뷰' 동영상을 통해 남녀노소 시민들은 출산과 고령화에 대한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날 서울 백범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출범식과 동시에 첫 본회의를 연 연석회의는 지난해부터 여성계와 종교계 등이 출산장려 운동과 '저출산·고령화 대책시민연대'(2005년 7월)를 발족하는 등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운동을 펼치던 중 정부가 힘을 보탠 것이다.

연석회의는 출범선언문을 통해 "우리의 공동목표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미래에 대한 희망과 확신 속에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주고 싶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며 "누구나 마음 놓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남녀가 함께 양육하는 평등사회, 일생의 노고와 헌신이 존경받고 정당하게 보상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석회의는 "이제 경제계·노동계·시민사회·종교계·여성계 등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하나하나 모색하겠다"며 "실천적 의제를 점검하고, 신뢰와 양보, 진지한 대화를 바탕으로 지혜를 모아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해찬 총리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중차대한 고비"

연석회의 의장인 이해찬 국무총리는 인사말을 통해 "우리는 지금 선진국의 문턱에 와있다"며 "조금만 고삐를 당기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데, 자칫 잘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중차대한 고비가 바로 지금"이라고 강조했다.

이 의장은 "선진국으로 향하는 가운데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면서 "출산율이 1.5명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부터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김용익 운영위원장은 기조발제에서 "2004년 합계 출산율이 1.16명으로 사상 최저로 떨어졌고, 2005년 세계인구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최저 출산국가군으로 분류됐다"며 "2020년을 정점으로 총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노인인구 증가로 2016년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위원장은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을 위해 사회경제적 변화에 한국 사회가 안전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범사회적이고, 범정부적 중장기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며 ▲여성 경제활동을 위한 육아지원 ▲평생건강관리를 통한 노동력의 조기 일실 방지 ▲의료비 절감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연석회의는 출범식 이후 저출산·고령사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넓히기 위한 범국민 홍보를 벌이고, 참여단체별 역할분담을 통한 구체적 실행방안을 준비할 계획이다. 또 연석회의 위원들과 실무대표들이 참여하는 워크숍과 관련 제도 및 법을 재정비할 방침이다.

"산아제한 당하다가 출산장려 논하니 격세지감"

은방희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은 자유토의 시간에 "산아제한 정책에 의해서 출산을 조정당한 경험이 있는 세대인데, 출산 장려 문제를 논하니까 격세지감"이라고 평했다.

은 회장은 "여성단체는 수년전부터 출산 저하에 이상이 있다고 감지하고, 출산지수의 추이를 주시했다"며 "출산과 육아 등에 대한 사회적 부담을 국가가 져야 한다는 당위성을 설파하고, 서비스 사업에서 육아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각종 제도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지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은 "'자녀를 낳아도 노인이 되니 소득이 없더라'는 인식이 많다"며 "이를 위해 적합한 효자상을 제시하고, 출산과 육아에 따르는 여성의 고통을 국가와 종교계 등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관은 보육의 문제를 지적하며 "교회, 성당, 원불교 사찰 등을 보육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남녀 비율에서 볼 수 있듯이, '남아 위주로 출산이 잘못 전개되면 위험하다'는 등의 교육·홍보자료가 충분히 있어야 한다"며 "연석회의에서 각 부문별로 교육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또 "임신중절을 자제시키기 위해 연석회의에 의사협회 대표도 들어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출산·고령화 대책회의 위원

▲정부 이해찬 국무총리, 한덕수 재정경제부 장관, 김진표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송재성 보건복지부 장관 직무대행, 김대환 노동부 장관,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 조영택 국무조정실장, 김용익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운영위원장

▲재계 강신호 전국경제인연합회장,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김재철 한국무역협회장, 김용구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 정명금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

▲노동계 이용득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장대익 한국노총 부위원장, 백헌기 한국노총 사무총장, 민주노총은 새 집행부 구성 이후(2월 10일) 참여

▲시민사회 김성훈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안필준 대한노인회장, 이선종 참여연대 공동대표, 이학영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여성계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은방희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종교계 지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박종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 김지석 천주교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장

▲농민 문경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서정의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

▲학계 손봉호 동덕여대 총장, 이종훈 시민사회포럼 대표

(오마이뉴스 / 이민정 기자 2006-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