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호 교수 "온돌의 기원 '북오저說' 타당성"

“온돌은 고구려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고고학 발굴로 따지면 아무래도 북옥저(두만강 유역과 간도 및 연해주 남부 일대로 추정) 사람들이 남긴 ‘단결(團結)-크로우노프카’ 문화에서 발원한 것 같습니다.”

겨울철 실내 난방을 위한 온돌은 이웃 중국이나 일본과 확연히 구별되는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문화이다. 대학 교수 등 전문가들은 온돌 설비를 2,000년 전 고구려에서 생겨나 지금은 20층도 넘는 아파트까지 층층이 시공하는 독특한 우리의 생활 문화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송기호(50)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최근 낸 ‘한국 고대의 온돌’(서울대출판부 발행)에서 그 기원을 고구려가 아닌 북옥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북옥저 기원설이 처음은 아니다. 송 교수에 따르면 그 동안 가장 활발히 온돌을 연구한 남ㆍ북한 학자의 상당수가 고구려 기원을 주장한데 비해, 러시아 학자들은 연해주 고고학 발굴 성과에 근거해 일찍이 북옥저설을 내놓았다.

송 교수에 따르면 고고학 발굴로는 (기원전 1, 2세기에 해당하는) 전한(前漢) 시기 초기철기문화인 만주 동부와 연해주 일대의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에서 쪽구들(부분 온돌)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초기 고구려의 중심지인 환런이나 지안에서는 쪽구들이 발견되지 않고 오히려 그 외곽지대에서만 발견”된다. 이를 보다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는 것이 고구려 첫 도읍으로 알려진 환런의 오녀산성 유적이다.

송 교수는 “이 유적은 5개 문화층으로 돼 있으며 제3기가 고구려 건국 전후인 전ㆍ후한 교체기, 제4기는 고구려 중기인 4세기 말~5세기 초인데, 쪽구들이 제3기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다가 제4기에 나타난다”며 “고구려가 중기가 돼서야 쪽구들을 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 문화는 고구려 유민이 중앙 귀족이던 발해에 그대로 이어졌고, 발해 멸망 뒤에는 여진족이 그 전통을 이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한반도 북부와 연해주 및 만주 동부를 중심으로 확인된 쪽구들 관련 고대 주거지는 모두 92개 유적에 527개.

‘한국 고대의 온돌’은 바로 이 한반도 북부와 만주, 연해주 일대의 쪽구들 발굴 자료를 한데 모아 소개하고 그 의미를 종합적으로 살핀 것이다. 그 동안 한반도 남부 위주로 진행되어온 온돌 연구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물론 동북아 쪽구들의 양상을 종합적으로 파악한 작업이다.

송 교수는 “쪽구들 자료의 집적에 1차 목표를 두었고 논저 목록, 분포도, 도면이나 사진 가운데 현지에서 직접 촬영하거나 입수하여 처음 공개하는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온돌 형태의 난방 시설은 흉노족의 바이칼 지역, 로마제국 등지에서도 흔적이 발견되지만 후대로는 전해지지 않았다. 반면 단결(團結)-크로우노프카에서 발원한 온돌은 이후 한반도로 전해져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전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송 교수는 “특이한 점은 온돌을 사용한 곳이 우리 역사, 우리 민족의 생활 범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이라며 “왜 그런 지 이유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 김범수 기자 2006-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