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면 할 수록 굳어지는 북-중관계

[取중眞담] '중국의 북한 포기론'은 네오콘의 몽상이었나

"중·조 양국은 '입술과 이처럼 서로 의지하는 관계'(脣齒相依)다. 둘은 패권에 반대하는 강철 동맹이다. 김정일 총서기는 우리의 전우이자 동지이며 형제다."

"중·조 양국은 형제와 같다. 이러한 감정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란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중국 인민과 조선 인민은 한 몸의 팔과 다리와 같다. 중·조 인민은 단결해서 외세의 침입, 특히 일본의 침약을 막아야 한다."

"부유하고 안정된 조선은 중국에 100가지 이익을 줄지언정 단 한 가지 손해도 없다."

"김정일이 마침내 중국의 개혁·개방이 정확했음을 인정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변화다."

"조선은 우리의 전통적인 우방이다. 조선이 개혁·개방의 길을 걸어, 인민이 부강해지고 나라가 강대해지기를 바란다. 단, 우리의 개혁·개방의 경험과 교훈을 흡수할 필요가 있다. 부패 방지·빈부격차 해소·사회 치안 확보·의료와 교육을 시장에 맡기지 않는 것 등을 하면 좋다.

중국은 어렵게 개혁·개방을 했지만, 조선은 뒤에서 중국의 경험만 흡수하면 된다. 특히 조선은 한 장의 백지와 같으니 아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조선이 강대국이 되는 것은 중국이 동북아 지역에서의 이익과 안전을 확보하는데 있어 대단히 유익하다."


19일 오전 10시 현재 중국의 포털 사이트인 시나닷컴(news.sina.com.cn)에 실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기사에 달린 중국 네티즌들의 댓글이다.

500여개의 댓글이 김 위원장 방중에 대한 찬사 일색이다. '작은 나라인 조선이 미 제국주의에 과감하게 대항한다'며 김 위원장을 개인적으로 찬양하는 댓글도 보인다.

후진타오 집권 뒤 나왔던 중국의 북한 포기론

중국 정부가 인터넷을 통제한다지만 이런 댓글까지 조작했을 것 같지는 않다.

관심을 끄는 것은 중국 네티즌들이 북·중 관계를 표현하면서 '입술과 이처럼 서로 의지한다'(脣齒相依)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다는 점이다. 또 북한의 개혁·개방을 중국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글이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중국 네티즌들의 생각이 곧 중국 지도부의 생각과 100%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지난 몇년간의 상황은 둘의 생각이 상당히 근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2004년 9월 후진타오 주석이 당 총서기·군사위 위원장·국가 주석 등을 모두 장악한 뒤 국내외에서는 북·중 관계가 멀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관측이 쏟아졌다. 사회주의 혁명에 직접 투신했던 덩샤오핑이나 장쩌민과는 달리 신세대 지도부인 후진타오는 북한에 대해 과거의 '혁명의 공감대'보다는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이런 분석은 더 나아가 미 네오콘 등을 중심으로 경제개발이 급선무인 중국은 미국과의 마찰을 피할 것이며, "북한과 미국 가운데 한 쪽을 선택해야할 순간이 되면 결국 미국 편에 설 것"이라는 이른바 '중국의 북한 포기론'으로 이어졌다.

조지 부시 행정부가 북·미 양자회담이 아닌 6자회담을 극구 원했던 것도 "이 틀을 통해 북한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면, 결국 중국도 이 흐름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 포기론'은 지난해 2월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을 때, 최근 위조 달러 문제가 불거졌을 때 등 북한에 불리한 정황이 발생하면 언제나 강해졌다.

점점 끈끈해져가고 있는 북한과 중국

그러나 지난 몇년간의 상황을 크게 보면 현실은 다르다. 오히려 북·중의 정치적 동맹은 여전하며, 여기에 경제적 동맹으로까지 확대되면서 더욱 공고해지는 느낌이다.

정확히 말하면 북한이 중국에 갈수록 더 의존하고 있으며, 이 가난한 이웃을 후진타오가 내치기는커녕 더욱 더 품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불과 3개월만에 이뤄진 이번 북·중 정상회담도 후 주석이 김 위원장을 중국으로 불러서 이뤄진 것이다. 비공식 방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최고 핵심 지도부인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이 모두 출동해 그를 영접했다. 19일 <홍콩 경제일보>는 "중국의 김 위원장 환대는 미 대통령에게나 가능한 일"이라며 "이는 중국 지도부의 전략적 고려에 의한 것"이라고 평했다.

'김정일이 후진타오의 남자'가 되고 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앞에서 인용한 중국 네티즌의 표현대로라면 북·중 동맹은 '강철 동맹'이 되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북한에 대한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 지원에 중국 지도부가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지난해 이미 세계 6위를 자랑하는 중국의 경제규모로 볼 때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더구나 '밑빠진 독에 물 붓기'를 막기 위해 중국은 북한에 개혁·개방을 강요하다시피 강조하고 있다.

결국 네오콘들의 '중국의 북한 포기론'은 이뤄질 수 없는 꿈이자 '몽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적 경험

평양에서 10년, 서울에서 12년을 산 장자크 그로하 유럽상공회의소 소장은 지난 1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대북 정책은 중국 국경 국가들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아시아·태평양 정책과 맞물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 네오콘들과 보수 진영 인사들은 중국에 대해 이중적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중국을 어르고 부추겨서 북한을 포기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면서 미·일 동맹 등을 통해 지금부터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에서는 중국의 협조를 기대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에게 칼 끝을 겨누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를 잘 알고 있는 중국 지도부가 '외곽 방어선'인 북한을 포기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은 미국의 북한 공격 용납과 북한의 핵 무기 보유 가운데 한가지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차라리 북한의 핵 보유을 인정할 것"이라는 '중국의 북한 포기론'과 상반된 견해를 내놓는다. 중국은 수천년의 역사적 경험으로, 주변의 우방국이 외세에 의해 침략당하면 반드시 본토가 공격당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조선 출병, 청·일 전쟁, 한국 전쟁 때 중국의 참전 등이 모두 이런 배경이 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지난 10일 한 강연에서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북한과 중국의 동맹관계를 끊는 것"이라며 "김정일은 중국을 믿고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연 현재와 같은 미국의 정책이라면 북·중 관계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어 보인다.

"중국인들이 다시 압록강을 건너고 있다"

문제는 북·중간 정치·경제적 동맹 강화가 미국의 대 북한 강경책을 막는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남한에게도 상당히 우려스럽다는 점이다.

지난 2004년 7월 말 중국의 시사잡지인 <료망동방주간>(瞭望東方週刊)은 "중국인들이 다시 압록강을 건너고 있다"며 "(이전에는 군인들이었지만) 이번에는 상인들이다"라고 보도했다. 1950년 한국 전쟁 때는 군복을 입은 중국군이 압록강을 건넜지만 이제는 북한 지역에 대한 투자를 위해 기업가들이 도강하고 있음을 빗댄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경제 동북공정'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 2000년 중국의 대북 교역액은 4억8800만 달러로 우리나라의 대북 교역액(4억2500만 달러)과 비슷했다. 그러나 지난 2004년 북한의 대 중국 교역액은 13억8000만 달러로 늘어난 반면 남한은 6억9700만 달러에 그쳤다.

중국은 북한의 최대 무역국이 됐다. 북한의 전체 대외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8.9%인데 비해 남한은 19.6%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중국의 대북 지원 물자를 포함시켜면 중국의 비중은 40~50%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북한에 투자한 중국 기업이 120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우리 기업은 개성에 진출한 15개사에 불과하다.

지난해 10월 후 주석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양국은 '경제기술협조에 관한 협정'에 조인했다. 일부 외신들은 중국이 북한에 20억달러 규모의 장기 원조를 제공하는 대신 북한은 자원개발과 기초시설 분야 건설에 중국기업 참여를 보장하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20억달러 원조 제공설은 확인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중국은 물가가 싸기 때문에 구매력으로 환산하면 그들이 지원하는 1억달러는 우리가 지원하는 1억달러에 비해 4~5배의 힘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지난 2일 MBC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북한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에 큰 우려를 표시했다.

북한에 대한 각종 지원에 대해 남한에서는 '퍼주기'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북한을 거의 먹여살리다시피 하고 있는 중국은 이를 과시하기는 커녕 지원 액수조차 밝힌 적이 없다. 이것이 한국과 중국의 차이다.

(오마이뉴스 / 김태경 기자 2006-1-19)  

'北김정철 승계' 中이 승낙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10~18일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 주석 등 중국 지도자들과 후계자 문제를 집중 논의했으며 중국 지도부가 차남 김정철(25)의 승계를 수락했다고 중국과 북한 사정에 밝은 뉴욕의 한 외교 소식통이 24일 밝혔다.

이 소식통은 “김 위원장은 방중 기간 중국 최고위 지도자인 정치국 상무위원 9명을 모두 만나 회담을 갖거나 함께 동행했다“며 “중국측은 김 위원장이 차남을 후계자로 선택한 것을 받아들였고 때가 되면 순조로운 정권 인계에 필수적인 여러 여건에 대해서도 의견을 전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가장 걱정하는 문제는 자신의 뒤를 이어 현 체제를 유지해나갈 수 있는 후계자 문제”라며 “북한의 경제 개혁과 중국의 대북투자, 핵 문제 해결, 위조지폐 문제 등 중국 방문시 논의된 모든 이슈는 결국 김 위원장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이 소식통은 또 “중국 지도자들은 북한의 현 체제가 안전하고 튼튼하게 유지되는 것이 중국과 지역 안보에 가장 바람직하다는 입장과 함께 이런 맥락에서 차남을 후계자로 양성하는 것에 양해했다”고 설명했다.

이 소식통은 특히 “김일성 전 주석도 1980년 김정일을 극비리에 중국으로 보내 7개월간 체류토록 하고 김정일이 세대 차이가 있는 중국 지도급 인사들을 ‘삼촌’, ‘이모’로 부르며 친분 관계를 갖도록 해 원만한 후계 승계가 이뤄지게 했다”며 “이번 방중 결과는 차남의 후계 승계 문제에 가장 중대한 첫 관문을 통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북한 보위부 해외 공작원 출신으로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한 탈북자는 “북한 고위층 사회에서는 이미 정철이 후계자로 선택됐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며 “그는 김정남(35ㆍ 김정일의 장남)과는 달리 성격이 매우 날카롭고 예리해 고위층 사회에서는 ‘독종’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 신용일 기자 2006-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