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양극화 반드시 해결..재원 절대 부족"

사회적 일자리 13만개 공급..교육.의료 시장 개방 용의

"각계 상생협력 결단 필요"..비정규직 노사결단 촉구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8일 "경제 전체를 보면 잘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양극화라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서 "양극화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밤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전국에 TV로 생중계된 '책임있는 자세로 미래를 대비합시다'라는 제목의 신년연설을 통해 양극화 해결의지를 이같이 천명하고, "양극화 해결의 핵심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중소기업을 활성화해야 하고, 문화.관광.레저와 같은 서비스 산업도 다양하게 육성하고 고급화해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정부는 올해 사회적 일자리를 지난해의 두배 가까운 13만개를 공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사회적 서비스 일자리 창출과 관련, "그동안 이 분야를 일시적인 실업대책 수준에서 공공근로 형태로 운영해왔지만, 이제는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정책으로 바꿔나가야 하며, 공공서비스 분야 종사자가 선진국의 60% 수준에 불과한 만큼 '작은 정부'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이 분야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며 강력한 고용창출 드라이브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필요하다면 고급 일자리의 대량창출이 기대되는 대학교육과 의료 서비스 시장을 과감히 개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관련산업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양극화 해결을 위한 일자리 대책, 사회안전망 구축, 미래대책을 제대로 해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재원이 필요하며, 2030년까지 장기재정계획을 세워보면 아무리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출구조를 바꾸더라도 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노 대통령은 "정부는 이미 톱다운 예산을 도입해 예산절약과 구조조정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고, 탈세를 막기 위해 거래 투명성을 높여가고 있으나 이러한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면서 국가 재정, 조세 정책의 근본적 대책 마련 필요성을 제기했으나, 한나라당 등의 감세주장에는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양극화를 비롯, 우리가 부닥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미래의 도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져야 한다"면서 "책임있게 생각하고 책임있게 행동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며, 정부도 더욱 책임있게 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제 우리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각계와 지도층들이 결단을 해야 할 때이며, 각자의 목소리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대화하고 타협하고 서로 양보하는 새로운 사회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면서 "결국 상생협력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노 대통령은 "국민연금 문제가 바로 대표적 사례"라며 "연금법 개정안이 국회에 간지 2년이 되었지만 해결이 되지 않고 있고, 이대로 가면 안된다는 것은 분명한데도 모두가 남의 일처럼 내버려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비정규직 문제에 언급,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기업 노동조합의 양보와 결단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경제계도 때로는 과감하게 양보해서 노사간 대타협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사학법 개정문제에 대해서도 "사학법 개정도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높여가기 위한 것"이라며 "재산권을 박탈하거나 교육을 간섭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주장과 비판의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대안없는 주장과 비판 때문에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를 그르칠뻔 한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고, 아직도 해결이 지체되고 있는 일도 적지 않다. 이미 해결된 문제들도 엄청난 시간과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고 `대안있는 비판'을 주문했다.

노 대통령은 과거 카드사태 대응, 부동산 대책, 쌀시장 개방 등에 대한 일부 정치권과 언론 등 사회지도층의 무책임한 자세를 지적한뒤 "저를 포함한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을 말하는 것이며, 문제는 이런 일들이 지난 일들만은 아니라는 것이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은 미루지 않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책임있게 해나가겠다"며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 미국과도 자유무역협정을 맺어야 하며, 조율이 되는대로 협상을 시작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 대책과 관련, 노 대통령은 "2030년을 내다보는 종합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아이키울 걱정이 없고, 평생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고, 건강과 노후가 보장되는 사회로 가기 위한 전략과 이를 뒷받침하는 재정계획을 마련해서 지금부터 준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참여정부의 정책이 분배위주라는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었고, 심지어 '좌파정부'라는 말까지 나왔으나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좌파정부 논란은 결코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연합뉴스 / 성기홍 기자 2006-1-18) 

[盧대통령 신년연설] “미래대책 돈 필요” 세금인상 시사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8일 신년연설의 대부분을 일자리 창출 등 양극화 해소 방안과 사회안전망 확충 등 복지분야 대책에 할애했다.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 어떤 내용 담았나 = 노 대통령은 경제 전체를 보면 잘 가고 있는 것 같지만 내용을 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소득 계층 간 격차 등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양극화 해소와 사회안전망 확충, 국민연금 개혁과 저출산·고령화 대비 등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인데도 모두가 남의 일처럼 내버려 두고 있다는 것이다.

또 양극화 문제의 해법은 일자리 창출이라고 강조하면서 올해는 지난해의 두 배 가까운 13만 개의 사회적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다. 노 대통령의 말대로 보육 간병 교통 치안 등 공공서비스 분야의 일자리를 늘리려면 막대한 돈이 든다. 사회안전망 확충도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해 노 대통령은 아예 내놓고 정부재정 확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작은 정부’만 주장할 게 아니다. 우리나라 공공서비스 분야 종사자는 선진국의 60%에 불과하다”며 “선진국은 예산의 반 이상을 복지에 쓰고 있지만 우리는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원 조달이 필수적이고, 결국 세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은 정치 경제 사회 지도층을 향해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한 상생 협력의 결단을 촉구했다. 구체적인 대안 마련을 위해 책임 있는 논의를 벌여 나가자는 것이다.

이는 양극화 해소라는 명분을 앞세워 야당 등에 대해 사회적 합의에 적극 동참하라고 압박하겠다는 전략이다. 야당도 ‘양극화 해소’를 반대하기는 어려운 만큼 수세에 몰릴 수 있다.

▽ 정치적 노림수 없나 = 야당에서는 당장 정치적 의도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원내대표는 “노 대통령이 정치를 혼자 하겠다는 발상”이라며 “대통령의 생각과 말이 다 옳은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가르치지 말고 국민에게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측은 “정파적 이해관계로 보지 말아 달라”고 말하지만, 양극화 문제는 사회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수의 서민층에 감성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의제라는 점에서 양극화 이슈 제기는 그 자체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여권이 양극화 이슈를 이탈한 지지층을 결집하는 소재로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여권에 대한 경제 사회적 정책 실패의 책임론을 희석시키는 효과도 있다.

열린우리당 정세균(丁世均) 전 의장이 지난해 말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우파가 집권하면 부자 2%만을 위한 정책을 펼 것”이라며 “그건 역사의 후퇴며 재앙이다. 우리가 10년 더 집권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노 대통령이 공공 서비스 일자리 창출을 이유로 세금 인상을 강하게 시사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증세가 현실화되면 기업과 부자들이 반발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정 전 의장의 말에서 보듯 이 경우 여권은 ‘기득권층’, ‘소수 부자’가 양극화 해소를 반대한다고 몰아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부자 때리기’는 정치적 전선(戰線)을 뚜렷이 재편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기대이기도 하다.

김형준(金亨俊)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두꺼워지는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은 양극화의 피해 당사자이면서도 강한 개혁 성향을 보이고 있다”며 “양극화 문제는 이들의 잠재적 욕구를 끌어낼 수 있는 정치적 승부수의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정연욱 기자

“교육-의료 시장개방 필요… 골프 사치라고 생각 안해”

노무현 대통령은 18일 신년연설에서 “교육·의료분야의 시장 개방이 필요하고 골프에 대한 국민 인식도 변해야 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노 대통령은 “대학과 의료서비스는 고급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는 분야이므로 산업적 측면을 외면할 수 없다”며 “일자리를 위해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개방하고 서로 경쟁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노 대통령은 “산업으로 발전시켜 국민이 해외에 나가 돈을 쓰게 할 것이 아니라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돈을 쓰게 만들어야 한다”며 시장 개방의 목적으로 일자리 창출 외에도 산업 경쟁력 강화를 들었다.

그는 또 “문화·관광·레저와 같은 서비스 산업도 다양하게 육성하고 고급화해야 한다”며 “골프와 같은 고급 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사치라고 비난할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장강명 기자

(동아일보 2006-1-19) 

[노 대통령 신년연설 정치권 반응] ″말의 성찬″ ″안이한 발상″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연설에 대해 여야 반응은 판이하게 엇갈렸다.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은 “말의 성찬이다. 절반만 실천돼도 지상천국이 될 것 같다”고 평가절하했다. 이 대변인은 “국민은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해 극도로 불신하고 있다”면서 “연설에서 가장 결여된 것은 신뢰”라고 꼬집었다.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사학법에 대해 언급이 없자 실망하는 분위기도 역력했다. 이 대변인은 “야당을 거리로 나서게 한 사학법 날치기 처리에 대한 사과와 재개정 방침이 빠진 것만 봐도 국민화합이나 상생의 정치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말했다.

김재원 기획위원장도 “양극화 문제 등을 우리가 집권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정치게임에 이용하면 이 정권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을 것”이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민노당 박용진 대변인은 “사회 양극화의 쌍끌이 원인인 시장 우선 경제정책과 신자유주의적 국가플랜을 힘차게 가동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겠다고 하는 것은 병의 원인 치료 없이 종기의 고름만 닦아내겠다는 안이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대통령이 인기가 없어 시청률이 낮을까 걱정했는데 한국 축구팀 경기 직전에 생방송으로 진행해 시간을 잘 배치한 듯하다”고 꼬집었다.

반면 열린우리당 전병헌 대변인은 “우리나라가 직면한 오늘의 문제와 내일의 과제에 대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고민과 지향을 분명하게 보여준 연설”이라면서 “여야는 물론 국민과 함께 공동으로 합심해 노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환영했다.

(국민일보 / 박재찬 안의근 기자 2006-1-19)

[노무현 대통령 신년회견] 재계·노동계 반응

재계는 노무현 대통령이 제시한 올해 정책방향에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분배보다 성장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당부했다.

특히 양극화 해소를 위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제안이 무엇보다 경제성장을 기조로 삼아 구체적인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재계는 또 정부가 고령화사회를 맞아 경제성장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부동산시장 불안이나 사교육비 부담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한 것에 대해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전경련은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은 경제 성장의 활력을 높이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로 받아들여진다”며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기업규제 완화, 비정규직 보호법안 등을 통한 노동시장 개선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대해 근본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의 전환 없이 미봉책만을 제시했다고 폄하했다.

이수봉 민주노총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연설은 원인과 대책이 안이하다. 마치 암환자에게 감기약을 처방하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 대변인은 양극화 문제는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이후 시작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이 정권 들어 더욱 강화되면서 나타났다고 지적하고 이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 없이 미봉책만으로는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특히 대기업 노조에 양극화의 책임을 묻는 것은 진부한 논리로 노동자를 이간질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또 정부가 추진하는 사회적 일자리 정책 등은 일시적인 의미는 있지만 전체적인 고용유연화 정책 기조 속에서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고통을 항구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경제 / 김호정 김현수기 기자 2006-1-18)

양극화대책 결국은 '돈'…재원마련 고심

노대통령 신년연설에 담긴 속내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예상대로 '양극화 해소'라는 경제정책 목표를 크게 강조했다. 하지만 앞으로 대책에 들어갈 막대한 재원 마련과 관련해서는 상당히 고심하고 있음을 곳곳에서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미래 대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면서도 "아무리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출구조를 바꾸더라도 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고 털어놨다.

양극화 문제 해결의 핵심이 일자리 창출이라고 강조했지만 정작 연설을 통해 국민 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세금을 좀 더 거둘 수밖에 없는 정부의 고충을 헤아려 달라는 얘기다.

'돈'을 어떻게 충당해 낼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방안만 거론하지 않았을 뿐 큰 방향은 사실상 제시한 셈이다.

◆ 양극화 대책, 결국은 '돈'=정부도 발표했듯이 당장 앞으로 5년 동안 저출산ㆍ 고령화 대책으로만 30조5000억원이 들어갈 정도로 양극화 해법은 막대한 국민의 세금없이는 불가능하다. 국민들이 양극화 해소에 따른 혜택을 많이 받으려면 그만큼 세금부담도 저절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은 국민들의 복지부문, 즉 양극화 해소를 위해 지출하는 자금규모 자체가 지나치게 적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재정규모는 GDP대비 27% 수준으로 미국(36% ) 일본(37%) 영국(44%) 스웨덴(57%)과 비교하면 턱없이 작다"며 "이들 국가는 복지 예산비율도 재정의 절반 이상을 쓰고 있는데 우리는 4분의 1밖에 안된다"고 설명했다.

양극화 문제 해소와 성장동력 확충을 위해 조세부담률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음을 돌려서 말했다고도 볼 수 있다. '더 많이 거둬 더 많이 쓰는' 조세개혁론을 양극화 대책의 주요 방법론으로 제시한 셈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이 같은 조세개혁은 직접 거론하진 않았다. 대신 양극화문제의 핵심해법은 '일자리 만들기'라고 명시했다.

문제는 일자리 창출이 근본적인 해법은 될 수 있지만 유일한 해법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방식만으로는 양극화문제를 풀 수 없기 때문에 조세개혁 카드를 언제든지 또다시 들고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도 인정했듯이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 문제를 풀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령화ㆍ저출산 등으로 인해 세금을 낼 사람들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할 대상자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기 때문에 기존의 조세체계를 유지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 조세부담률 상승은 불가피=노 대통령은 탈세방지정책과 함께 예산절약, 구조조정 등을 통해 정부가 아껴쓰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금을 좀 더 거둘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사실 다음달 발표를 앞둔 '중장기 세제개편안'에서도 이 같은 정부 구상을 엿볼 수 있다.

정부는 앞으로 세율 인상을 당분간 피하면서 세원을 최대한 넓힐 방침이다. 이를 위해 각종 비과세 감면조항을 축소하고, 현재 근로자의 절반 밖에 세금을 내지 않는 현상을 고쳐 납세자 비율을 50%에서 70%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다. 또한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시행하던 부가세 간이과세제도도 축소하거나 폐지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세율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조세부담은 저절로 높아지게 된다.

문제는 국민들의 동의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세부담이 크게 늘어날 고소득층은 물론 수혜대상이 될 수 있는 저소득층도 종전에는 세금을 걷지 않다가 왜 걷느냐는 식으로 반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일경제 / 송성훈 기자 2006-1-19)

(전문) 노무현 대통령 신년연설문

다음은 청와대가 미리 배포한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 특별연설문 전문이다.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지난해에도 어려움이 많으셨지요? 지난 3년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 기간 전체가 제 임기 중이라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 반가운 소식도 있습니다.

우리 경제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수출이 3년 연속 두 자리 수로 증가하고, 지난해에도 235억 달러 흑자를 냈습니다. 3년간 679억 달러 흑자를 실현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입니다.

더 반가운 것은 내수가 살아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1/4분기 1.4%로 출발해서 2/4분기 2.8%, 3/4분기 4.0%, 4/4분기에 그 이상으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수가 살아나면 서민 여러분의 체감경기도 좋아질 것입니다.

소비의 발목을 잡고 있던 신용불량자 문제도 이제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2003년 3월, 295만명에서 2004년 4월, 382만명까지 늘어났다가 지금은 297만명 수준으로 다시 줄어들었습니다.

이 모두가 국민 여러분이 어려움을 참고 열심히 노력해주신 덕분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앞으로 5년 후, 10년 후는 어떻게 될까, 중국에게 추월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도 손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 하기 나름입니다.

정부도 대비하고 있습니다. 이미 2003년 8월에 차세대 10대 성장동력을 선정해서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부품소재산업, 전통산업의 IT화, 그리고 금융과 물류, 서비스산업도 착실하게 키워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경쟁력입니다. 핵심전략은 연구개발, 기술혁신, 그리고 인재양성입니다. 정부는 혁신주도형 경제로 확고하게 방향을 잡고 과학기술 혁신정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연구개발 예산을 전체 재정증가율의 두 배 수준으로 늘려가고 있습니다. 연구개발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과학기술혁신체계도 완전히 새롭게 정비했습니다. 연구인력 처우개선, 연구성과에 대한 평가체계 등은 계속 보완해가고 있습니다.

이 속도로 가면 머지않아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국제평가기관인 IMD 평가에서 이미 과학경쟁력은 15위, 기술경쟁력은 2위까지 올라왔습니다.

대학교육이 기업의 수요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불만도 있고, 아직도 노사관계가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우려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학도 달라지고 있고, 노사문제도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

걱정이 있습니다. 경제 전체를 보면 잘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양극화 문제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소득 계층간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의 이익률은 대기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월급은 대기업의 60%정도에 머물고 있고, 비정규직 임금도 정규직의 60%수준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더구나 이 격차는 90년대부터 점점 더 크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비정규직 비율이 급속하게 증가했고, 영세자영업자의 형편도 나빠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일자리도 양극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고소득자와 저소득자는 많이 늘어났고, 중간소득 계층은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결국 소비가 위축되고 그에 따라 내수시장이 줄어들어 우리 경제가 장기적으로 저성장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습니다.

양극화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양극화는 세계화, 정보화 시대의 일반적 현상입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경제위기입니다.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와 5분위배율이 IMF 위기 때 결정적으로 악화되었습니다.

IMF경제위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그리고 자영업으로 밀려났습니다. 지난 3년간 국민 여러분이 겪었던 불황의 고통도 IMF위기의 후유증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후유증까지도 거의 극복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시 재발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동안 정부는 우리 경제를 원칙에 따라 안정적으로 운영해왔고, 위기의 징후를 사전에 발견해서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습니다.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은 일자리입니다.

중소기업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수출의 효과가 내수로 확산되고 일자리가 늘어납니다.

정부는 2004년 7월부터 중소기업 정책을 근본적으로 혁신해가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의 실태를 철저히 조사·분석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해서, 구태의연한 지원방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벤처생태계를 조성하는 시장친화적인 방식으로 바꿔가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지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계속하면 이번에는 반드시 달라질 것입니다.

대기업들도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에 나서고 있습니다. 기술지원, 인력지원, 자금지원에 모범적인 협력사례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스스로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혁신형 중소기업이 늘어나고 벤처기업도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과감하게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서비스산업도 중요합니다. 서비스산업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고학력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비스산업 중에서도 고급서비스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학진학률이 80%를 넘어섰습니다. 고급인력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금융, 물류, 법률, 회계, R&D, 컨설팅과 같은 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야 합니다. 일부 회의적인 시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금융중심, 물류중심, 전문대학원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교육과 의료서비스는 국민을 위한 보편적 서비스에 정책의 중심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학교육과 의료서비스는 고급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는 분야이므로, 산업적 측면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일자리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개방하고 서로 경쟁하게 해야 합니다.

선진국들은 질 높은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전략적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대학교육과 의료서비스를 산업으로 발전시켜서 국민들이 해외에 나가서 돈을 쓰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돈을 쓰게 만들어야 합니다. 다만 그렇게 하더라도 정부는 국민에 대한 보편적 서비스가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확실히 할 것입니다.

문화·관광·레저와 같은 서비스산업도 다양하게 육성하고 고급화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관광레저형 기업도시, 서남해안 개발사업, 부산영상도시, 광주문화중심도시, 농촌관광 활성화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서비스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골프와 같은 고급서비스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인식도 좀 달라져야 합니다. 이미 소비무대가 세계화되었습니다.

지난해 우리 국민 다섯명 중 한명이 해외를 다녀왔습니다. 우리나라 가계 소비 100만원 중에서 4만 5천원을 해외에서 쓰고 있습니다. 그중 일부라도 국내로 돌리게 하고, 또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돈을 쓰게 해줘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분야는 또 있습니다. 보육, 간병, 교통, 치안, 식품안전, 재해예방, 환경관리와 같은 사회적 서비스 일자리입니다.

정부는 그동안 사회적 일자리를 통해 이 분야 일자리를 늘려왔습니다. 올해는 지난해의 두배 가까운 13만개를 공급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그동안에는 이 분야를 일시적인 실업대책 수준에서 공공근로 형태로 운영해왔습니다만, 이제는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 정책으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공공서비스 분야 종사자는 선진국의 60% 수준에 불과합니다. ‘작은정부’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이 분야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대국민 서비스의 품질과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나가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

그동안 정부는 비정규직을 줄이고,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를 좁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비정규직 보호 법안을 국회에 내놓고 있고, 임금체불, 불법파견에 대한 근로감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특수직 근로종사자를 위한 종합적인 보호대책도 세우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자금과 경영기술 지원 등 영세자영업자 대책도 이미 마련해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고용지원서비스는 일자리 대책의 핵심 인프라입니다. 정부는 고용지원서비스제도를 일자리 불안을 해소해가는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3년간 6조원을 투입해서 직업능력개발과 직업알선이 결합된 튼튼한 고용안정망을 구축해 나갈 것입니다. 올해 그 확실한 토대를 놓겠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과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시장이 달라져야 합니다.

기업이 정규직 고용을 기피하고 비정규직 고용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장 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기업의 욕구와, 경영여건이 나빠졌을 때 해고가 어렵다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법과 제도로만 보면 우리나라 노동의 유연성은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그러나 대기업 노조는 단체협약상 높은 고용보장을 받고 있어서 일단 고용하면 실제로는 해고가 어렵고, 이것이 시장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교섭력이 강한 소수의 노동자들은 두터운 고용보호를 받고 있는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욱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기업 노동조합의 양보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경제계도 때로는 과감하게 양보해서 노사간 대타협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기업들도 노사관계에 대한 태도와 경영전략을 바꾸어야 합니다. 잘 훈련되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인적자원이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인식을 갖고, 정규직을 늘리고 교육훈련을 강화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

일자리만으로 양극화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할 능력이 없거나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분들은 사회안전망으로 보호해야 합니다.

그동안 재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사회안전망을 최대한 확충해 왔습니다. 97년에 비해 사회보장예산은 세 배 이상 늘었습니다.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도 40% 이상 확대됐습니다.

올해에도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를 12만명 늘리고, 갑자기 위기에 몰린 분들을 대상으로 긴급복지지원제도도 시행할 예정입니다.

특히 가족들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치매·중풍노인과 중증장애인들은 국가가 책임지고 돌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요양시설 확충과 노인수발보험제도, 그리고 장애수당 확대 등을 통해 2009년까지 확실히 해결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서민생활의 핵심은 부동산과 사교육비 문제입니다.

부동산 투기는 반드시 잡겠습니다. 8.31 대책의 후속 입법이 완료되었습니다. 앞으로 투기는 발붙이지 못할 것입니다. 집값을 안정시키고, 서민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공급도 확실히 늘리겠습니다.

학생들은 아직도 입시지옥에 시달리고 있고, 서민들은 과중한 사교육비로 허리를 펼 수 없습니다. 2004년만 해도 8조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 문제는 과열경쟁과 왜곡된 경쟁구조 때문입니다. 대학입시 하나로 인생의 성패가 결정되는 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걸고 경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도 점차 해결되고 있습니다. 대학교육을 특성화하고 입시방법도 다양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공교육은 정상화될 것입니다.

이미 중등교육 현장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정부도 ‘방과 후 학교’ 등을 통해 사교육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 갈 것입니다.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비 지원도 강화해서 가정형편 때문에 교육기회를 잃고 빈곤이 대물림되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나가면 적어도 지금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입시지옥에서 해방되고, 우리 부모님들도 10년 내에 사교육비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우리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새로운 도전입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오늘의 과제입니다.

정부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이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대책에 착수했습니다. 올해부터 5년간 총 19조원을 투자하는 저출산 종합대책을 마련했습니다. 고령화문제는 국가가 최소한의 효도를 책임져야 한다는 자세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노인들이 건강하고 품위있게 살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노인일자리 창출과 고령친화산업 발전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나아가 2030년을 내다보는 종합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아이 키울 걱정이 없고, 평생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고, 건강과 노후가 보장되는 사회로 가기 위한 전략과, 이를 뒷받침하는 재정계획을 마련해서 지금부터 준비해나갈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지금까지 여러 문제들에 대해 나름대로 정부정책과 대안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양극화를 비롯해서 우리가 부닥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미래의 도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져야 합니다. 책임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책임있게 생각하고 책임있게 행동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임있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비판과 문제 제기도 사리에 맞는 ‘대안 있는 비판’이 되어야 하고, 이를 책임있게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나의 주장과 이익만을 관철하려 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합의를 이루어 낼 줄 아는 상생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주장과 비판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참여정부에서도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프리덤하우스’는 한국의 정치적 자유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했고, ‘국경 없는 기자’회는 아시아 국가들의 언론자유 평가에서 우리나라를 첫 번째로 꼽았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대안 없는 주장과 비판 때문에 반드시 해결되어야 될 문제를 그르칠 뻔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고, 아직 해결이 지체되고 있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이미 해결된 문제들도 엄청난 시간과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참여정부 초기, 카드사태로 금융시스템이 붕괴될 상황에 처했을 때, 금융기관들의 책임이 없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금융기관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뜻 나서지 않았습니다. 언론과 전문가들도 시장에 맡길 일이지,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라는 원론적 주장만 펼쳤을 뿐,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만일 정부가 나서지 않고 90조원에 이르는 카드채가 지급불능의 사태에 빠졌다면 우리 경제가 지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지난 3년간 경제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더 힘들었던 것은 끊임없는 위기설과 파탄론이었습니다. 경제는 심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함께 대안을 제시하고 힘을 모아야 할 우리 사회의 지도층까지 비관적 전망을 쏟아냈고, 2004년 경제가 한 고비를 넘긴 다음에도 위기론을 들고 나와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부동산 문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해 8.31 대책을 내놓았을 때, 일부 정치권이나 일부 언론의 태도를 보면 입으로는 찬성하면서도 실제로는 마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쌀시장과 관련해서도, 94년 당시 개방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지만, 우리 정치권은 아무런 준비 없이 개방 반대만 외치다가 결국은 문을 열고 말았습니다. 변화하는 현실을 외면했던 것입니다. 농민들은 스스로 벼랑 끝에 선 처지라서 다른 선택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하여 우리 정치권이 보여준 태도는 무책임한 것이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이후 10년입니다. 철저히 대비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10년 후에 다가올 제2차 개방에 대해서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번에 또 다시 엄청난 홍역을 치렀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어렵게 협상해서 다시 유예기간을 연장했지만, 정치권은 본질이 아닌 문제를 가지고 국정조사로 비준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대문을 막고 쪽문만 여는 것인데도, 여론은 마치 이번 협상과 비준으로 쌀 시장이 새롭게 개방되는 것처럼 왜곡되었습니다.

국민 여러분, 몇 가지 사례들을 말씀드렸습니다만, 결코 저는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이런 일들이 지난 일들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 문제가 바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연금법 개정안이 국회에 간 지 2년이 되었지만 해결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한 데도 모두가 남의 일처럼 내버려두고 있습니다.

또 앞에서 말씀드린 일자리 대책, 사회안전망 구축, 그리고 미래 대책을 제대로 해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재원이 필요합니다. 2030년까지 장기재정계획을 세워보면 아무리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출구조를 바꾸더라도 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미래를 위해서 해결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면, 어디선가 이 재원을 조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감세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론조사를 해보아도 세금을 올리자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껴 쓰고, 다른 예산을 깎아서 쓰라고 합니다. 정부는 이미 톱다운 예산을 도입해서 예산절약과 구조조정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탈세를 막기 위해 거래의 투명성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그동안 참여정부의 정책이 분배위주라는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었고, 심지어 ‘좌파정부’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재정규모는 GDP 대비 27% 수준입니다. 미국 36%, 일본 37%, 영국 44%, 스웨덴 57%인 데 비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입니다. 복지예산의 비율은 더 적습니다. 앞의 나라들이 중앙정부 재정의 절반이상을 복지에 쓰고 있는데 우리는 1/4밖에 되지 않습니다. 정부정책에 의한 소득격차 개선효과도 매우 낮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좌파정부 논란은 결코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복지과잉으로 경제성장에 지장이 있을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처럼 이해관계에 따라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이해관계가 다르고 정책이 다르더라도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정치권과 경제계, 언론과 학계도 책임있는 자세로 대안을 마련하는 데 지혜를 모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결국 상생협력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우리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과거 70~80년대에는 부당한 독재에 맞서 싸우는 것이 민주주의의 과제였습니다. 87년 이후에는 권력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높이는 것이 과제였으나, 이제 이런 문제들은 대부분 해결되었습니다. 이제는 대화와 타협, 그리고 상생의 민주주의로 우리 민주주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할 시점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수준은 이미 앞서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자원봉사자 수가 800만명을 넘어섰고, 기부문화도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노사 합의로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정년을 연장하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각계와 지도층들이 결단을 해야 할 때입니다. 각자의 목소리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대화하고 타협하고 서로 양보하는 새로운 사회문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특히 교섭력이 취약한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우리 경제계가 먼저 한 발 양보해서 대화의 물꼬를 터줘야 합니다. 이러한 결단이 노·사·정 대화로, 그리고 사회적 대타협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새롭게 사고합시다. 책임있게 행동합시다. 대화와 타협으로 상생의 문화를 만들어갑시다.

국민 여러분,

정부도 더욱 책임있게 해나가겠습니다. 책임있는 정부가 되겠습니다.

무엇보다 원칙을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겠습니다.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노력을 일관성 있게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정경유착의 고리가 끊어지고 선거문화도 깨끗해졌습니다. 올해 지방선거만 잘 치르면 깨끗한 선거문화는 확고하게 정착될 것입니다. 당내 선거는 민주주의의 기초입니다. 어떤 선거보다 투명하고 공정해야 합니다.

권력기관도 더 이상 정권을 위한 기관이 아닙니다. 이제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떤 기관도 과거처럼 특별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경제에 있어서도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무리한 경기부양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힘겹게 버티며 원칙은 지켰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의 경제입니다.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개혁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학법 개정’도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높여가기 위한 것입니다. 재산권을 박탈하거나 교육을 간섭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언론과의 관계도 원칙대로 해왔습니다. 그동안 언론과의 갈등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리 언론문화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정권과 언론과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유착관계는 없습니다. 이제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각자 자기의 책임을 다하면서 국가를 위해서, 또 역사를 위해서 함께 협력하는 창조적 협력관계를 만들어 갈 것을 제안합니다.

마치 대청소를 할 때처럼 어수선하고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이 시기만 잘 넘기면 우리 사회의 투명성이 몰라보게 높아질 것입니다.

미래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은 미루지 않겠습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책임있게 해나가겠습니다.

19년을 미뤄왔던 방폐장 문제가 마침내 해결됐습니다. 개방문제도 거역할 수 없는 대세입니다. 적극적으로 대처해서 우리 경제를 선진화하는 기회로 삼아나가야 합니다.

그동안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해 왔습니다.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 미국과도 자유무역협정을 맺어야 합니다. 조율이 되는대로 협상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국가제도의 기반을 튼튼하게 정비하겠습니다. 통계, 기록관리와 같은 기본적인 행정인프라부터 새롭게 구축해 가고 있습니다. 부동산 보유와 거래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부동산 데이터베이스, 그리고 조세와 연금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기 위해 소득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인프라도 완비해가고 있습니다. 당장 제품 한두 개보다 생산설비 자체를 정비한다는 자세로,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시스템을 선진국 수준으로 갖추어 나갈 것입니다.

행정의 과학화로 정책의 품질을 높여나가겠습니다. 작년 7월부터 정책품질관리제도를 도입해서 입안에서 평가까지 각 단계마다 점검할 사항들을 빠짐없이 챙기고 있습니다. 또한 전략적 감사를 통해 국책사업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점도 하나하나 고쳐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계속 강조해왔으나 아직 성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있는 정책들도 더러 있습니다. 이제 이런 일도 없도록 하겠습니다. 국민과 약속한 정책은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가겠습니다. 중소기업정책, 균형발전정책, 이번에는 확실히 성과가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일하도록 공직문화를 혁신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공무원들도 더 이상 ‘철밥통’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것입니다. 민간기업 수준으로 행정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올해는 신상필벌의 평가시스템과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도입해서 책임있게 일하고 경쟁하는 공직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세계적인 모범사례를 더 많이 만들어서 ‘혁신한국’을 세계 일류의 브랜드로 내놓도록 하겠습니다.

멀리 내다보고 가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자랑하는 CDMA기술도 십수년전에 준비했던 것이고, 오늘 우리가 고생하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도 따지고 보면 10년 전 IMF위기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듯이 제가 하고 있는 일도 성과나 부작용은 대부분 다음 정부 이후에 나타날 것입니다. 임기 안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멀리 내다보고 할 일은 뚜벅뚜벅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새해를 맞아, ‘희망이 있다’, ‘잘 될 것이다’는 말씀만 드리려고 했는데, 다소 부담이 되는 말씀까지 드렸습니다.

그러나 국민여러분, 잘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했던 것도 다 이루어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못해낼 것이 없습니다. 희망과 자신감을 가지고 미래를 대비해 나갑시다. 올해, 그리고 그 이후에도 대한민국 기적의 행진을 계속 이어갑시다.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데일리 / 박기수 기자 2006-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