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외교의 승부수

지난해 후반 중국 정치에선 명확한 변화가 있었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국내외 활동이 급격하게 늘었고, 그것이 크게 선전되고 있다. 내정(內政) 면에서 본다면 지난해부터 '조화사회' '인본(人本)주의'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등장했다. 그것은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시대의 성장 일변도, 상하이(上海) 일변도 정책에 대한 궤도 수정이다. 확대되는 격차와 사회 불만을 개선하고, 균형 잡힌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후 주석 지도부의 활동은 외교 분야에서 특히 활발했다. 지난해 가을 이후만 해도 후 주석은 9월 미국 방문과 미.중 정상회담, 그 전후의 캐나다.멕시코 방문, 10~11월의 북한.베트남 방문, 11월의 영국.독일.스페인 방문과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참가 등 상당히 바빴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도 지난해 10월 상하이협력기구 총리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러시아를 찾았고, 12월에는 프랑스.슬로바키아.체코.포르투갈을 방문한 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담에 참석했다. 그 사이 지난해 10월에는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 11월에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다.

미국에선 이전보다 중국 위협론이 커지고 있다. 국방부를 중심으로 한 안전보장 그룹과, 값싼 중국 제품에 석권 당한 일부 산업계에서 특히 그런 경향이 강하다. 중국은 국제관계에서 다극화를 지향하고 있지만 미국의 패권적인 파워에 저항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한 저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동아시아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유럽연합(EU)과의 관계 강화를 호소했다. 또 미국으로부터 항공기.원자력발전소 등 고가 제품을 대량 구입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나아가 중국 위협론을 불식하기 위해 현 단계의 중국 외교를 '평화적 발전'으로 규정한 공식 보고서를 발표하는 등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대미관계 개선을 중심으로 한 후 주석의 외교는 대만 문제를 둘러싼 권력.정책 장악 능력과 관련돼 있다. 장 전 주석은 대만 문제 해결을 최대 현안으로 내걸고 통일 구상을 서두르는 강경 정책을 펼쳤다. 그로 인해 대만은 물론 세계로부터 반발을 샀고, 중국 위협론의 원인이 됐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해 후반 이후 대만 문제에 대한 언급을 급격하게 줄이면서 오히려 '현상 유지'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것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지난해 봄 대만 야당 인사인 롄잔(連戰) 국민당 주석과 쑹추위(宋楚瑜) 친민당 주석의 잇따른 중국 방문이었다. 그것이 성공함으로써 후 주석 지도부는 일거에 대만 문제에 관한 주도권을 장악했다. 그 후 대만 문제는 중국 외교의 당면 과제에서 빠졌고, 경제.인적 교류를 중심으로 한 장기 전략으로 바뀌었다. 이에 대해선 중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미.중관계의 최대 열쇠였던 대만 문제가 현상 유지를 전제로 마무리되면서 중국은 국제관계에서 자국에 유리한 최고의 환경을 정비할 수 있게 됐다. 남은 외교 현안은 일본과의 관계개선이지만 미국과의 관계가 좋아지면 미.일 동맹이 강화돼도 중국은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후 주석은 올 봄 미국을 다시 방문할 예정이다. 중국은 미국에 대한 정치적 배려에서 후 주석의 방미 이전에 위안화를 소폭 절상할 가능성도 있다. 후 주석 지도부는 외교적 주도권이 강화되면서 내정으로 눈을 돌릴 것이다. 그러면 후 주석 지도부의 진짜 승부가 시작되는 것이다.

고쿠분 료세이 게이오대 동아시아 연구소 소장

정리=오대영 기자

(중앙일보 2006-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