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구 없는 新 빈곤층 ‘청년 백수’,좀도둑으로 내몰린다…생계형 절도 부쩍 늘어

서울 송파경찰서는 지난 9일 고급 승용차만 골라 타이어를 훔친 김모(26)씨 등 20대 3명을 붙잡아 구속했다. 이들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한 명은 대학생이고, 나머지 둘은 말 그대로 청년실업자였다.

이들은 춘천과 서울을 오가며 승용차를 유압기로 들어올려 타이어 4개를 빼낸 뒤 벽돌로 고정하고 달아나는 수법으로 9차례 2000만원 상당의 타이어를 훔쳐 팔았다. 경찰은 “노상에서 남의 차 바퀴를 빼낸 범죄도 처음 겪어보지만, 이들 모두 초범으로 돈 때문에 무모한 절도를 벌이다 쇠고랑을 차게 됐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지난 15일에는 서울 천호동과 공릉동의 빈 사무실에 들어가 고가의 빔 프로젝터 8대와 캠코더 등을 훔친 김모(22)씨 등 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일자리가 없어 놀고 있는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훔치기도, 팔기도 쉬운 사무실 집기를 골랐다고 한다.

이처럼 청년실업자, 신용불량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신빈곤층으로 떠오른 20·30대들이 좀도둑으로 전락하는 사건이 부쩍 늘고 있다. 대학생과 전직 회사원도 끼여있다. 이들은 카오디오, 타이어 등 차량 부품뿐만 아니라 사무실 집기, 공공 시설 등 돈 되는 것이면 닥치는 대로 훔친다. 대부분 ‘생계형 절도’다.

지난 14일 차모(30)씨는 서울 강서구의 한 할인점에서 다른 손님이 버리고 간 영수증을 주운 뒤 영수증에 기재된 것과 같은 제품의 ‘경보용 태그(꼬리표)’를 떼어내고 가지고 나오다 직원에 들켰다. 유통회사를 다니다 해고된 차씨는 환불을 통해 돈을 마련하고자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강원 원주경찰서는 지난 6일 식품회사 창고에 들어가 라면 2박스를 훔친 이모(20)씨를 불구속입건했다. 이씨는 경찰에서 “일자리가 없어 막노동을 했는데, 최근에는 막노동을 할 곳도 없어 배고픔을 이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근 절도사건의 유형은 청년실업과 신빈곤층의 증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경찰을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말 천안 안궁교 알루미늄 난간 절도사건, 의정부의 지하도로 빗물받이 도난 사건 등은 마치 IMF 직후를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양극화가 심한 외국의 슬럼가에서는 청소년들이 환금성이 높은 차량 부품들을 훔치는 범죄가 이미 일반화됐다”며 “우리나라에서도 경제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이 어려운 기술을 요하는 범죄가 아닌 손쉽게 저지를 수 있는 범죄에 쉽게 빠져드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 청년층 범죄 실태와 대책은 무엇인가

신빈곤층에 몰린 20·30대 청년들이 범죄자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청년 범죄는 그 원인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막혀 있다는 데 있다.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청년들을 범죄자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 양극화가 부른 20·30청년 범죄 = 14일 강서경찰서 형사계에는 한 대형 할인점에서 물건을 훔치다 잡혀온 차모(30)씨가 조사를 맡은 형사 앞에서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며 애원했다.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차씨는 그나마 비정규직으로 다니던 유통회사에서 해고됐다. 청년 실업자로 전전하던 차씨는 중소기업에 취직했으나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 결혼은 커녕 하루하루 끼니걱정에 시달리던 차씨는 예전에 근무하던 할인점을 찾아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손님들이 버리고 간 영수증을 주워 같은 제품의 옷을 의류 매장에서 준비해온 '절삭기'로 경보용 꼬리표를 떼낸 뒤 몰래 옷을 입고 나오는 방식으로 7차례 이상 물건을 훔쳤다.

한 대형할인매장 관계자는 "매월 20여건에 달하는 물품 절도사례가 적발되며 주로 생활이 힘든 서민이나 극빈층 주부가 대부분"이라며 "불경기 여파로 의류나 생필품을 훔치는 경우가 줄지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최근 절도사건의 유형은 청년실업과 신빈곤층의 증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경찰을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말 천안 안궁교 알루미늄 난간 절도사건,의정부의 지하도로 빗물받이 도난 사건 등은 마치 IMF 직후를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 원인 및 대책 = 통계청은 지난해 전체 취업자는 월 평균 2285만 6000명으로 전년보다 1.3% 늘었으나 20∼39세의 남성 취업자는 605만 4000명에서 592만명으로 1년새 2.2%인 13만 4000명이 줄었다고 지난 17일 발표했다. 20·30대 남성 취업자수가 600만명선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 1990년 이후 처음이다. 1995년 이 연령대의 남성 취업자는 678만2000명으로 10년새 80만명이나 준 것이다.

경제난에 몰린 청년 실업자는 쉽게 돈을 융통할 수 있는 신용카드에 의존하지만 이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만다. 지난해 우리나라 신용불량자 수는 400만명이 넘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상황에서 청년들은 쉽게 범죄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경찰 관계자는 "젊은층 절도자를 붙잡아 보면 대부분이 신용불량자"라고 귀띔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생계가 어렵고 당장 돈을 마련하기 쉽지 않은 상태에서는 청년들은 우리가 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 같은 물건에도 절도 유혹을 느낀다"며 "특히 자물쇠를 잠가놓지 않는 물건 등 무방비 노출되는 것과 환금성이 좋은 것이 그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청년 실업자는 저소득층을 벗어날 기회조차 많지 않다는 점에서 비행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될 수 있다"며 "복지정책을 강화하는 것 외에 처벌 강화 등은 별반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일보 / 한장희 기자 2006-1-18) 

PC방―만화방이 실업자 ‘탈출구’?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로 근무하던 김모씨(23·무직·전주시 중화산동). 1년 전 일을 그만두고 노숙자 생활을 시작했다. 다른 일을 찾을 의욕이 없던 김씨는 기온이 떨어져 잘 곳이 마땅치 않자 피시방을 찾았다. 김씨는 2∼3일을 머물며 숙식을 해결하다 주인이 계산해 줄 것을 요청하자 돈이 없다며 막무가내로 버티다 마찰이 생겼다. 황당한 주인은 김씨의 부모에게 연락했지만 부모는 이미 포기한 상태고 하루 걸러 한번씩 이런 이야기 듣는 것도 지겹다는 반응. 할 수 없이 경찰에 신고 했지만 피해액수가 적어 훈방조치로 끝났다. 이를 안 김씨는 현재까지도 여러 피시방을 돌아다니며 무전거취 생활을 하고있다.

자발적 젊은 실업자들이 겨울이 되자 피시방, 만화방을 전전하고 있다.

마땅히 할 수 있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는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실업자들이 역이나 터미널 대합실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다 겨울이 되면 난방시설이 설치된 피시방, 만화방으로 모이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실직 이후 재취업이 여의치 않아 배회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간혹 막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겨울철이라 일거리가 많지 않은 데다 일당을 받아도 유흥비로 탕진하는 경우가 대부분.

전북대 앞 K만화방 사장은 “후불로 주기로 해놓고 나갈 때는 배짱으로 버티는 손님이 한 둘이 아니어서 올해부터 선불제로 바꿨다”고 말했다.

전주시 중화산동 L피시방 김모(29) 사장은 “24시간 개방돼있는 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처음에는 착실히 살라고 설득도 해봤지만 상습적으로 영업에 피해를 주니 답답할 뿐이다”고 씁쓸해했다.

한 신경정신의원 원장은 “생활 여건과 성장배경이 달라 알콜중독, 정신병 등 개인차가 있지만 장기 경기 침체로 일자리 구하기가 힘든데다 가까운 사람에게도 소외되는 등 복합적인 생활고로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현상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2006-1-24) 

"취업 안되는데 학원이나 차릴까?"

“취업도 안 된다는데 백수로 살 수는 없고 학원이나 열어볼 생각입니다. 제대로만 되면 금방 큰 돈도 만질 수 있고….”

서울의 명문 사립대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올해 석사학위를 받는 이모(28)씨는 일찌감치 취직을 포기했다. ‘청년실업 100만’이라는 살벌한 시대를 살아야 하는 이씨는 취직에 도움이 되는 별다른 자격증도 없는 데다 기업 측에서 보면 ‘가방끈’만 길어 곱게 보일 리 없는 전공의 학위 소지자이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동네에 보습학원을 차리기로 했다.

[관련기사] 20대 학원강사로 성공한 2인 이야기

해외연수 등으로 늦은 나이에 졸업한 김모(30)씨는 부모님 권유로 학원을 차렸다. 일반 회사에 취직하려 했지만 학원을 운영한 적이 있는 아버지의 적극적인 권유로 대를 이어 학원 운영에 나섰다. 그의 아버지는 “아무리 문제가 많다고 해도 우리나라 교육의 큰 틀이 바뀔 수는 없다”며 “사교육 열풍이 계속되는 한 학원은 일단 ‘먹고살 수단’은 된다”고 강조했다.

극심한 취업난으로 궁지에 몰린 청년층 고학력자들이 너도나도 학원 창업에 나서고 있다. 사교육 열풍 때문에 학원이 대표적인 ‘불황 무풍지대’로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23일 한국교육개발원의 ‘사교육시간, 개인공부시간, 학교수업참여도의 실태 및 주관적 학업성적 향상효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 10명 중 8명은 사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 또 이들은 일주일 평균 11.23시간을 사교육에 할당하고 있었다. 학원 설립규정도 까다롭지 않다. 강의실과 열람실 등 교습 및 학습에 필요한 시설·설비만 갖추면 학원을 열 수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1999년 말 6만1260개였던 학원 수는 2004년 말 6만8612개, 지난해 6월 말 현재 7만685개로 매년 늘고 있다.

그러나 학원 난립으로 학원 교육의 질 저하 등 부작용 또한 작지 않다. 한국학원총연합회 김제완 기획실장은 “지역 보습학원은 바로 개원하거나 강사 몇년 하고 개원한 30대 초반 원장도 많다”며 “이처럼 검증이 안 된 학원과 강사가 남발되다 보니 자연 학부모 불신과 불만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최재성 의원(열린우리당)은 최근 학원 난립과 교육 질 저하를 막기 위해 학원장과 강사의 자격 요건을 신설한 학원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개정안은 학원의 설립자와 그 운영자인 학원장을 구분하고, 학원장을 학교 또는 관련 기관 업무에 3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로 자격요건을 정했다.

(세계일보 / 나기천 기자 2006-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