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데…” 표류하는 역사왜곡 대응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과 영토 문제에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국책 전략 연구기관으로 ‘동북아역사재단’을 설립한다는 정부의 계획이 난항을 겪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동북아역사재단을 외교통상부 산하기관으로 설립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입법을 추진했다. 이 재단은 청와대가 지난해 초 설립한 ‘동북아 평화를 위한 바른 역사 정립기획단’(단장 김병준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을 확대 개편하는 것. 이사장과 이사는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계획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우선 주변국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한 싱크탱크가 정부의 직접적인 영향력 아래 들어가고, 더욱이 외교부 산하 기관이 되는 것에 대해 문제가 제기됐다. 심지어 여당인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외교부 산하 기관이 되면 외교적 부담 때문에 그 역할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결국 이 법안은 국회 외교통상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교육인적자원부를 담당하는 교육위원회로 이관됐다. 이 과정에서 정부 입법을 의원 입법으로 대체 발의하느라 시간이 걸렸고 지난해 12월 6일 교육위에 회부됐지만 사립학교법 문제로 국회 기능이 마비되면서 해를 넘기고 말았다. 이 때문에 동북아역사재단에 투입될 예정이었던 438억 원의 예산도 책정되지 못했다.

게다가 재작년 3월에 설립돼 예산 지원을 받고 있는 ‘고구려연구재단’과의 기능 중복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고구려연구재단 측은 “재단 정관상 한중 문제뿐 아니라 한일 문제까지 연구하도록 돼 있는 마당에 굳이 별도의 연구기관을 설립할 이유가 뭐냐”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예비비로 지원을 받던 고구려연구재단은 올해부터 ‘역사왜곡 대책 지원금’이라는 지정 항목으로 60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았다. 최광식 고구려연구재단 상임이사는 “동북아역사재단이 필요하다면 기존의 고구려연구재단을 확대 재편하는 방법이 자연스러운데 정부에서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구려연구재단은 설립준비위원회가 선정한 이사진에서 이사장을 선정하도록 돼 있는 반면 동북아역사재단은 이사장과 이사를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 입김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많다.

그러나 동북아역사재단 설립을 추진 중인 ‘바른 역사 기획단’ 측은 “고구려연구재단은 법적으로 서울시교육청에 등록된 민간법인에 불과해 연구 기능을 넘어서 정부 전략과 정책까지 생산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별도의 정부 출연재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학계에서는 고구려 문제뿐 아니라 한중일 간 역사 왜곡과 영토 문제를 포괄하는 전략적 싱크탱크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새로운 싱크탱크 설립이 예산 낭비와 ‘또 하나의 어용기관’ 탄생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는 독립성과 자율성, 전문성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강구되어야 한다는 게 많은 학자들의 주문이다.

(동아일보 / 권재현 기자 2006-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