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보니] 역사를 알아야 중국을 이긴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양국간에 분쟁이 늘어나고 있다. 얼마전 김치문제가 터지면서 한·중 무역분쟁으로 발전할 움직임마저 보였다. 그러나 한·중간에 일어난 분쟁 중 가장 큰 것은 역시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로부터 시작된 중국과의 역사해석을 둘러싼 분쟁이다. 우리는 각종 매체를 통해 ‘중국영토 내에서 일어난 과거 역사는 모두 중국 역사’라고 고집하는 중국 주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얼마 전 필자는 베이징시내 한 서점에서 새로 출판된 중국의 방대한 역사서적을 보면서 역사문제를 다시 떠올렸다. 서점에는 총 80여권으로 된 ‘24사’가 진열돼 있었다. ‘24사’가 어떤 책인가. 중국의 역사서를 정사와 잡사로 구분한다면 ‘24사’는 사마천의 ‘사기’에서부터 ‘명사(明史)’에 이르기까지 총 3249권 4000만자 분량의 방대한 역사서를 묶어놓은 책이다. 전설 속의 황제(黃帝)부터 명말까지 5000여 년의 역사를 각 분야에 걸쳐 자세히 기록한 중국 역사서의 정수라 할 수 있다. 현대 중국에 들어와 ‘24사’는 1950년대 후반 중화서국에서 ‘표점 교감본’이 출판되어 전문 연구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일반인이나 외국인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번에 출판된 ‘24사’는 기존에 출판된 것과 달리 고문 그대로 쓴 것이 아니라 현대 중국인이 사용하는 일상언어에 맞게 고쳐 썼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중국의 이런 상황은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상황을 되돌아보게 한다. 중국은 정부 주도하에 역사문제와 관련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국가이익과 관련된 분야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동북공정 프로젝트도 그렇지만 이번에 출판된 ‘24사’ 역시 정부 주도하에 추진된 사업이다.

이제 우리 정부도 앞장서서 역사연구의 기초작업에 투자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사실 우리 고대사의 경우 연구자들이 우리 자료를 가지고 적극 연구하고 싶어도 남겨 놓은 자료가 많지 않으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책은 삼국사기다. 그러나 이 책은 중국 ‘사기’와 비교하면 1000년 이상 늦게 쓰여졌다. 삼국사기 이전에 역사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현재 남아 있지 않으니 우리 역사를 연구할 때에도 중국 자료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많은 연구자들은 역사 연구를 할 때 중국의 고대 한문에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는 중국·일본과 역사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많은 사람이 쉽게 역사자료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연구 성과도 풍부해진다. 올바른 우리의 역사해석과 일반인의 역사 접근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중국 역사문헌을 번역해야 한다. 중국문헌에 나오는 우리 역사관련 자료에 대한 정리와 번역하는 일에는 특히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물론 이런 작업은 몇몇 개인이 단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겉으로 나타난 연구성과만 중시하고, 그것으로 역사 연구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인식도 바꿔야 한다. 문헌의 정리와 번역은 집지을 때 기초공사와 같은 것이다. 이를 게을리하면서 학문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일반인이 역사자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아 한다. ‘24사’를 보면서 한국의 역사연구 현실이 안타깝다.

이민호 역사학박사

(세계일보 20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