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 삼왕조, 전설에서 역사로

하(夏), 상(商), 주(周)란 중국 전설 속의 삼왕조이다. 상은 19대에 국호를 은(殷)이라고 바꾸었기 때문에, 하·은·주라고도 한다. 전설 속의 임금인 요(堯), 순(舜)에 이어지는 이 삼왕조는 기록의 부재로 인하여 반듯하게 역사체계 안으로는 들어서지 못했던 왕조였다. 이런 하상주를 제외하는 경우 중국 역사의 가장 먼 기초가 되는 연대, 즉 기년(紀年)은 사마천에 의해 기원전 841년으로 확정지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단대공정이란 무엇인가? '공정'이란 말은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이다. 단대공정이란 연대가 불확정한 하상주 삼왕조의 연대를 확정짓는 과정(Process) 혹은 작업이란 소리이다. 중국은 200여 명의 인원을 동원한 5년간의 프로젝트를 통해 과거 중국 전설상의 왕조의 연대를 역사 속으로 끌어내었다.

2001년 11월 신화통신사에 발표된 소식을 따르면,

"중국 하나라 시대는 기원전 2070년에 시작되었고, 하나라를 이어 상나라가 들어선 것은 기원전 1600년, 반경(盤庚)이 은(殷)으로 천도한 것은 기원전 1300년, 상나라를 이어 주나라가 등장한 것은 기원전 1046년"(1권 25쪽)

이란 것이다. 중국의 기원을 무려 1200여 년 앞당기고 있는 것이다.

이 책 <하상주 단대공정>에서 이러한 5년의 작업 과정을 기자 출신 작가가 현란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시대를 정확히 구분해내기 위해 새로운 발굴 작업이 이루어져, 수많은 유물들을 발견되고, 탄소 연대 측정이 적용되고, 고대 문헌의 천문학적 현상이 발생한 시기를 역계산하는 등 실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중국의 역사를 기원전 2000년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책은 그 성공에 대한 중국인들의 자축의 책에 가깝다. 공정을 주도한 과학자들은 마치 영웅처럼 그려지고 있으며 이 책은 중국인들에게 중국 문화의 우수성을 깊이 각인시켜 주는데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끈기와 강인한 노력으로 마침내 오랜 학술 현안을 해결한 그들(중국인)의 노고에 치하를 보내는 바이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의 최고(最古) 확정 연대는 언제인가?(2권 366쪽)"라고 역자는 되물으며 "혹자는 기씨 조선이 무너진 기원전 194년이 역사상 확정할 수 있는 최초의 연대라고 말하기도 한다"는 자조 섞인 말을 내뱉는다.

하상주의 고대 왕조를 역사로 이끌어낸 중국인들의 노력의 기록은 찬탄을 보낼 만 하다. 동시에 과도기에 접어든 중국에서 역사에 집착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동북공정을 통해 동북지방의 소수민족의 국가정체성을 드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자국민의 문화적 자부심을 높이기 위해, 전설 속의 왕조들을 현실로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 반만년 역사는 훌륭한 자부심이 되지만, 중국은 그 반만년 역사를 실체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기실 우리 민족의 역사서는 수많은 전란을 통해 유실된 것이 너무 많아 고대사 연구를 위해서는 중국 문헌의 연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중화민족과 우리 민족의 관계는 밀접하다는 점이다. 중국 전설 속의 왕조의 연대가 확정된다면, 그 왕조와의 관계가 기술된 우리 민족의 연대도 확실해질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

안정복의 <동사강목>을 보면, "은(殷) 태사(太師) 기자(箕子)가 동방으로 오니, 주(周)의 천자(天子)가 그대로 그곳에 봉(封)하였다. 기자는 성이 자(子)이고 이름이 서여(胥餘)이며, 은 주(紂 주왕)의 친척이다. 기(箕)에 봉하여지고 자작(子爵)을 받았으므로 '기자'라고 부른다"라고 했으니, 이것이 기원전 1100년경이다.

<동사강목>에는 요(堯)시대의 단군에 대한 기록도 나오지만, 이걸 제외하고, 하나라와 관련된 다음 문구를 읽어보면 흥미롭다.

"하(夏)의 우(禹)가 즉위하여 제후(諸侯)를 도산(塗山)에서 조회(朝會)시킬 적에, 단군이 아들 부루(夫婁)를 보내어 들어가 조회하게 하였고"

이 기록은 하 왕조가 처음으로 국가를 세울 시기에 이미 단군이 주도하는 국가는 성립되어 있었다는 반증이 된다. 그렇다면 기원전 2333년으로 전해지는 고조선의 기원 또한 일부 사학자들의 주장대로 허황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의 앞부분에서 작가는 중국 연구가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며, 중국 자체적인 고대사 연구의 당위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중국사 연대를 정하는 데 만약 늦은 것과 빠른 것 두 가지가 있다면 서양인들은 분명 늦은 것을 선택할 것이다."(1권 37쪽)

중국인들의 바른 역사 세우기에 있어 그 적(敵)은 양이(洋夷)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의 바른 역사 세우기에 있어 그 걸림돌은 무엇일까? 위의 문장을 그대로 바꿔보자. '한국사 연대를 정하는 데 만약 늦은 것과 빠른 것 두 가지가 있다면 일본인들(중국인들도 포함되지 않을까)은 분명 늦은 것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비단 이민족뿐만 아니다. 이런 관점은 식민사관으로 뿌리내린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과 그 맥락이 동일하다. 삼국사기의 기원전 기록을 역사로 볼 수 없다는 일부 사학계의 관점은 양이(洋夷)가 중국사를 보는 관점과 얼마나 큰 차이를 가지는가?

두 권으로 구성된 <하상주 단대공정>을 보면 "역사는 공인된 동화(What is history, but a fable agreed upon)"라는 나폴레옹의 말이 떠오를 만큼 드라마틱한 동시에, 신뢰성에 대한 의문마저 드는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오랫동안 지하에서 숨죽이고 있던 유물이 후대에 발견되어 새로운 사실을 뿜어내는 것은 경이에 가깝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도 광휘를 내뿜는 유물들이 속속들이 발굴되어 역사에 대한 인식이 한걸음 크게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하상주 단대공정 1, 2>
웨난 지음 / 심규호, 유소영 옮김
도서출판 일빛

*동사강목의 내용은 '민족문화추진회(http://www.minchu.or.kr/)'의 고전국역총서를 참조하였습니다.

*단순번역서에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많이 아시는 연구자 분들의 감수를 받았다면, 우리에게 더 유익하고 알찬 책이 되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드는 책입니다.

(오마이뉴스 / 김민성 기자 2005-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