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에 차인 고구려 디딜방아 유물 

구리 아차산서 흙 파이며 드러나

경기도 구리시 아차산 3보루(堡壘·산성보다 조그만 규모로 쌓은 서기 6세기 전반 고구려 특유의 방어 시설) 근처에서 고구려의 디딜방아 시설(추정복원도)인 돌(볼씨)이 22일 확인됐다. 지난달 아차산 3보루에서 사상 첫 고구려 디딜방아 유물(조선일보11월29일자 A2면)이 발굴된 데 이은 것이다.

최종택 고려대 교수(고구려고고학)는 22일 “아차산 팔각정에서 그네터로 오르는 등산로에서 디딜방아 볼씨(방아를 받치는 쌀개를 지지하기 위해 박아 놓은 돌)를 발견했다”며 “주변을 발굴하면 방아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화강암을 둥그렇게 다듬은 볼씨는 길이 25㎝, 홈 길이 5㎝로, 두 볼씨의 간격은 약 25㎝이다. 그러나 1500년을 견뎌 온 이 디딜방아 유물은 정식 발굴로 출토되지 않았다. 숱한 등산객들이 산길을 다닌 결과, 흙이 파이면서 드러났다. 등산객들이 발로 ‘발굴’한 셈이다. 1500년 전 고구려 병사들의 숨결이 담긴 디딜방아는 오늘도 등산객 발길에 짓밟히고 있다.

최 교수가 이 유물을 찾은 것은 이달 초. 지난달 아차산 3보루에서 사상 최초로 고구려 디딜방아를 찾았던 최 교수에게 발굴작업 반장 장동오씨가 “주변 등산로에도 이와 비슷한 돌이 있다”고 알렸다. 현장 인부인 장씨는 지난 9년 동안 최

교수의 고구려 보루 발굴에 참여해 왔으며, 최 교수가 ‘발굴 베테랑’이라고 인정할 정도다.

최 교수는 “디딜방아와 주변 지형 등을 종합할 때 등산로 주변이 고구려 보루였음을 알 수 있다”며 이곳을 ‘아차산 6보루’로 이름 붙였다. 아차산 6보루는 성벽 둘레 70~80m의 조그만 보루로, 주둔 병사는 10여명 정도일 것으로 최 교수는 추정했다.

최 교수는 “등산로 한가운데에 있는 아차산 6보루의 발견은 현재 사용 중인 아차산 등산로가 사실은 크고 작은 고구려 보루들의 연결로이자, 장군들의 마도(馬道)였음을 증명한다”며 “등산객들의 발길에 ‘발굴’될 정도로 아차산 일대 고구려 유적은 훼손·방치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학계는 “문화재청 등 중앙 정부가 나서서 이 지역 고구려 유적을 보존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서울과 경기도에 접한 아차산 일대에는 이번에 발견된 아차산 6보루를 포함, 18개의 고구려 보루가 있다. 고구려 보루는 모두 사적 455호로 지정됐지만, 등산로와 체육시설, 군사시설 등으로 훼손되고 있다.

(조선일보 / 신형준 기자 2005-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