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까… 자선냄비에 3천만원 봉투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른다. 그들은 사랑과 감동을 남긴 채 조용히 사라진다. 말없이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는 ‘얼굴 없는 천사들’ 덕분에 자선냄비에는 사랑이 차곡차곡 쌓여 가고 ‘사랑의 계좌’에 희망이 싹튼다. 구세군 직원들은 16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그랜드백화점 앞에 설치한 자선냄비를 정리하다 깜짝 놀랐다. 흰 봉투 속에 1000만 원짜리 수표 3장이 들어 있었다.》

누가 넣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틀 전 구세군 교회로 전화를 걸어 자선냄비 위치를 물어보던 40대 여성으로 추정된다.

11일 서울 중구 명동 롯데백화점에 설치된 자선냄비에 40대 시각장애인 부부가 다가왔다. 이 부부는 “지금까지 도움만 받고 살아와 조금이라도 베풀고 싶었다”며 성금을 낸 뒤 중학생 아들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떴다.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입구에서는 남루한 차림의 중년 아주머니가 자선냄비에 두툼한 봉투를 넣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봉투에는 현금 10만 원과 함께 금팔찌 2개, 귀고리, 반지가 들어 있었다.

구세군사관학교 장희경(47) 사관은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이웃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천사’들이 있어 역시 살 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1일부터 ‘희망 2006 이웃사랑 캠페인’을 벌이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도 익명의 기부가 잇따르고 있다.

14일 광주 동구 금남로5가의 모금회 광주지회 사무실에 40대 중반의 남자가 찾아와 “소아암 환자를 위해 써 달라”며 6000만 원짜리 수표 1장을 기탁했다. 이 남자는 19일에도 1000만 원어치의 농산물상품권을 맡겼다.

모금회가 만든 ‘사랑의 계좌’에는 최근 이름을 밝히지 않은 50대 회사원이 9800만 원을 보냈다. 그는 지난해에도 3000만 원을 내놓았다.

40대 자영업자는 지난해 2300만 원을 보낸 데 이어 올해는 3000만 원을 보냈다. 전직 변호사라고 밝힌 한 80대 노인은 1000만 원을 기탁했다.

대전 서구 내동에 있는 장애인복지시설 ‘한밀의 집’에는 2대에 걸친 사랑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7년여 동안 이름을 밝히지 않고 매월 100만 원씩 보내오던 노인이 2년 전 세상을 뜨자 아들이 계속 성금을 보냈다.

부산 부산진구 범천1동사무소에는 2003년부터 3년째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 달라는 익명의 전화와 함께 쌀이 배달된다.

지난달 택배를 통해 20kg짜리 쌀 50포대(250만 원 상당)를 받은 동사무소는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만나고 싶다고 했으나 익명의 독지가는 정중히 사양했다.

저소득층 주민이 많은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노송동사무소에도 4년 동안 크리스마스 때마다 100만∼500만 원의 현금과 돼지저금통을 놓고 가는 시민이 있다. 한편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설치된 체감온도탑이 19일 현재 총 591억 원(약 49도)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억 원 많이 모금됐다고 20일 밝혔다. 모금회의 올해 목표액은 1205억 원이다.

정승호 기자, 김광오 기자, 조용휘 기자

(동아일보 2005-12-21) 

[우리이웃/겨울아이들] 부모없는 하늘아래 '기러기 3남매'

大田 11세 소녀가장 은진이네
"밤에 혼자 울어요 동생들 앞에서 울면 안되니까…"

어린 삼남매의 집은 대전의 보문산 자락에 있었다. 구불구불 가파른 산길을 15분 동안 올라가야 했다. 19일 오후 6시. 사방은 어두워져 있었고, 개 짖는 소리만 적막 속에 울렸다. 삐거덕, 낡은 대문을 열었다.

“도시락 왔다!” 방에 있던 아이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큰누나 은진이(11·가명)가 달려 나온다. “어, 아니네….” 잔뜩 실망한 얼굴이다. 하루에 한 번, 이 시간마다 복지관에서 배달되는 도시락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윤수(9·가명)와 막내 윤호(5·가명)는 전기장판 위에서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윤호는 “배고프다”고 칭얼거렸다.

방 안은 냉골이었다. 보일러가 고장났다고 했다. 카드빚에 시달리던 아빠가 지난 5월 집을 나간 후, 한 달 뒤엔 엄마마저 아이들을 떠났다. “큰아버지네 집에서 하룻밤만 자고 있어.” 엄마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삼남매는 인근에 있는 큰아버지 집에서 보름을 기다렸지만, 엄마는 끝내 오지 않았다. 아홉 식구가 어렵게 사는 큰아버지네…. 남매는 결국 부모 없는 텅 빈 집에 돌아와야 했다. 큰아버지랑 사는 할머니(70)가 하루에 2~3번씩 들여다 보지만, 동생들 뒤치다꺼리며 살림이며 모두 은진이 몫이다. 밥도 짓고 빨래도 하고, 대야에 물을 끓여 막내 윤호의 머리를 감기는 것도 척척 해낸다.

“엄마 원망은 안 해요. 그치만 애들이 말 안 들을 때랑 설거지할 건 쌓여 있는데 손이 시려 죽을 것 같을 때는… 엄마가… 미워요.” 말할 때마다 하얗게 입김이 새나왔다. 얼음장 같은 바닥의 냉기(冷氣) 때문에 발이 시려 서있기조차 힘들었다. 은진이는 “울고 싶어도 동생들 앞에선 꾹 참았다가 애들이 자면 밤에 운다”고 했다. “내가 누나니까. 동생들 앞에선 울면 안 되니까.” 이제 겨우 열한 살. 제 어깨에 지워진 짐을, 어렴풋이 아이도 아는 걸까. 말하는 은진이의 표정엔 변화가 거의 없었다.

서류상 남아 있는 아빠의 존재 때문에, 은진이 삼남매에겐 정부

지원금이 한푼도 없다. 동사무소에서 가끔씩 쌀을 주고, 학교 선생님들이 라면 한 박스씩 보내오지만,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턱없이 부족하다. 준비물이나 참고서를 살 돈도, 챙겨줄 어른도 없다. 가난한 큰아버지가 전기세만 간신히 내준다. 요금을 내지 못해 전화는 오래 전에 끊겼다.

“내가 얼렁 죽어야혀. 이꼴 저꼴 안 보고….” 때마침 아이들을 보러 온 할머니가 맥없이 중얼거렸다. “그나마 지금은 내가 와서 둘러볼 수라도 있지만, 나까지 죽으면 저것들을 누가 돌볼 것이여.”

답답한 누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철부지 동생들은 해맑기만 했다. 이불 속에서 낄낄대며 투닥거린다. 윤수는 기자와 눈만 마주치면 씩 웃어댔다. “그래도 쓸고 닦는 건 내가 다 한다 뭐.” 막내 윤호가 화장실이 급할 때마다 데려가는 것도 자기 몫이란다. 집 밖을 나가 한참을 걸어야 하는 화장실. 한밤중에 윤호가 “형, 나 급해” 하고 잠든 윤수를 깨우면, 아이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자다가 화장실 가면 너무 추워서 턱이 덜덜 떨려요. 그래서 돌아올 때는 둘이서 달리기 시합해요.”

“소원이 뭐니?” 삼남매에게 물었다. “음… 나는 슈렉 되고 싶어!” 윤호가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말했다. “바보야, 그게 무슨 소원이야. 나는 친구들 갖고 노는 장난감 자동차, 그거 하나 가져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윤수가 동생을 타박하며 말했다. “난 너무 많은데. 집도 고쳤으면 좋겠고,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지는 집에서 샤워 한 번 해보고 싶고….” 이것저것 꼽아보던 은진이는 “윤수한테 겨울 점퍼가 없는데, 두꺼운 옷 한 벌만 생기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은진이 삼남매에게 따뜻한 겨울을 선물하고 싶은 분들은 월드비전 대전충남지부(042-484-4323~4·www.worldvision.or.kr)로 연락하면 됩니다.

(조선일보 / 허윤희 기자 2005-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