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누리꾼 언론통제 뚫고 뭉친다

‘류허전(劉和珍) 군을 기념하여.’

중국의 대작가이자 사상가인 루쉰(魯迅)이 1926년 시위대를 향한 군벌세력의 무차별 발포로 사망한 자신의 학생을 추모하며 쓴 에세이다. 요즘 이 에세이를 타이틀로 한 토론마당에 중국 누리꾼들이 몰리고 있다.

갑작스레 복고 문학 바람이 분 것일까.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토론마당에선 6일 광둥(廣東) 성 산웨이(汕尾) 시 둥저우(東洲) 마을에서 발생한 무장경찰부대의 시위대를 향한 발포 사건에 대한 ‘우회 토론’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는 것.

둥저우 발포 사건으로 많게는 20명이 사망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중국인 대부분은 그 사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실정. 중국 정부의 철저한 언론 통제 탓이다. 그러나 중국 누리꾼들이 인터넷을 통해 조심스럽게 이 소식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17일 보도했다.

하이난(海南) 성의 유명사이트 Kdnet에 개설된 ‘루쉰 토론마당’을 방문한 누리꾼들은 사건 발생 직후 둥저우 발포 사건에 대한 항의와 애도의 메시지 3만여 개를 남겼다. 하지만 이 메시지들은 며칠 뒤 모두 삭제됐다. 당국의 감시망에 걸린 것.

하지만 메시지 일괄 삭제에도 불구하고 누리꾼들은 당국의 검열시스템을 우회하며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공통메시지는 “우리는 ‘그것’을 안다”는 것. “그들은 내가 모르길 바라지만 나는 알고 있다” “비록 난 모른 척하지만, 난 알고 있다”….

한 누리꾼은 “우리가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은 당국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우리 메시지가 지워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루쉰에 대해 논하는 것은 범죄가 아닌 이상 당국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항의의 장이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사이트로 계속 옮겨가는 ‘게릴라식 시위’도 이뤄지고 있다. 당국의 검열이 소홀한 소규모 사이트에 글을 올리거나 외국 인터넷 서비스에 블로그를 만들고 있는 것. 당국은 ‘불온 사이트’는 발견 즉시 폐쇄하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리꾼들은 “나는 이미 폐쇄된 여러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이 사이트도 곧 봉쇄될까”라며 당국을 조롱하기도 한다.

인터넷 검색사이트 통제도 마찬가지다. 유명 검색사이트에서 ‘둥저우’를 치면 검색결과는 제로(0) 또는 당국의 공식발표를 담은 한두 개가 전부. 하지만 ‘발포’ ‘충돌’ 등 검색어를 덧붙이면 외국 언론이 보도한 상세한 사건 내용을 접할 수 있게 된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한편 둥저우 발포 사건은 미중 간 외교 갈등으로 번질 조짐마저 있다. 헨리 하이드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을 비롯한 미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 8명은 15일 저우원중(周文重) 주미 중국대사에게 서한을 보내 “중국은 톈안먼(天安門) 사태에서 피를 묻혔던 경험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고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17일 보도했다.

(동아일보 / 이철희 기자 2005-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