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온돌은 두만강 유역서 비롯”

한·러 유적발굴 공로 대통령표창 수상차 방한 메드베데프 박사

“지난 2003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함께 발굴조사한 러시아 연해주 남쪽 불로치카 유적에서 거둔 가장 큰 성과는 초기 철기시대 문화인 크로노프카 문화에서 처음 발생한 온돌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확보한 것입니다. 운이 좋아 첫 발굴에서 상자 모양으로 돌을 네 군데 쌓은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온돌을 발견한 것을 시작으로 돌이나 다진 흙으로 터널을 만든 뒤 뚜껑으로 덮은 구들 형태의 온돌 등 기원전 4~3세기에 이미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 온돌을 확인했지요. 기술적인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온돌의 전통이 고구려와 발해까지 계속 이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러시아 과학원 시베리아지부 고고민족학연구소 신석기분과장인 비탈리 예고로비치 메드베데프(64)는 “바이칼호 동쪽인 자바이 칼 지역에서 발견된 훈족의 온돌도 크로노프카 문화의 온돌보다 수백년 늦다”며 “이를 통해, 온돌과 관련된 유적의 중심지가 러시아 연해주 남쪽과 한반도 북쪽, 즉 두만강 양편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크로노프카 문화는 함북 무산군 무산읍 범 의구석(호곡동·虎谷洞) 5·6기 유적과 같은 문화권이다.

지난 2000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와 공동으로 아무르강(헤이룽장·黑龍江) 일대와 연해주 지역의 신석기시대 및 철기시대 유적을 성공적으로 발굴해온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받기 위해 방한한 메드베데프를 지난 10일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만났다. 메드베데프는 탄소연대 측정결과 1만3000년전 토기가 출토돼 세계 최고(最古)의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공인된 아무르강 유역의 가샤 유적을 발굴조사한 저명한 고고학자다.

동해에서 1~2㎞ 떨어진 언덕 위에 자리잡은 불로치카 유적은 신석기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7000~6000년전 보이스만 문화(양양 오산리 문화에 해당)부터 후기의 자이사노프카 문화(빗살무늬토기 문화)를 거쳐 청동기시대 리도프카 문화, 초기 철기시대 얀콥스키 문화, 크로노프카 문화, 서기 4세기까지 존속한 폴체문화까지 오랜 기간동안 다양한 시대와 문화의 사람들이 살았던 유적이다.

메드베데프에 따르면, 이곳에서 한·러 공동발굴조사단이 발굴한 23개의 주거지 가운데 폴체문화 주거지가 80%가 넘는 19개였다.

하바로프스크와 가까운 아무르강 중·하류에 위치한 폴체유적에서 명명된 폴체문화는 기원전 5~4세기 정도에 시작해 아무르 지역과 연해주, 한반도 북부까지 굉장히 넓은 영역을 포괄한 문화 였다. 국가를 형성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일부는 성곽을 만들었으며 최소 수백명이 살았던 유적들이 아무르강·부레야강 동쪽부터 사할린 앞바다까지 광활한 지역에서 확인된다는 것이다.

메드베데프는 지금의 헤이룽장성 지역에 살던 폴체인들이 기원전 2~1세기에 수로를 이용해 대거 남쪽으로 이동해오면서 크로노프카인들과 전투 또는 공존을 통해 온돌 등의 문화를 차용하면서 폴체문화 공동체를 형성했음을 지적했다.

“아무르 지역이나 헤이룽장성 일대엔 온돌이 없으므로 폴체인 들의 온돌은 크로노프카인들의 것을 차용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말갈인들 대다수가 발해인이 되는데 말갈인들에게는 온돌이 없었어요. 연해주에 많은 말갈유적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런데 발해에는 온돌이 있습니다. 이는 발해인들의 문화적 기원이 크로노프카인이나 폴체인들과 연결되며, 고구려와 폴체문화 공동체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지요. 한국에선 민족의 기원 과 관련, 당시 한국인들이 연해주 남부지역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관심이 클 겁니다.” 노보시비르스크 국립대를 졸업하고 1984년 러시아 과학원에서 국가박사학위를 받은 메드베데프는 신석기 유적뿐만 아니라 ‘여진 시대 아무르 유적’ 등의 저서를 통해 중세시대 유적 연구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긴 학자다. 20여 권의 저서와 200여 편의 논문이 있다. 국내에선 보리소프카 발해유적의 발굴조사자로 널리 알려져있다. 우랄산맥 동쪽 시베리아 일대를 관할하는 러시아 과학원 시베리아 지부에서 일하며 연해주와 아무르 일대에서 많은 유 적들을 발견, 학계에 보고했다.

그는 한·러 공동발굴을 통해 20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된 수추섬 신석기시대 유적을 비롯, 6년간 작업의 결과물로 러시아판과 한글판을 모두 합쳐 분량만 4397쪽에 달하는 13권의 보고서를 펴냈다고 밝혔다. “그 해 발굴한 결과를 바로바로 보고서로 발간하는 작업은 한국과 러시아는 물론, 아시아에서 처음 있는 일일 것 이에요. 빨리 발간해 세계 여러나라 학자들이 우리 성과를 이용할 수 있게 한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일보 / 최영창 기자 200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