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反美자주 극단쏠려 한국사회 비이성적 행태"

《한국 사회가 민족통일과 반미 자주에 극단적으로 경도돼 비이성적 행태를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계간 ‘철학과 현실’ 겨울호는 ‘극단적 담론의 시대를 진단한다’는 특집에서 윤평중(尹平重·철학) 한신대 교수, 박효종(朴孝鍾·정치학), 전상인(全相仁·사회학) 서울대 교수 등 3명의 특별기고문을 실었다.》

▽ 민족통일 담론의 극단화 = 중도적 성향의 학자인 윤평중 교수는 ‘극단의 시대’라는 글에서 극단적 냉전반공주의담론에 대한 극단적 대항 담론으로서 ‘민족통일 담론’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교수는 “머리로 작업한 해외수정주의자들과 달리 뜨거운 가슴을 앞세우면서 이뤄진 한국의 민족통일 담론은 자유민주주의와 주체사회주의 사이에 놓인 심연에 대한 냉철한 접근을 억제하고, 통일이 단기간의 과제가 될 수 없음을 간과하며, 통일을 좌우할 한반도 국제지정학조차 경시하는 경향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북 문제만 잘되면 다른 것은 깽판 쳐도 된다’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후보 시절) 발언은 이런 민족통일 담론에의 비성찰적 무임승차”이며 “‘수정주의 사관을 속류화시킨 강정구(姜禎求) 교수의 언설은 학문의 미명 아래 복합적 역사의 행로를 난폭한 잣대로 단순 도식화했다”고 비판했다.

윤 교수는 뉴라이트 운동에 대해서도 “말로만 진보를 참칭한 중도우파 성향의 노무현 정부를 좌편향이라고 비판한다는 점에서 전형적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보수진영에서 제기되는) ‘적화는 됐고 통일만 남았다’는 천박한 선동적 구호는 참여정부의 무책임한 선동정치와 상승작용을 일으켜 실체 없는 이념 논쟁만 낳았다”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또 소설 ‘태백산맥’에 대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비견할 만한 한국 문학의 성취”라고 평하면서도 “그러나 민족통일 담론이라는 극단의 담론의 문학적 형상화이며, 균형감각과 입체성을 훼손하면서 보편사적 성과를 굴절시켰다”고 비판했다.

윤 교수는 또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은 통일 담론의 시류에 감성적으로 호소해 흥행의 대성공을 거뒀다”면서 “이 영화의 민족통일 담론적 경향이 상업적 호소력을 갖는 사태는 정밀한 분석을 요한다”고 주장했다.

▽ 친일 청산 논리의 허실 = 박효종 교수는 ‘편협한 민족주의에 근거한 독립운동사를 비판한다’는 글에서 최근의 친일 잔재 청산 논리가 눈에 보이는 사실만 좇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놓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자들이 밝혀내는 친일 행적이 신문 잡지 등 공개된 자료만 좇고 있다는 점에서 “술 취한 사람이 어두운 곳에서 열쇠를 잃어버리고는 밝은 가로등 밑에서 찾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외재적 잣대로 살생부를 작성하겠다는 오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허한 마음으로 내재적 접근(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 청취)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또 “광복 60주년에 걸맞은 식민 잔재 청산이라면 본질적으로 ‘풍요한 민족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가 돼야 한다”며 “대한민국이 이제까지 이룩해 놓은 위대한 것을 친일파의 기득권, 혹은 친일인사의 왜곡된 행적으로 치부하고 이 모든 것을 일거에 해체하겠다는 ‘해체주의적 목표’를 지향으로 삼아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광복 후 친일파가 득세했고 친미파로 변신해 득세하는 친일파의 지배 구조 아래 살고 있다는 주장은 기괴한 족보학”이라며 “친일파 청산을 철저히 했다고 해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인권탄압국가인 북한 정권의 민족적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 반미 자주화 논리의 허실 = 전상인 교수는 ‘반미 자주화 논리의 허구성’이라는 글에서 “학문의 탈을 쓴 정치가 진보라는 이름의 간판을 걸고 학계 내부에서 어엿한 시민권을 행사하고 다양한 방법의 지적 ‘호객 행위’를 통해 일반 대중 사이로 깊이 파고들어 가고 있다”며 가장 대표적 사례로 반미 자주화 사조를 들었다. 전 교수는 “1980년대를 풍미한 커밍스류 수정주의와 반미 자주화 논리가 학문적 엄밀성도, 시대적 당위성도, 또한 사실적 객관성도 모두 결여한 가상과 허구의 산물로 드러났지만 오류 지적에 대한 시정이 아니라 자기주장에 대한 자아도취가 더욱더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우리 역사학계는 언제부터인가 실제로 있었던 일을 기술하고 분석하는 대신 역사를 특정한 이념적 명분과 이데올로기적 지향에 꿰맞추는 일이 성행하고 있다”며 “이는 반미와 자주, 민족과 민중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는 정치권력과 지식권력 간의 동업자적 관계로 인해 더욱 공고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 / 권재현 기자 2005-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