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으로 다시 쓰는 한민족 통사

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 중심이었던 방송 프로그램 '역사스페셜' 종영 이후, '역사는 사랑'이라는 모토를 걸고 'HD 역사스페셜'의 방송이 재개되었다. '우리 역사를 제대로 보기' 위해 역사의 주요 변곡점에 초점을 맞추어 통사(通史) 형식으로 총 65부가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방송 내용을 정리하여, 총 6권의 책이 나올 예정인데, <고구려, 천하의 중심을 선포하다>가 그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통사 형식을 띤 방송 순서에 따라, 한민족의 기원을 찾아 구석기 시대를 되돌아 본 1회 방송부터, 신석기, 청동기 시대, 그리고 고조선과 뒤를 따르는 삼한, 고구려, 신라, 백제에 대한 내용에 이르기까지 총 11회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책은 구성된다.

각종 유물 사진과 사실적 고증을 바탕으로 제작되어 방송을 수놓던 화려한 3D 영상들이 책을 가득 메우고 있음은 물론, 잘 알지 못하던 역사적인 사실이나, 새로운 발굴과 함께 도출되는 주장들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제공하고 있어, 흥미로운 교양 역사서임에는 틀림없다.

백제사의 전환

<삼국사기>의 기록에도 불구하고, 사학계가 인정하는 백제의 건국시기는 200~300년 가량 뒤로 늦추어져 있다. 이름있는 국립 박물관에 가면, 삼국의 건국 시기들 또한, 강력한 왕이 등장했을 때를 기준으로 한 연도가 기록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강력한 왕의 등장이나 국가 체제의 성립, 혹은 중국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기록이 이런 백제사에 대한 시각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대한민국은 1948년 건립되었다. 강력한 왕 혹은 국가체제의 정립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억측을 조금 부려본다면, 후대의 역사가들 또한 대한민국의 건국 시기를 몇 백년 뒤로 늦춰 잡을지 대한민국이 한반도에 없었다고 할 수 있을지 누가 장담하겠는가?

풍납토성은 백제사에 대한 이런 관점을 획기적으로 바꿔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발굴지역이다. 토성의 규모나 발굴되는 유물의 추정 연대를 통해, <삼국사기>가 기록하고 있는 백제사의 신빙성 검증은 물론, 안개 속에 가려진 고대사에 체계를 재구성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될 가능성이 아주 높은 곳이다.

또한 2003년 공주 수촌리에서 발견된 다섯 개의 고분 속의 유물은, 백제의 이면을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고분 속에서 발견된 금동 관모와 신발의 주인을 훨씬 후대에 일어난 백가의 반란과 연관 지어보며 책은 일단락을 맺지만, 온조, 비류가 각기 다른 백제를 건설하였고, 지금의 공주를 중심으로 성장한 비류 백제가 이후 한-일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재야 사학계의 주장과 연결될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엿보며, 앞으로 계속될 금강 유역의 발굴이 기대된다.

신라의 비밀

“순금으로 만든 고대 금관은 전 세계를 통틀어 열 점 밖에 없는데, 여섯 점이 신라 금관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한다.”

신라의 고도 경주 지역은,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온다고 할 정도로 고대의 유물이 가득한 곳이다. 이런 신라의 시조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박혁거세이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박혁거세의 신라 건국신화를 포함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상당 부분을 신빙성 없는 이야기로 여겨왔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한국 고대사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진다.”

알에서 태어났다는 설화적인 내용을 놓고서만, 믿을 수 없다고 한다면, 신화를 통해 전승되는 고대의 이야기에 귀를 돌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는 기원전 57년 세워졌다고 나와 있으나, 이 또한 학계에서는 그동안 배척되던 연대였다.

하지만 박혁거세가 등장하는 신라의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숲에 둘러싸인 우물’인 나정은 조선 시대에도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여겨 보존된 곳이며, 2002년 나정에 대한 발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삼국사기> 기록과 놀랍도록 일치하는 나정의 발굴은 신라 건국신화를 역사에 좀더 가깝게” 해주고 있다.

백제사에 대한 풍납토성처럼 ‘경주 요양동 고분발굴’은 신라의 건국 시기에 대한 <삼국사기>의 신빙성을 증명할 수 있는 여러 증거들을 쏟아내었는데, 그 중 한 예로 중국 전한 시대 구리거울이 있다. 이 구리거울은 신라가 기원전 1세기에 중국과 교역할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는 증거가 되는데, 중국과 직교역이 이루어졌는지, 중간의 백제나 고구려를 통해 교류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웃한 국가들과 대등한 정치세력이 없었던들 이러한 유물이 신라의 유적지에 남아 있기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북공정과 고구려, 그리고 부여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기 위해 중국이 2002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동북쪽 변경 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 동북공정의 최대 목표가 되는 고구려와 발해, 그 중 고구려의 유적은 현 중국의 영토 내에 널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구려가 현 집안(지안) 지역에 남겨 놓은 수많은 무덤과 성곽을 되짚어 가며, 광개토대왕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이 책은 머나먼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까지 초원길을 따라 갔었을 천하의 중심이었던 고구려를 찾아 떠난다.

하지만 동북공정과 발맞추어, 고구려 유적지에 대한 우리의 출입이 통제되고, 우리에게서 고구려는 더욱 멀어지고 있다. 기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중국의 동북공정은 통일한국이 세워졌을 때의 영토 분쟁이나, 있을지도 모르는 조선족 자치구의 분리를 걱정하여 시행되고 있다는 정치적 의심을 버리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도 2004년 고구려사연구재단을 발족하였으나, 이 책은 한 마디 더 채찍의 말을 얹어 놓는다.

“우리의 관심이 온통 고구려에 쏠려 있는 사이 부여는 간과되고 있다. 중국 학계는 부여도 중국 고대사의 일부로 여기고 있다. 부여의 역사를 빼놓고는 고구려의 초기 역사도 논하기 힘들다.”

역사에 대한 사랑

최근 중국은 ‘하상주 단대공정’이란 국책사업을 통해, 연대가 명확하지 않던 고대 중국의 하, 상, 주에 대한 연대를 명확히 짓는 작업을 단행하였다. 이 연대는 기원전 2000년에까지 육박하는데,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순수한 학술적인 동기는 제외하고 볼 때, 더욱 강하고 통일된 중국을 만들어내는데 얼마간의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동북공정과 같은 선상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의 패자로 군림했던 고구려의 역사를 잃으면, 우리 민족의 역사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엄청난 후퇴를 가져오게 된다. 중국의 손에 남아 있어, 그들 마음대로 조작되고 유린되어 가는 고구려의 유물을 보면서, 우리 손으로 제대로 쓴 역사를 만들어, 후세에 남겨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되새긴다.

풍납토성과 나정 유적 등 지속적으로 발굴되는 고대의 유산들은, 우리에게 제대로 된 새로운 역사를 알려줄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며, 진정한 고대사와 마주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것이다. 이렇게 검증되고 새로이 전개되는 고대사를 바탕으로, 더욱 멀기만 한, 부여, 고조선 등의 역사에도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역사에 대한 사랑’을 표방하고 있는 'HD 역사스페셜'은 역사를 지키는 방법을 보여준다. 역사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를 지키는 방법에 다름 아닐 것이다. 어디까지가 우리 땅이었는지를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 땅에서 어떤 일이 있어왔는지를 명확히 알고 그 앎을 통해 현재를 반성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음이 바로 우리가 역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오마이뉴스 / 김민성 기자 2005-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