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르친 한 풀어주소" 막노동 할머니가 1억원

땅 보상금 장학금으로

"내가 번 돈이라고 혼자 다 쓰고 가면 죄받는 거야."

8일 경남 창녕군청 부군수실에서 정외순(70.사진(左))씨가 김상재 군수 권한대행에게 장학기금 1억원을 내놓고 가면서 남긴 말이다. 그는 10여 년 전 사놓은 창녕읍 내 땅 500여 평이 군 문화예술회관 부지에 포함되면서 받은 보상금 전액을 내놓았다.

그는 남편(2005년 작고)의 건강이 좋지 않아 평생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시골 오일장을 돌면서 밤.고구마를 구워 팔거나 뻥튀기 장사 등을 했다. 장이 서지 않는 날은 공사현장을 다니며 막노동도 했다.

집에서는 이웃의 음식찌꺼기를 모아 돼지를 길렀지만 2남3녀의 학비를 대기엔 역부족이었다. 학비를 못 내 학교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오는 아이들을 보며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몸을 마구 다룬 탓에 무릎 관절이 다 닳아 5년 전부터 걸을 수 없게 됐다. 정씨는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장학재단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모은 돈이 재단 설립에는 턱없이 부족하자 군 장학재단에 기부한 것이다. 다섯 자녀도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정씨는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 때문에 자식들 공부를 제대로 시킬 수 없었던 것이 평생 한이 됐는데 이제야 실천하게 됐다"며 웃었다. 2남3녀의 자녀 중 셋째딸과 막내아들만 대학을 나왔을 뿐 나머지는 성적이 좋았지만 고등학교만 겨우 졸업시켰다고 했다. 정씨는 "우수한 학생들이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일이 없도록 장학재단이 더욱 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 김상진 기자 200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