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박물관 고고학연표 '원삼국시대' 논란

'원삼국시대'는 日 '야오이'의 서자인가

28일 개관한 새용산 국립중앙박물관 1층 고고관 입구에 걸린 고고학 편년표가 논란을 빚었다. 여기에 고조선이 빠져 있다는 여론이 제기되자 박물관은 이를 받아들여 청동기시대에 고조선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됐다는 표시가 이 편년표에 들어가게 됐다.

하지만 한국 고고학계의 주류적 학설을 집약한 것으로 평가되는 이 고고학 편년표에서 더욱 큰 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대목은 '원삼국시대' 부분이다.

원삼국이라는 시대 설정에 대한 비판은 이미 오래 전에 김정배 고려대 교수를 비롯한 일부 연구자에 의해 간헐적으로 제기됐으며 최근에는 서울대 최몽룡 교수가 비판의 선봉에 서고 있다. 최 교수는 "원삼국시대를 삼한시대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새용산박물관 고고학 연표는 어떻게 설정돼 있으며 여기에서 원삼국시대 설정이 갖는 문제점은 무엇일까?

박물관 고고관은 한국 고고학이 설정한 세부 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구석기실'을 필두로 '신석기실'을 지나면 '청동기/초기철기시대'를 만나고, 그곳을 지나면 '원삼국실'을 마주한다. 원삼국실을 나서면 고구려.백제.가야.신라를 거쳐 통일신라와 발해실에서 고고관은 대미를 장식한다.

고려시대 이후 전시는 1층 고고관 맞은편에 자리잡은 역사관으로 넘어간다.

이들 세부 전시실 중에서도 그 성격이나 용어 선택을 두고 박물관이 나름대로 가장 고민한 곳이 '원삼국실'이었다. 논란 끝에 박물관은 적절한 대안을 찾지 못해 '원삼국실'이라는 용어를 고수하기로 했다.

박물관이 고민한 것은 '원삼국'(原三國)이라는 용어가 지닌 문제점 때문이었다.

원삼국이란 신라.고구려.백제의 3국이 본격적으로 정립(鼎立)하기 전이라는 의미로 영어로는 'proto-Three kingdom period'로 번역된다.

절대연대로 환산하면 서력기원 전후에서 서기 300년 무렵까지가 해당한다.

논란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서강대 사학과 이종욱 교수는 고고학에서 말하는 원삼국시대론이라든가, 서력기원전후-서기 300년 무렵까지 백제와 신라의 초기 역사를 인정하지 않은 문헌사학계를 겨냥해 "후기 식민사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맹비판을 하고 있다.

신라와 백제는 엄연히 기원전 1세기에 건국했음에도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두 왕조의 실질적 건국시기를 4세기 이후로 보는 일본 식민사학을 답습한 유산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이는 결국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기 위해 4세기 이전 신라와 백제의 존재를 말살하려 한 식민사학과 상통한다고 주장한다.

이 교수의 말처럼 일제 식민사학은 고구려는 다소 예외이지만, 백제와 신라가 실질적으로 건국한 시기를 서기 350년 무렵으로 보았다. 백제 근초고왕이 즉위하던 무렵이 실질적인 백제사의 시작이며, 이는 아울러 신라사의 시작이라고 간주했던 것이다.

식민사학은 심지어 신라의 건국시기를 백제보다 더 끌어내리기도 했다.

이에 반발해 해방 이후 한국사학계는 백제의 경우 1세기 가량을 앞당긴 3세기 중후반 무렵 고이왕 시대를 실질적인 건국으로 간주했으며, 신라는 내물왕으로 정착을 시켰다.

이렇게 되고 보면 한반도 고대사, 특히 백제와 신라가 건국하고 팽창하기 시작하는 서력기원 전후 이후 서기 300년 무렵까지 한반도 중남부는 역사의 공백지대가 초래되며 실제 그렇게 되어 버렸다.

서기 280년 무렵에 편찬된 중국 진(晉)나라 역사가 진수(陳壽)가 쓴 삼국지(三國志) 중 조조의 위(魏)나라 역사를 기록한 위서(魏書)의 동이전(東夷傳)에는 분명 삼한(三韓)을 구성한 여러 국(國) 가운데 신라와 백제라는 이름이 보인다. 소위 '원삼국시대'의 설정은 이런 역사를 몰각하고 있는 셈이다.

서기 300년 무렵까지 한국사가 원삼국시대로 설정되는 바람에 그보다 훨씬 이전에 지금의 경주 지방 일대에 이미 건국해 있던 '초기 신라인'들이 남겼음이 분명한 유적과 유물조차 신라가 아닌 '원삼국시대'에 배정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식민사학이건 해방 이후 한국 주류사학이건 소위 '원삼국시대'의 한반도 중남부가 공백지대인 반면, 그 북쪽은 온통 한사군(漢四郡), 혹은 낙랑군(樂浪郡)과 대방군(帶方郡)의 이군(二郡) 시대로 설정했다.

기원전 108년 무렵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하고 그 땅에다가 설치한 한사군이 비록 왕조는 바뀌었을망정 중국에 의한 '식민지배'가 고구려 미천왕이 그들을 완전 축출하게 되는 서기 313년까지 400년 가량이나 계속됐다는 것이다.

흔히 이 시대를 이렇게 설정한 주인공은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교수로 오랫동안 봉직하고, 국립박물관장을 지낸 고(故) 삼불(三佛) 김원룡(金元龍.1922-1993) 박사로 알려져 있다.

1964년 서울 풍납토성을 시굴한 삼불은 이 성곽의 축조연대가 삼국사기가 말하는 백제 건국연대, 즉 기원전 18년 무렵까지 올려볼 수 있음을 들어 "삼국사기를 믿을 근거도 없겠지만, 믿지 못할 이유도 없다"는 '핵폭탄성' 주장을 1967년에 들고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종래의 자기 주장을 버리고 대신 '원삼국시대론'을 들고 나왔다.

그는 1973년 도서출판 일지사에서 출간한 '한국고고학개설'이란 단행본 초판본에서 기원전 300년 이후 서력기원 전후를 초기철기시대로 설정하는 한편, 그에 대응하는 서력기원전후-서기 300년 무렵을 원삼국시대로 설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원삼국시대와 매우 비슷한 개념을 삼불 보다 먼저 쓴 사람이 있다. 그는 신라와 백제의 건국시기를 4세기 무렵으로 간주하는 일본의 고대사 연구자로 당시 도호쿠대(東北大) 교수인 이노우에 히데오(井上秀雄)였다.

선문대 이형구 교수에 의하면 이노우에는 1972년 일본 NHK출판사에서 나온 '고대조선'이란 책에서 한사군 혹은 낙랑.대방의 두 군이 존재하던 무렵 고대 한국사를 '이군시대'(二郡時代)로 설정하는 한편, 이 시기 한반도 역사를 '원시국가' 시대로 보았다. 이 '원시국가'론의 한국판이 '원삼국'론에 해당된다고 이 교수는 덧붙이고 있다.

서력기원 전후를 경계로 이전 300년(초기철기시대)과 이후 300년(원삼국시대)을 합친 고대 한국 600년을 주시해야 하는 까닭은 이것이 한국 고고학 편년이 아니라 실은 일본 고고학 편년을 옮긴 듯한 대목이라는 점이다.

이 600년은 일본 고고학이 일본사에 적용하고 있는 '야요이 시대'에 해당한다. 즉 일본의 야요이시대 편년을 고스란히 한국사에 대비한 결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고고학 편년을 세우는데 일본 고고학자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데는 국내 고고학계에서도 이견을 달기 힘든 실정이다. 그런데 한국고고학 편년을 누가 설정했느냐 하는 문제와는 별도로 무엇을 근거로 원삼국시대를 비롯한 한국 고고학 편년을 설정했느냐 하는 문제도 주목을 요한다.

고고학 편년을 세우는데 토기가 특히 결정적임은 강조할 필요조차도 없다. 그런데 한국고고학 편년을 세우는데 적용된 토기 편년의 상당 부분이 실제는 한국 자체의 토기 편년이 아니라 일본학계에서 설정한 일본의 토기 편년인 경우가 많다.

이 야요이시대론은 최근 일본에서도 논란을 빚고있다. 종래에는 서기 300년 무렵을 지나면서 대규모 봉토(封土)를 갖춘 이른바 고분시대(古墳時代)로 접어들었다고 보았으나 지금은 야요이시대 종말기는 1세기 가량이나 앞당겨졌다.

종말시점 뿐만 아니라, 그 시작시점도 기원전 300년 무렵에서 무려 100-200년이나 앞당겨져 기원전 4-5세기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야요이시대에 맞춰, 혹은 그것을 의식하고 초기철기시대와 원삼국시대를 설정한 한국 고고학은 우왕좌왕하는 모습까지도 보인다.

야요이시대 편년을 중시해 한국고고학 편년을 구축해온 어떤 고고학자는 야요이시대 시작점과 종말시점을 바꾼 일본학계를 향해 "편년이 잘못됐다"는 비판을 쏟아내기도 한다.

새용산박물관 고고관 첫머리 세계 각국 고고학 연표를 주의깊게 살펴보면 일본 야요이시대 시작 시점이 기원전 450년 무렵이라고 표시돼 있다.

당초 박물관은 야요이시대 시작점을 기원전 300년으로 표시하려 했지만 개관을 앞두고 일본 고고학계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 시점을 150년 끌어올렸다.

이에 대해 이형구 교수는 "일본학계 주장은 그처럼 덜컥 받아들이면서도 한국 고고학 편년은 왜 요지부동이냐"면서 "풍납토성이 발굴됐는데도 무슨 원삼국시대냐"고 반문했다.

(연합뉴스 / 김태식 기자 2005-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