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조선왕조 ‘임금의 도장’

옥새 500년된 국보급 상당수 소재도 몰라

조선왕조 국권(國權)의 상징물이자 만들어진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종합 공예예술인 옥새(玉璽).

그러나 조선 왕 27대에 걸쳐 사용해온 옥새들이 문화재 지정조차 되지 않은 상태이고, 많은 수량이 어디 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는 감사원의 문화재청 예비조사 결과는 새삼 우리 문화유산 관리의 허점을 드러낸다.

옥새는 거북의 형상을 본떠 금이나 옥으로 만들었다. 옥새가 가장 많이 만들어진 시대는 영조 때. 중국과의 외교 문서에는 대보(大寶), 통신 문서에는 이덕보(以德寶), 서적 반포에는 동문지보(同文之寶) 등 용도마다 다른 옥새를 썼다고 한다. 고종은 청나라와의 사대 관계가 끊어지자 “거북이만 보면 신물이 난다”며 옥새의 상징물을 용으로 바꿨다.

옥새 중에서는 아직까지 국보나 보물 등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한 점도 없다. 전문가들은 옥새 실물과 의궤(儀軌·왕실 행사와 제도 내용을 그림과 글로 정리한 기록)가 한 ‘세트’로 갖춰질 경우 국보(國寶)로 지정될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지난 8월 출범한 국립고궁박물관 소재구 관장은 “문화재로 지정되려면 유물들이 제대로 정리돼야 하는 것은 물론 제작 기법이나 연대 등 자세한 연구와 규명이 이뤄져야 하지만, 그 동안은 유물이 흩어져 있었고 연구자도 없었기 때문에 불가능했다”며 “지금부터 작업을 해도 3~4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새와 관련한 유물로는 견본으로 추정되는 ‘대조선대군주지보(大朝鮮大君主之寶)’가 2과 있을 뿐이다. 그나마 고궁박물관 등이 소장하고 있는 어보도 보관상태가 좋지 않다. 모든 옥새에 유성 매직펜으로 관리번호를 써 놓았으며, 거북머리가 파손되거나 인면(印面·글자를 새긴 면)이 부식된 것도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개관 작업 때 옥새 없는 외함만 80여개 발견됐다. 그 안에 있어야 할 ‘실물’은 모두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옥새 관리가 부실한 것은 광복 이후 최근 국립고궁박물관이 생기기까지 조선 왕실의 유물들이 체계적인 관리 없이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 일제시대 이왕직(李王職)이 관리하던 유물들을 ‘구 황실 재산 사무총국’이 이어받았지만 1961년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의 전신)으로 개편되면서 미술품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의궤 등 문서는 규장각(서울대)과 장서각(한국학중앙연구원)이 나눠 가져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유물들은 그대로 경복궁·창덕궁·종묘 등 궁궐 곳곳에 방치됐고, 일부는 외부로 유출되기도 했다. 1992년 문화재청 직속 궁중유물전시관이 출범해 유물 수습에 나섰으나 한계가 있었고, 지난 8월에야 국립고궁박물관으로 개편돼 비로소 유물 4만점을 소장할 수 있게 됐다.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2005-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