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박물관 ‘고조선 누락’ 정정 소동

시민들 “中의 동북공정 논리 따르냐” 항의에
“고고학·역사학은 달라” 주장하다 뒤늦게 추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고조선이 없다?

새로 문 연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건무)이 고조선을 연표에서 누락하는 등 고대사 부분 설명에서 오류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학운동시민연합·세계국학청년단·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등 5개 단체는 7일 이같은 점을 항의하며 ‘국립중앙박물간의 고조선 누락과 삼국시대 연표 오기에 대한 성명서’를 냈다.

이같은 논란이 일자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날 저녁 늦게 부랴부랴 해당 연표에 ‘고조선’ 문구를 넣고 삼국유사의 기록을 인용, 서기전 2333년 건국했다고 밝히는 소동을 빚었다.

논란의 초점은 고고관(考古館) 입구에 설치한 대형 ‘고고학 연표’. 이 표에 우리 역사상 첫 국가였던 고조선이 보이지 않았고 ‘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청동기·초기철기시대,원삼국(原三國)시대,삼국시대’의 순으로 시대구분이 돼 있을 뿐이라는 문제가 제기됐다. 국학운동시민연합 등은 또 연표 ‘삼국시대’ 부분에서 고구려가 서기 100년부터 676년까지 지속됐다는 내용에 대해 “동북공정이나 임나일본부설을 긍정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오류”라고 지적했다.

이날 오후 박물관 현장을 확인(월요일 휴관이지만 직원들은 출근했다)한 결과, 실제로 고고학 연표에는 고조선이 언급되어있지 않았다. 박물관측은 “고고학 연표의 시대구분은 고고학적 유물에 의한 것으로, 일반인들이 인식하는 ‘역사학 연표’와는 다르다”며 “고조선 유물로 확정지을 수 있는 것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신석기’나 ‘청동기’ 같은 고고학적인 시대구분으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전시관 설명문이나 개별 연표에는 고조선이라는 국명과 ‘삼국사기’에 따른 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국연대가 명시되고 있었다. 고고관 내 청동기·초기철기실에는 대형 설명문을 걸고 “청동기 시대에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존재했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삼국 건국 연대도 고구려(서기전 37년), 백제(서기전 18년), 신라(서기전 57년)로 명시하고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고고학 연표에서 ‘서기 100년’이라고 쓴 것은 학계에서 통용되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출발점이며, ‘삼국사기’에 나오는 건국연대는 삼국의 전단계인 ‘원삼국’ 시대에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박물관은 제대로 표기했는데, 관람객들이 오독(誤讀) 혹은 오해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를 관람객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박물관의 책임이 크다는 목소리가 높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전문가적 입장에서 ‘고고학 연표’와 ‘역사학 연표’의 엄밀한 학문적 차이를 강조하기 전에 일반 시민 중심의 역사 인식을 먼저 고려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박물관은 고고학 연표 중 서기전 20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는 중국의 하(夏)와 그 뒤의 상(商)·주(周)는 국명(國名)을 명기하고 있다. 이 시대 유물에는 명문(銘文·유물에 새겨진 글)이 들어있거나 분명한 증거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때문에 ‘고조선’의 누락은 더욱 눈에 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이 연표는 이미 경복궁 시절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제기된 것은 그만큼 높아진 일반 시민들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박물관측은 이날 밤 ‘고조선’ 부분을 써넣은 이유가 “오해를 막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2005-11-8)

국립박물관 연표는 후쇼샤 교과서판?

‘고조선’을 제외시켜 논란이 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박)의 고고(考古)관 연표가 역사왜곡으로 말썽을 빚고 있는 일본의 후쇼샤 역사교과서와 같은 논리로 제작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본의 역사왜곡 시정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한 관리는 7일 “고조선을 부정하고 한국 역사를 왜곡한 후쇼샤 교과서의 연표와 국박의 연표 논리가 똑같다”고 확인한 뒤 “박물관의 연표를 바르게 고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은 총독부시절부터 우리의 민족의식을 말살하고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고조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왔다”며 “이런 논리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이어졌는데 어떻게 국박의 연표와 같은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박은 고고학적 유물이 없어서 고조선을 연표에서 뱄다고 주장하지만, 고조선의 유물은 고인돌, 청동검, 청동기시대 토기 등 유럽의 청동기시대 유물보다 양과 질에서 월등하다”고 강조했다.

‘고구려연구재단’도 “최근 일본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8종을 입수해 확인한 결과 한 곳을 제외하고 7곳의 연표에서 고조선이 빠져있었다”고 밝혔다.

고구려연구재단의 윤휘탁 위원(일본교과서 바로잡기 운동본부)은 “박물관에서 연표를 제작하면서 깊게 생각을 안 한 것 같다”며 “총독부의 논리가 일본의 역사교과서에 그대로 반영돼 있는데, 박물관에서 그동안의 관례만 갖고 쉽게 연표를 만들어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아닷컴 취재진이 일본 후쇼샤 교과서를 입수해 확인한 결과 ‘한국(朝鮮)’ 부분에는 고조선이 아예 빠져있고 ‘낙랑·고구려·삼한’이 한국역사의 시작으로 표기돼 있었다.

이에 대해 이 관리는 “지난 2001년 우리정부는 고조선 누락 등 역사교과서 왜곡을 시정하라는 문서를 일본 정부에 보냈다”며 “일본에는 이런 요구를 하면서 정작 국박에서 잘못된 연표를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박은 자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후손에 전하고 세계에 홍보하기 위해 존재하는데 오히려 스스로 역사를 비하하고 있는 꼴”이라며 “무슨일이 있더라도 잘못된 역사 표기는 바로잡고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단국대 윤내현 교수도 “고조선은 우리나라 역사의 출발”이라며 “아무리 유물 위주의 고고연표라고 해도 고조선을 빼서는 안 된다. 청동기시대 유물은 고조선의 유물로 봐야하기 때문에 최소한 병행표기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또 ‘고조선이 연표에서 빠진 이유는 일제 총독부시절의 역사논리를 답습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대해 “그런 얘기가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덕일 한가람역사연구소장도 “고조선뿐만 아니라 한국 고고사는 많은 분야에서 일본의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이 만들어놓은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문헌자료나 유물을 보면 기원전 24세기경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분명히 존재한다”며 “나라가 뒤늦게 세워진 일본은 나라가 아닌 시대사로 역사를 구분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것을 따라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의 역사는 일본이 아닌 우리의 눈에 맞춰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학생과 일반 관람객들이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연표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박 학예연구실 조현종 고고부장은 “고고학적으로 시대를 구분하다 보니 고조선이 빠진 것이지 총독부 식민사관 때문이 아니다”며 “고인돌과 청동검은 고조선의 유물로 추정될 뿐 정확하게 증명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관람객들이 고고학적 연표인지 역사학적 연표인지 혼동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역사학적 표기를 병행하는 방법을 찾아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부지 9만2900여 평에 건물 연면적 1만4000여 평, 전시면적 8100여 평으로 건물 연면적 기준으로 세계에서 6번째 큰 박물관이다. 1997년 공사를 시작한 지 8년 만에 완공돼 지난달 28일 개관했으며 국보와 보물 150여 점 등 총 1만1000여 점의 문화재가 전시돼 있다. 개관 이후 하루 평균 2만여 명의 관람객이 몰리고 있다.

(동아일보 / 조창현, 구민회 기자 2005-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