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 올라 앉은 독일 정부

세계 최대 수출국인 독일이 국가부도 위기에 처해 있다. 나라빚이 1초당 1714유로(약 220만원)씩 늘어나고 있다. 1분마다 10만유로씩 증가하는 연방정부와 주정부, 지자체가 안고 있는 총 부채액이 지난 6월 말 1조4579억유로(약 1822조4700억원)에 달했다. 연방은행을 비롯한 각종 금융기관에 꼬박꼬박 내는 연간 이자액만 400억유로가 넘는다.

독일 정부는 유럽연합(EU)이 설정한 EU 경제성장 안정협약의 재정적자 기준선인 3%를 이미 2002년부터 계속 위반해왔다. 내년도에도 이 같은 적자가 계속되면 벌과금만 110억유로를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기민·기사당 연합과 사민당의 대연정 협상에서 연간 350억∼400억유로의 재정적자를 메우고 국가채무를 해소하는 방안이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재원 마련을 위해 현행 16% 선인 부가가치세율을 20% 선까지 올리는 방안이 제기되는가 하면, 차선책으로 ‘콘솔리(통합세)’라는 새로운 세금을 신설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연금 인상 동결과 실업자 보조금 삭감, 질병 보험의 배우자 혜택 제외 등 서민 생활에 타격을 주는 각종 방안들이 제기되고 있다. 부유세를 신설하자는 논의까지 일고 있다.

국민 한 사람이 1만7940유로(약 2242만원)씩의 빚을 지고 있는 심각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앞으로 4년간 정부는 800억∼1000억유로의 재정지출을 줄여야 하고, 국민은 혹독한 내핍 생활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복지국가의 각종 혜택 속에서 편안한 삶을 영위하던 시절은 이제 흘러간 추억이 되고 말았다.

평소에는 차기 총선이나 지방선거를 의식해 세금 인상이나 복지 혜택 삭감 등 정책은 말도 꺼낼 수 없던 기민·기사당이나 사민당도 대연정 협상에서 과감한 개혁안을 꺼내들고 있다. 양측은 대연정을 개혁정책을 마련할 절호의 기회로 이용하고 있다.

1990년도에 국내총생산(GDP)의 42%를 차지했던 국가채무가 현재는 66%선에 다다랐다. 이 상태가 지속될 경우 2018년도에는 100% 선에 도달할 전망이다. 나라살림이 거덜나기 전에 빚부터 갚아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아우토반 등 국가재산을 매각해서라도 재원을 마련하자는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다.

(세계일보 / 남정호 특파원 2005-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