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동교수, 페르시아語로 기록된 몽골 역사書 '集史' 완역

‘노마드(nomad·유목) 아시아’ 열풍이 불고 있다. 중국에 치우친 역사관에서 벗어나 더 넓고 개방적이었던 유목 아시아의 역사를 부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고 있는 것이다.

TV에선 내년 칸 즉위 800주년을 맞는 칭기즈칸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와 KBS, NHK, CCTV가 공동 기획한 10부작 대형 문명기획 ‘실크로드’가 방영되고 있다. 서점가에는 칭기즈칸과 실크로드를 다룬 수많은 책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 초 터키의 이스탄불에서는 일본 한국 만주 몽골 중앙아시아와 터키로 이어지는 퉁구스-알타이-투르크 문명공동체의 복구를 모색하는 ‘아시아공동체철학회’ 창립대회가 열렸다. 20개국이 참가한 이 학회의 초대 회장국은 한국, 일본, 터키에 돌아갔다.

4, 5일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중앙아시아학회가 개최한 ‘실크로드의 삶과 종교’라는 주제로 대규모 국제학술회가 열려 문명의 통로로서가 아니라 동서의 문화가 교차하는 삶의 터전으로서 실크로드를 조명했다.

중앙아시아학회장인 김호동(50·동양사) 서울대 교수는 때마침 몽골제국의 역사를 한자가 아닌 페르시아어로 기록한 기념비적 저작인 ‘집사(集史)’의 제1부 몽골제국사를 완역했다. 몽골제국이 이란에 세운 일 칸국(國)의 이란인 재상이었던 라시드 앗 딘이 집필한 집사는 몽골제국사, 세계민족사, 세계지리 3부로 구성된 방대한 저서. 이 책은 러시아와 미국에서만 번역됐을 뿐 일본에서도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김 교수는 몽골제국사 중에서 서아시아 일 칸국의 역사를 다룬 내용을 제외하고 번역해 3권으로 나눠 내놓았다. 2002년 몽골의 기원을 다룬 ‘부족지’를 출간한 데 이어 2003년 칭기즈칸의 일대기를 다룬 ‘칭기스 칸기’, 그리고 이번에 몽골제국 2대 칸 우구데이∼9대 칸 티무르의 역사를 다룬 ‘칸의 후예들’(사계절)을 출간한 것.

몽골제국을 중국왕조사의 하나로 인식하는 것은 중국의 또 다른 동북공정에 말려드는 것입니다. ‘집사’에는 원(元)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몽골제국의 이름은 ‘몽골울루스’입니다. 몽골울루스는 한자문화권, 러시아문화권, 아랍문화권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원은 그중 한자문화권 사람들의 이해를 위해 사용한 국호일 뿐입니다.”

김 교수는 원뿐 아니라 거란족이 세운 요(遼), 여진족이 세운 금(金)과 청(淸)의 역사를 중국역사로 간주하는 것은 중국학자들이 분류한 왕조사 중심의 역사관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이들 퉁구스계통의 유목민족과 터키의 투르크계통의 유목민족은 우리와 같은 알타이어계의 언어를 쓰고 인종적으로도 유사하다. 다만 우리가 한반도에 정착하면서 이들보다 일찍 정주민이 됐을 뿐이다.

김 교수는 그런 맥락에서 야만적 유목민 대 문화적 정착민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농경민족은 외래인에 대한 배타성이 심하지만 유목민족은 개방적이고 실력을 중시합니다. 당시 100만 명도 안 되는 몽골인들이 2억이 넘는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신분보다 실력 중심으로 인재를 발탁했기 때문입니다. 흔히 몽골제국이 몽골족-색목인(아랍인)-한족으로 민족 차별을 뒀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정복 시차에 의해 그들이 중앙정계에 진출하는 속도가 달랐을 뿐입니다. 또 몽골인들은 티베트의 라마교, 아랍의 이슬람교, 유럽의 기독교를 골고루 수용했습니다.”

그는 몽골제국이 시스템의 취약성 때문에 150여 년 만에 붕괴했다는 것도 중국 중심의 사고일 뿐이라며 명(明)나라가 세워진 후에도 다른 지역에선 150년 가까이 몽골의 통치가 계속됐음을 상기시켰다. 또 인도의 무굴제국, 아랍의 오스만제국, 러시아제국, 중국의 명·청제국이 몽골제국의 시스템을 모방했음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같은 맥락에서 실크로드를 포함한 노마드 아시아에 대해서도 동서 문명의 가교라는 도구적 관점에서 벗어나 그들 내면의 역사를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체성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면 만주와 몽골, 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북방문화의 영향은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중국의 영향력이 팽창하는 현실에서 그 전략적 자원가치를 고려한다면 몽골과 중앙아시아 연구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더욱 절실합니다.”

(동아일보 / 권재현 기자 2005-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