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프랑스가 그대로 당했다

미국서 문제터질 때마다 "흑인·소외계층 껴안지 못한다" 비난하더니…

국제 무대에서 인권과 도덕성을 무기로 이라크 전쟁을 주도한 미국에 맞서 큰소리를 쳐왔던 프랑스가 정작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미국 CNN방송, 영국 BBC방송, 독일 ARD 방송 등 전 세계 주요 언론들이 프랑스 전역으로 확대된 이슬람 및 아프리카계 청년들의 연쇄 폭력사태와 그 배경을 취재하러 파리 교외 지역인 센 생 드니에 몰려왔다. 이 와중에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6일(현지시각) 소요사태와 관련해 특별 안보회의를 소집했다.

영국의 BBC는 프랑스의 이슬람 이민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프랑스 사회에 얼마나 보이지 않는 벽과 차별이 내재돼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스페인 일간지 라 반구아르디아는 “런던의 7·7 테러가 영국의 다문화주의적 접근이 실패했음을 보여줬듯이, 이번 프랑스 사태도 프랑스의 사회통합 모델이 실패했음을 나타낸다”고 보도했다. 독일의 베를리너 자이퉁은 “프랑스가 박애 정신을 잃었다”고 비판했고,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자이퉁은 “프랑스가 수십년간 동질성의 기반으로 삼은 공화국 통합의 모델이 불길에 싸여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지난 여름 카트리나 재해 때 프랑스 언론들은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미국 사회의 인종 갈등과 실패한 사회통합 문제가 드러났다며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었다. 심지어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단짝이 되어 미국을 비판했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카트리나 사태는 사회 통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유럽 모델의 우위를 주장하면서 프랑스와 독일의 논리를 방어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꾸로 프랑스가 전 세계 언론들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이같은 상황 역전에 프랑스 정부나 언론들은 외국 언론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7일자 7면에 ‘외국 언론들이 프랑스를 사회통합이 실패한 국가로 낙인찍고 있다’고 외국 언론에 불만을 터뜨리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 르몽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TV, 라디오, 그리고 외국 주요 신문들이 몽땅 파리 외곽 센 생 드니의 클리쉬 수 부아와 인근 도시로 ‘여행왔다’”고 표현하면서 “특히 미국 언론들의 보도 태도가 공격적”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의 ABC 방송은 지난 3일자에 ‘불타는 파리’라는 제목으로 보도를 내보냈다. CNN은 마치 이라크전쟁 당시처럼 ‘프랑스 폭동’이라는 컷을 만들어 관련 뉴스를 집중 방영하고 있다. 르몽드는 “CNN 기자는 이번 프랑스 소요 사태를 체첸 사태에까지 비유하면서 내전(內戰)의 위험성을 언급했다”면서 “외국 언론들이 앞장서서 프랑스의 사회통합이 실패한 것처럼 낙인찍는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 강경희특파원 2005-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