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순진해지면 안돼 눈 뜨고 주변국 살펴라"

中·日 점점 강해지고 미국 눈에는 북한이 위협적 존재인데…
NATO같은 기구로 6자회담 격상해야

“한국은 눈 크게 뜨고 주변국이 뭘 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임스 릴리(James R Lilley) 전 주한미국대사는 4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가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한국의 안보에 대해 한국 사람보다 더 걱정해줄 수는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릴리 대사는 “중국은 경제 번영을 통해 군대를 현대화하고 있고, 일본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다”면서 “역사적으로 한국을 지배했던 나라들인 만큼 한국이 결코 순진하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120만 군대와 핵무기와 미사일을 보유한 북한이 한국에 위협인지 아닌지는 한국이 스스로 알아서 판단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미국의 눈에는 북한이 분명 한국에 위협적인 존재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릴리 전 대사는 1986~89년 주한미국대사를 역임하고 주중대사, 미 국방부 국제담당차관보 등을 지낸 바 있다. 중국에서 태어나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으로 활동해온 그는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중국통’이다.

◆ 한미 동맹은 성장통 겪고 있는 중

그는 한미동맹이 균열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분명 달라졌고, 또 달라져야 한다”고 답했다. 한국의 국가 위상이 그만큼 커졌고, 또 한국이 자주적으로 결정하고 싶어하는 건 필연이라고 했다. 이로 인한 갈등도 일종의 성장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존재하는 한 한미동맹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한미동맹 없이는 진정한 동북아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릴리 전 대사는 “인구 2300만명의 조그만 북한이 인구 5000만명의 한국과 인구 13억의 중국, 인구 1억의 일본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면서 “논리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미국과 동북아 국가들이 북한의 핵 문제를 다뤄왔는데, 우리끼리 싸우느라 허송세월했다”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6자회담에 큰 기대를 걸었다.

◆ 체임벌린이 될지 처칠이 될지 결정해야

그는 대북(對北) 협상과 관련, “무조건 끌려다니기보다는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고 약속을 이행할 경우에만 전력·식량·석유 등을 지원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2차대전 직전 체임벌린은 나치의 히틀러를 달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처칠은 분명한 선을 긋고 강력하게 협상해야 한다고 했죠. 처칠이 옳았다는 것은 역사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한국이 체임벌린이 될 것인지 처칠이 될지는 스스로 결정하면 됩니다.”

그는 최근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방북과 관련, “화려한 행사 등 양국간의 돈독한 우애를 대내외에 과시했지만 중국은 북한측에 경제개혁과 비핵화 등 몇가지 중요한 이슈를 제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특히 후 주석의 대안우의유리공장 방문은 북한에 강력한 경제 개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 6자회담을 NATO 같은 기구로 격상시켜야

그는 “6자회담이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비핵화·경제개혁·무력사용불가 등 6자회담의 세 가지 기본 원칙을 아예 문서로 못박아야 한다”고 밝혔다. 6자회담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같은 정치·군사 동맹기구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1차·2차 세계대전이 모두 사소한 민족 감정 때문에 발생했다”면서 “가칭 6자 동맹기구가 발족되면 중국과 일본 간의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분쟁이나 한일 간 독도 문제 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선일보 / 최우석 기자 2005-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