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학계 일찍부터 고구려 韓國史로 인식

佛고고학자 1907년 유적 답사후
'고대 한국의 왕국' 보고서 써

지난달 30일 공개된 1907년의 광개토대왕비 사진〈본지 10월 31일자 A9면〉은 현재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集安)에 있는 고구려 유적들이 일찍부터 ‘한국 고대 왕국의 것’으로서 서구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임영방(林英芳) 전 국립현대미술관장과 서길수(徐吉洙) 서경대 교수(전 고구려연구회장)는 프랑스의 고고학자 에두아르드 샤반느(Eduard Chavannes·18 65~1918)가 찍은 이 사진과 논문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샤반느는 고구려 고분 벽화를 최초로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1907년 4월 14일부터 22일까지 고구려 유적을 답사하고 쓴 논문 ‘고대 한국의 왕국 고구려 유적에 관한 보고서(Rapport sur les Monuments de L’acien Royaume Coren de Kao- Keou-Li)’는 같은 해 ‘비문(碑文)·순문학 아카데미’의 연차보고서에 실렸다.

샤반느는 이 논문에서 태왕릉(太王陵·광개토대왕릉으로 추정)이 무너진 것이 1906년 근처 도교 사원을 짓기 위해 무덤의 돌 일부를 가져다 썼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당시 샤반느가 촬영했던 고구려 유적의 유리원판 사진 22장과 프랑스로 가져갔던 고구려 수막새·와당 등의 고구려 유물 41점은 현재 프랑스 파리 기메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확인됐다.

한편 ‘한국서지(韓國書誌)’의 저자인 프랑스 학자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186 5~1935)이 1898년에 쓴 ‘중국에 있는 고구려 왕국의 비석(St?le Chinoise du Royaume de Ko Kou Rye)’도 처음 확인됐다.

광개토대왕비 전문(全文)을 프랑스어로 해석, 유럽 학계에 최초로 광개토대왕비를 소개한 이 논문에서 쿠랑은 “이 비석은 한국의 지명과 인명에 관한 것”이라며 모든 고유명사를 한국 발음으로 표기, 고구려가 한국사에 속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서길수 교수는 이 논문들에 대한 연구 결과를 3~5일 단국대에서 열리는 고구려 국제학술대회 ‘광개토태왕과 동아시아 세계’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2005-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