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절박한 문제는 ‘北인권’이다

얼마 전 중국에서 가진 북한 핵문제, 남북한관계, 한·중관계 등 에 관한 세미나에서다. 한·중관계의 미래에 관한 토론 과정에서 상호 인적·물적 교역량 증대 등 밝은 측면과 함께 북한 인권, 고구려 역사, 탈북민 강제 송환 등 어두운 측면이 아울러 거론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한 중국 측 토론자는 최근 중국 공안 당국에 의해 탈북민 몇 명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사실에 대해 한국 정부 당국이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하고 시민단체들이 항의 시위를 하는 등의 행태는 일종의 자가 당착(自家撞着)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논리는 간단했다. 중국의 탈북민 북한 송환 조치는 한국 정부가 지난 수년 간 제네바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북한 인권 결의안 표결이 있을 때마다 불참이나 기권하면서 그 이유를 ‘남북한 화해 증진을 고려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한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즉, 한국 정부가 북한 인권보다 남북한 화해 증진을 더 중요시하는 것처럼 중국이 탈북 주민 몇 명의 인권보다 북한과의 전통적 우호관계 유지를 더 중요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무슨 반론을 가할 수 있겠는가? 올해는 ‘북한 인권’ 문제로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될 것 같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2003년 이후 해마다 북한 인권 문제를 유엔 인권위원회에 상정해 왔고, 올해에는 북한 인권결의안을 11 월 초 유엔총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유엔총회에 상정될 때는 세계 190여 모든 회원국 앞에서 고문·공개처형·정치범수용소·여성인신매매·영아살해·외국인납치 등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현 북한 정권의 인권 침해 문제가 논의되고 각국의 입장이 표명될 것이다.

한편 오는 12월 초에는 국내외의 저명학자, 사회원로, 시민단체, 북한인권운동가들이 서울에 모여 ‘북한인권 국제대회’를 개최하며,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한 토론회·집회·전시회를 열고, 북한 인권 개선 촉구 성명을 채택하는 등 북한 인권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을 촉구할 예정이다.

이처럼 북한 인권 문제는 이제 전 세계적인 주요 관심사로 부각 됐고, 또 국내적으로도 더 이상 묵과하고 지나칠 수 없는 절박한 민족적 과제는 ‘남북연합’이나 ‘통일’이 아니라 바로 ‘북한 인권’ 문제인 것이다. 통일은 그 다음의 문제다. 보도된 바 와 같이, 수 백만의 ‘인민’이 굶어 죽는 것을 방치하면서도 김일성 묘지 만들기에는 9000억원을 쏟아부을 수 있고, 10년 이상을 외부의 식량 지원으로 연명하면서도 핵폭탄과 미사일을 만드는 폭압적인 병영(兵營) 국가 체제라면 이들과 어떻게 통일 문제를 논의한다는 것인가? 문제는 노무현부가 갖고 있는 북한 인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한 정부의 대 유엔 자세가 국제적으로 얼마나 비웃음의 대상인지를 못 느끼고 있고, 심지어 중국과 같은 공산국가에서조차 한국 정부의 대 유엔 인권외교 자세를 그들의 비인도주의적(非人道主義的)인 ‘탈북주민 강제송환’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전 세계적 이슈로 부상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그렇게 냉담할 수 있겠는가? 정부는 내달 초 사상 처음으로 유엔총회에 상정될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 또 다시 기권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인권 외면은 결코 의(義)로울 수 없는 것이다. 의롭지 못한 대북 화해·협력은 가식(假飾)이며 위선(僞善)에 불과하다. 특히 정부는 자국 주민의 기본인권조차 보장하지 않는 나라는 결코 평화를 추구하는 나라로 간주될 수 없다는 지극히 보편적인 사실을 간과하지 말길 바란다.

<박용옥 / 한림국제대학원대 부총장, 전 국방부 차관>

(문화일보 2005-10-31)